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악의 벼멸구 사태가 우리에게 남긴 것

[인터뷰 ] 박형대 전남도의원

2024-10-18     김수나 기자

[한국농정신문 김수나 기자]

이달 초 최악의 벼멸구 피해에도 농업재해 인정에 시간을 끌던 농림축산식품부(장관 송미령, 농식품부)를 향해 급기야 ‘장관 사퇴’ 일성까지 터져 나왔다. 마을마다 약이 동날 정도로 방제에 온 힘을 쏟아부었지만 벼멸구는 수그러들지 않았다. 수확기를 앞둔 터라 더 이상의 방제도 어려워 농민들은 조기 수확에 나섰다. 피해 현장이 사라지면 추후 정확한 피해 조사가 어렵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다. 그제야 피해 현장을 찾은(10월 1일 전북 임실) 송미령 장관은 이미 막심한 피해에 방제도 한계치에 달했는데도 “농가 피해가 우려된다”라며 “철저한 공동방제 실시”를 당부했다. ‘탁상행정’이란 말이 무색할 정도로 현장 상황과는 동떨어진 인식이 장관의 말에 그대로 묻어났다. 벼멸구 사태 초기부터 현장을 뛰어다닌 박형대 의원(진보당, 사진)은 지난 4일 정부세종청사 농식품부 앞에서 하루 종일 1인 시위와 선전전을 하며 ‘현장을 모르는 장관은 자격이 없다’라고 압박했다. 분노와 절박함으로 농민의 목소리를 대변했던 박형대 의원의 이야기를 지난 14일 들어봤다. 김수나 기자, 사진 원재정 기자
박형대 진보당 전남도의원.

벼멸구 피해가 전국에 알려지기 시작한 건 추석 명절 직후지만, 그 이전부터 이상 징후가 뚜렷했다고 들었다

사실 9월 초부터 벼멸구 피해가 심해지고 있었지만, 그때만 해도 농촌진흥청이나 관련 기관들은 평년 수준에서 약을 치면 방제가 될 것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농민들도 처음엔 약을 철저히 하면 될 거라고 봤다. 하지만 약도 효과가 없고 급격한 확산세는 전혀 멈추질 않았다. 굉장히 특이한 경우다.

추석 직후부터 농민들은 농업재해 인정을 요구했다. 재해 인정 시점이 너무 늦었다는 질타가 쏟아졌다

평년의 벼멸구와 달리 세대수가 늘고 고온이 지속됐기 때문에 이에 준해 특별 방제 대책이 먼저 나와야 했다. 전남도는 추석 명절 때 급하게 방제 대책을 세웠지만 농식품부는 특별한 대책이 없었다. 그 뒤라도 농업재해로 재빨리 인정해서 피해 조사에 들어갔어야 하지만, 지난 7일에서야 송 장관이 국감 자리에서 발표했고 8일에 농업재해가 확정됐다.

재해 인정 시점이 중요한 이유는 정확한 피해 조사 때문이다. 잔류농약 문제로 조기 수확해야 하는데 그러면 정확한 조사가 어렵다. 방제와 수확기가 겹쳐 현장에선 9월 25일 이후로는 약을 치지 않기로 하고 조기 수확으로 방향을 틀었던 거다. 현장에선 지금도 재해 인정 이전에 벼를 베어버린 농가는 어떻게 하느냐고 걱정한다.

병충해는 사실상 재해 인정 사례가 거의 없다. 병충해는 기상에 따른 일차적 피해와 달리 기상과의 직접적인 연관성을 밝혀야 해서인데, 이상기후가 엄습하는 시대엔 맞지 않는 것 같다

농식품부가 재해 여부를 평가하는 과정은 대단히 탁상행정이다. 농민과 지자체가 9월 초부터 중순까지 25일간 총력으로 방제했지만 엄청난 피해가 발생한 상황 자체를 중심으로 봐야 한다. 기상과의 상관성보단 현장의 노력으로도 자연현상을 방어하지 못했다면 그것이 바로 재해라는 인식이 더 중요하다. 농식품부와 농진청의 이번 대응 모습은 현장과 너무나도 괴리됐다. 추석 때라도 현장에 와봤다면 그럴 순 없었을 것이다.

늦었지만 이번 재해 인정이 지닌 가장 중요한 의미는 농민에게 자연재해의 책임을 떠넘기지 않았다는 점이다. 병충해는 예방과 방제의 문제라는 게 애초 농식품부가 내비친 기본 입장이었다. 이는 벼멸구 피해가 농민들이 제대로 방제하지 않아서 생긴 것이라는 시각을 전제한 셈이다. 재해로 인정되지 않았다면 농민들이 자연재해의 책임을 둘러쓸 뻔했던 거다. 재해로 인정됐기 때문에 불가항력적인 자연재해에 대한 농민들의 노고가 이해받을 수 있게 됐다.

농식품부는 농업재해 인정에 결코 적극적이진 않다가 국감 시작 당일 전격 발표했다. 그 배경은

전남도의 경우, 도지사·도의회·농민단체와 농협 등 모두가 재해 인정을 요구했고, 국회도 나서면서 같은 목소리가 순식간에 터져 나왔다. 실제로 지역 현장은 농식품부가 재해로 인정하지 않으면 농민들은 물론 시장·군수까지 상경할 정도의 분위기였다. 농촌은 물론 국민적 여론을 넘겨버릴 수는 없는 상황이 온 셈이다.

지난 1일 전북 임실을 방문한 송 장관을 만나 재해 인정을 촉구했지만, 농진청에서 근거 자료를 만들고 있다고만 했다. 그때까지도 안이한 인식이 역력했다. 전남도농업기술원은 이미 9월 중순에 도의원들에게 이상고온에 따른 벼멸구 확산이란 내용의 분석 자료를 보고했는데, 본청(농진청)은 10월 초까지도 검증하고 있었다면 문제다. 과학적 검증이 필요하다면서 그 검증이 너무나 늦었던 거다. 결국 여론에 등 떠밀리다시피 한 모양새로 재해를 인정한 꼴이다.

지역 현장은 한마디로 똘똘 뭉쳐 대응한 것으로 안다. 어땠나

농업재해로 인정받기까지 각자가 역할을 잘 해냈다. 9월 초부터 확산세가 이상해 유심히 살폈지만 추석쯤엔 매우 심각했다. 추석을 쇠러 온 가족들이 같이 약을 쳤다. 20년간 추석에 단 한 번도 문을 연 적이 없는 농약방들이 문을 열었고 약을 구하려는 사람들로 바글바글했다. 벼멸구는 하룻밤 사이에도 벼 즙액을 엄청나게 먹어버리니 한 할머니는 밤새 잠을 못 자고 약을 사러 나왔다.

상황이 굉장히 심각해 바로 전남도 농축산식품국장에게 연락했고, 명절이지만 함께 적극적으로 나서기로 했다. 바로 다음 날 농축산식품국과 도 농업기술원이 비상점검반을 각 시군에 급파하고, 긴급 방제를 지원하게 됐다. 공무원들도 명절을 반납하고, 방제약을 수급하기 위해 급하게 움직였고 농기원은 원인 분석에 나섰다.

이에 맞춰 농민단체와 행정·의회, 각 기관이 나서 방제 지원뿐 아니라 농업재해 인정과 정부 차원의 지원을 촉구했다. 그러나 이때까지도 농식품부가 사태를 평이하게 보자 결국 피해 볏단을 싣고 지난달 30일 용산 대통령실을 찾아갔다. 국회의원들도 국감에서 총공세를 펼치려고 준비했다. 이처럼 모두의 노력이 더해졌다.

지난달 30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앞에서 열린 ‘병충해·수해 특별대책 촉구대회’에서 박형대 전남도의원이 벼멸구 피해가 선명한 볏단을 들고 기후재난에 의해 발생한 자연재해에 대해 ‘특단의 대책’ 마련을 정부에 촉구하고 있다. 한승호 기자

벼멸구 피해와 같은 사례가 이번만으로 끝나진 않을 것이다. 어떤 대응이 더 필요할까

농업재해로 인정되는 자연재해 범위나 재해 인정 과정 개선은 당연히 필요하다. 근본적으론 기후변화에 대응해 농업정책 전반을 대폭 개선해야 한다. 이번 벼멸구 피해는 이상기후로 인한 특수한 경우지만 앞으로 다른 형태의 재해가 나타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관련된 농업정책과 재해 대응책 전반을 돌아보는 계기로 삼는 것이 중요하다.

이상기후가 농업에 끼치는 영향을 살피고, 이에 선제적으로 대응하며 피해 발생 뒤엔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등을 벼멸구를 통해 학습하는 기회였다고 본다. 특히 올해는 벼멸구뿐 아니라 배추·콩·마늘·양파 등에서 예전과는 다른 재해가 빈번하게 나타났고, 그 피해도 컸다. 관련 대책을 꼭 세워야 한다.

예를 들어 중앙정부와 지자체별로 마련된 기후대응기금을 농어업 분야에 투입하는 것이다. 현재 이 기금의 대부분은 재생에너지 개발에 쓰이는데, 기후변화로 가장 큰 피해를 보는 농어업의 기후변화 대응에도 적극 지원해야 한다. 아울러「농어업재해대책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차원을 넘어 정부의 탄소중립 정책 차원에서 농업 분야를 더욱 강화하는 정책이 필요하다.

농업정책을 좀 더 큰 틀의 기후정책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뜻인가

이번 벼멸구 사태는 재해 인정과 보상금 지원으로 끝나는 문제가 아니다. 기후재난의 전조증상으로 여기고, 적극적으로 정책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미 늦었다는 절박함으로 가야 한다. 기후변화의 속도나 기후재난의 양상이 매우 급박함에도 정작 피해가 복구되면 잊곤 한다. 탄소중립 정책도 겨우 온실가스 감축량을 맞추는 것에 급급할 정도로 매우 형식적이다. 이번 벼멸구 사태를 통해 기후 대응 문제를 깊이 바라봐야 하고 농업계도 앞서서 과제를 제안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