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끝없이 소급하면 무엇이 남겠습니까”

2024-10-13     이광재 작가

무엇이든 물어보라는 마르땡꼬 신부의 말에 이쪽에서는 연장자인 필상이 말하였다.

“이렇게 뵙기를 허락해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신부님들께서는 불란서라는 나라에서 왔다고 들었는데 이 먼 곳까지 나와 어찌 죽음을 불사하는지 오래전부터 궁금하였습니다.”

마르땡꼬 신부가 알아들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최고선이야말로 완전한 만족이기 때문입니다. 최고선은 오로지 은총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습니다. 이 최고선을 얻으면 천사와 비슷해지고 천주와도 비슷해집니다. 지상의 유일한 복음을 알지 못해 비참한 지경에 처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이 어찌 최고선이 아니겠습니까? 최고선을 찾으면 만복을 만날 것이요, 설령 그를 위해 죽더라도 영생을 얻을 것입니다. 그래서 천주를 받들어 섬길 것을 전교하는 것입니다.”

마르땡꼬 신부는 흡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마르땡꼬 신부와 구레나룻이 유사한 송희옥이 입을 여는데 체구며 얼굴까지 닮은 듯하였다.

“불교는 바깥에서 만들어졌지만 들어와서 비판받고 검토되었으며 조선의 다른 것과 합쳐지고 백성과 고락을 함께 하면서 우리 것이 되었습니다. 유학도 들어온 지 천년이 넘었고 조선에서는 국시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항의 백성들은 논의에 참여하지 못하므로 어떤 것은 억압으로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러니 시간이 더 필요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신부님들은 또 하나의 학을 심어 이제 다른 것들을 똥 친 작대기 취급하게 할 작정입니까?”

“물론 조선에는 불교와 유교와 도교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러나 국가에서 금지함에도 많은 백성이 어찌 천주학에 들겠습니까? 천주학은 천주님 한 분이 있을 뿐이며 그분 아래서는 누구든 평등하기 때문입니다. 길 가던 양민은 양반을 만나면 꿇어 엎드립니다. 불교와 유교와 도교가 있지만 어찌하여 그런 귀천을 두는지요. 백성들 사이에서 천주학이 번져가는 것은 그런 이치가 있는 것입니다.”

마르땡꼬 신부는 진중하였으며 목소리가 묵직하였다. 이번에도 미소를 지었는데 진지하게 듣던 필상이 입을 열었다.

“하면 이양선을 타고 와 대포와 총을 쏘면서 약한 나라를 위협하는 것은 신부님들 뜻과 상관없는 일인지요? 반상과 신분을 따지는 고루함보다 총포를 쏘아 약한 나라를 굴복시키는 일이 더 훌륭한 일인지 저는 모르겠습니다. 신부님 나라의 이양선이 강화도를 침략할 적에 그곳에 있었습니다. 그때 이양선에 동승하여 길 안내를 맡은 사람이 불란서에서 건너온 신부와 조선의 신자였습니다.”

“조선에서 교인들을 핍박하고 신부를 사형시켰기 때문에 응징한 것입니다. 신부는 천주를 대신해 하늘의 질서를 전파하는 신의 대리인입니다. 그런 신부를 사형시킨 것은 하느님을 모독한 일이기 때문에 그리된 것입니다.”

그 말에 곰방대를 어루만지던 기범이가 나섰다.

“기왕에 천주 얘기가 나왔으니 묻겠습니다. 천주는 창조의 주인이고 모든 것을 주재한다는 데 그가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이는 기범이가 집요하리만치 관심을 두었던 문제 아닌가. 기범이의 질문에 답변하고 나선 것은 리샤르 신부였다.

“자, 모닥불을 피운다고 가정해봅시다. 모닥불이 피어나기 위해서는 장작이 있어야 되겠지요. 그러나 장작은 스스로 자신을 태우는 물건이 아니라 불에 탈 수 있는 가능태일 뿐입니다. 이 가능태가 현실태로 바뀌기 위해서는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다른 현실태가 있어야 합니다. 무언가 활활 타는 불쏘시개가 있어야 하지요. 하지만 불쏘시개라고 해서 스스로 타오를 수는 없습니다. 역시 어떤 가능태로부터 현실태가 된 것이라야죠. 그렇기 때문에 그 가능태와 현실태 사이엔 다른 현실태가 있어야 하고, 그것은 또 어떤 가능태로부터 시작되어야 합니다. 이렇게 끝없이 소급하면 무엇이 남겠습니까? 어디선가는 무엇으로부터 시작돼야 하지 않겠습니까?”

리샤르 신부의 푸른 동공이 기범이를 주시하였다. 이는 엊그제 그들이 언급한 불연기연과도 연관된 말이므로 무슨 뜻인지 알면서도 기범이는 궁금한 척 물었다.

“그게 무엇입니까?”

“사람들은 그것을 신이나 천주라 부르지요. 전지전능한 하느님이 있어야겠지요.”

“그렇습니까? 그렇다면 그건 누가 보고 와서 일러준 것입니까?”

“그건 누가 보고 온 것이 아닙니다. 인간의 이성을 통하여, 이성을 명오라고도 하지요? 바로 그 이성을 통한 추상능력으로 추론할 수 있지요.”

“우리도『영언여작』을 읽었습니다. 그 책에서도 명오를 통한 그런 능력을 아니마라 하여 소중히 언급하였더군요. 그러나 변설이 훌륭하고 말에 빈틈이 없어 보여도 절대자라는 하느님이 실상 속에는 없으면서 이야기 속에만 살아있다면 말짱 도루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