[인터뷰] ‘농민군수’ 염원 위해, 다시 신발끈을 묶다
이석하 영광군수 재선거 후보자
[한국농정신문 이대종 기자·사진 한승호 기자]
선거 이후 어떻게 지내고 있나
처음 열흘간은 선거 때와 똑같았다. 새벽 3시 반에 일어나 매일 새벽예배를 하고 거리인사도 나갔다. 그렇게 열흘을 보내고 지금은 상가를 돌면서 인사하고 있다. 처음에는 대뜸 알아보더니 지금은 몰라보는 분들이 생겨나고 있다. 뜨거웠던 열기가 무색할 만큼 빠르게 일상으로 돌아간 탓도 있겠는데 “세상에 지금도 인사하고 다니느냐”며 놀라시는 분들이 많다.
선거 전후 달라진 것이 있다면
출마를 결심하면서 앞으로는 일선 정치인으로 살아가야 한다. 내후년 본선거 그리고 진보집권에 복무한다고 방향을 잡았다. 지금껏 살아온 삶에서 가장 큰 변화와 전환을 결단한 셈이다. 현장 농민운동가로 살던 생활과는 결별하는 것이어서 그게 가장 힘들었다. 이제 어디 가서 하고 싶은 말 다하지 못할 것이고, 슬리퍼도 맘대로 못 신고 다닌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애당초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군민들의 지지를 받다 보니 어깨가 더 무거워졌을 뿐이고, 그렇게 만들어준 당원 동지들의 헌신을 생각하면 더 열심히 해서 2년 후에는 꼭 좋은 결실을 맺어야겠다는 마음이 크다.
승리를 확신한 순간이 있지 않았나
있었다. 노인정·상가 어디를 가건 분위기가 우 모아지며 모두가 이석하를 찍겠다는 분위기가 달아올랐고 그게 여론조사 결과에 그대로 반영됐다. 그런데 이 분위기가 사전투표를 지나면서 찬물 끼얹듯 꺼지는 게 감지됐다.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이석하는 신천지”라는 말이 광범위하게 퍼지면서 심상치 않은 조짐이 보였다. 흑색선전이었는데 막을 수가 없었다. 심지어 평생을 같이 살아온 마을 분들조차 어찌된 것이냐 물어올 지경이었다. 거기에 민주당이 전력을 다하면서 선거운동 태세가 달라졌다. “이재명을 살려야 한다”는 호소와 함께 수십 년 묵은 애증관계를 총동원해서 표심을 공략했고 우리가 그것을 넘어서지 못했다.
결정적인 패인이 흑색선전이란 말인가
그렇지는 않다. 가장 큰 패인은 후보인 저와 영광(진보당 영광군 위원회)의 준비 정도, 역량 부족에 있었다고 본다. 진보당의 헌신적 활동에 감동해서 저를 지지하려 했던 분들, 이번에는 당이 아니라 인물과 능력을 보겠다 결심한 유권자들을 끝까지 지켜내지 못했다. 타지의 자원봉사자들과 영광의 운동원들이 대등하게 한덩어리가 돼 선거를 치렀더라면 결과는 달라졌을 것이다. 이번 선거를 치르면서 아무런 토대가 없던 지역에 쌀 대책위가 구성되고 농민 총회를 치르면서 농민회가 태동하기도 했다. “다음에 꼭 다시 나오라”는 군민들의 격려가 유실되지 않도록 잘 보존하고 농민회와 진보당의 역량을 배가하는 것, 이것이 풀어야 할 과제다.
농민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모든 분들의 관심과 격려, 지지에 감사드린다. 그 마음 하나하나가 차곡차곡 모여서 표로 쌓였다. 견고한 양당제의 틀을 깨고 그 산을 넘어야 ‘농민군수’는 탄생할 수 있다. 전국의 모든 지역에서 보내준 성원, 한결같은 마음, 함께 흘렸던 땀 한 방울도 허투루 여기지 않고 더욱 정진해서 다음에는 반드시 승리로 보답하겠다. 진보 농민군수를 향한 나의 발걸음은 결코 멈추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