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농민들, 멸구 피해 벼 불태우며 "불통정권 퇴진시키자"
트랙터·트럭 170여대 이끌고 도청 앞서 농민대회 개최 폭탄 맞은 듯한 멸구 피해에도 ‘재해’ 인정 않는 정부 규탄 쌀값 보장·재난 대책 수립 촉구하며 ‘불통’ 농정에 쓴소리
[한국농정신문 장수지 기자]
태풍을 앞두고 나락 수확에 여념이 없는 와중에도 농민 200여명이 일손을 내려둔 채 전라남도청 앞에 모였다. 쌀값 보장과 멸구 피해의 재해 인정을 촉구하기 위해서다.
전국농민회총연맹 광주전남연맹과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광주전남연합, (사)전국쌀생산자협회 광주전남지역본부는 2일 전라남도청 앞에서 ‘쌀값 보장! 재난대책 수립! 광주전남농민대회’를 개최했다. 곳곳에서 진행 중인 수확 작업으로 인해 대회는 당초 예상보다 적은 규모로 진행됐으나, 그럼에도 이날 전남도청 앞엔 트랙터 15대와 트럭 150여대가 운집했다. 이날 농민들은 “벼멸구 피해 심각하다. 자연재해로 인정하라!”, “밥 한 공기 300원, 나락값 8만원 보장하라!”는 구호를 연신 외치며 대회의 긴장감을 고조시켰다.
가장 먼저 윤일권 전농 광주전남연맹 의장은 “정부와 행정당국에서는 현재 멸구 피해를 재해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온 들녘이 폭탄을 맞은 것처럼 타들어 가고 있는데 마치 벽을 보고 이야기하는 것 같다”며 “오늘 다가오는 태풍으로 인해 수확에 매진하느라 많은 동지들이 함께하진 못했지만, 우리 농민들이 해내야 할 것은 단 한 가지 윤석열 퇴진뿐이라는 걸 확실히 하고자 한다. 아울러 오는 11월 20일 전국농민대회에는 추수 끝내놓고 전남 농민 모두 서울로 가서 박근혜정권을 끌어내렸던 바로 그 힘으로 윤석열정권을 끌어내리자”고 힘줘 말했다.
이어 권영식 쌀협회 광주전남본부장도 쌀 가격이 생산비도 건지지 못할 수준으로 폭락한 상황을 강조하며 ‘불통’ 윤석열정부를 끌어내리는 데 끝까지 함께하겠다는 의지를 전했다.
한편 이날 대회는 지난 9월 28일 전국 동시다발적으로 치러진 윤석열정권 퇴진 시국대회의 2차 대회 성격을 가졌다. 지난달 28일 광주전남에선 노동자 중심으로 시국대회(1차 전남 민중대회)가 진행됐는데 멸구 피해 벼 방제 등의 이유로 대회에 대거 참석하지 못한 농민들이 2차 전남 민중대회로 광주전남농민대회를 민주노총 등과 함께 준비한 것으로 알려진다.
이에 연대의 힘을 더하기 위해 이날 대회에 참석한 이병용 민주노총 전남본부장은 소리 높여 윤석열정권 투쟁의 의지를 고취시켰다. 이병용 본부장은 “윤석열정부 집권 2년 반 만에 다들 ‘나라가 거덜났다’고 말한다. 농민과 마찬가지로 특히 노동자들은 윤석열정권 이후 단 하루도 편할 날 없이 지내고 있다”며 “정당한 노동의 댓가를 요구하는 노동자들을 폭력집단으로 규정짓는 윤석열정권을 쫓아내기 위해 11월 노동자대회와 12월 민중총궐기를 계획 중이다. 박근혜 퇴진을 촉발했던 전봉준투쟁단의 힘으로 올해가 가기 전 윤석열정권을 반드시 함께 무너트리자”고 강조했다.
전남의 멸구 피해가 크게 확산된 추석 명절 전후 즈음부터 현재까지 농민과 함께 현장에서 투쟁 중인 박형대 전라남도의회 의원(진보당)도 연대 발언에 나섰다.
멸구 피해와 쌀값 폭락, 매년 들여오는 40만8700톤의 수입쌀 모두를 ‘재난’이라 지적한 박형대 의원은 멸구 피해의 재해 인정을 위한 활동 경과를 먼저 밝혔다. 박 의원에 따르면 박 의원은 지난달 30일 피해 벼를 싣고 서울 용산 대통령실을 향했으며 지난 1일에는 오은미 전라북도의회 의원과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을 전북 임실에서 만나 멸구 피해의 재해 인정 필요성에 대해 이야기했다. 하지만 농식품부에선 여전히 ‘검토 중’이라는 답변만 내놨으며 이에 전라남도의회는 2일 오전 멸구 피해의 재해 인정을 촉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전라남도 시장군수협의회 또한 같은 성격의 성명을 냈으며, 김영록 전라남도지사 또한 2일 오후 멸구 피해의 재해 인정과 특별재난지역 선포를 촉구하는 건의문을 발표한 상태다.
이에 박 의원은 “모두가 멸구 피해를 재해로 인정하지만, 오직 윤석열정부만 이번 피해를 재해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정부는 점차 확산되는 멸구 피해의 상황을 인지하고 수확이 본격화되기 전 당장 재해로 인정해야 한다”며 “수확 전 재해 인정과 피해 조사를 촉구하기 위해 오는 4일 농림축산식품부(세종정부청사)를 찾아갈 계획이며 국정감사가 시작되는 7일에는 국회를 찾을 생각이다. 지금은 싸워야 할 때고, 이 투쟁에는 회전의자 앉아 있는 단체장, 뱃지 달고 있는 의원, 농민 모두가 함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 의원의 발언에 열띤 호응이 잇따랐고, 이후엔 쌀값과 윤석열정부 농정에 대한 현장발언이 이어졌다.
먼저 김원숙 나주여성농민회 사무국장은 농사를 짓기 시작한 1990년 당시 쌀값과 휘발유가격 등을 예로 들어, 최근 폭락한 쌀값의 심각성을 강조했다. 이어 김 사무국장은 쌀값 폭락의 원인을 △수입쌀 △변동직불금 폐지 등으로 지적한 뒤 얼마 전 정부가 발표한 쌀값 대책을 꼬집었다. 김 사무국장은 “쌀값 보장을 위해선 햅쌀을 사료용으로 활용할 게 아니라 수입쌀 40만8700톤 전량을 사료용으로 돌려야 하고 제도적으로 쌀값을 보장할 수 있는 변동직불금제를 다시 도입해야 한다. 전종덕 의원이 현재 농민이 쌀농사를 지어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 있도록 하는 공정가격제도를 포함한 양곡관리법 개정안을 국회에 발의한 상태인데, 국회는 이를 반드시 통과시켜야 하며 윤석열 대통령은 이에 거부권을 행사해선 안 된다”고 잘라 말했다.
이어 멸구 벼 피해와 폭우로 인한 배추 피해 등 이중고를 겪어내고 있는 해남군 농민들을 대신해 이무진 해남군농민회장은 윤석열정부의 ‘불통’ 농정을 강하게 규탄했다. 이무진 회장은 최근 정부가 발표한 수급조절관리체계 개선 방향과 수입안정보험 확대 등을 특정해 꼬집었다. 이 회장은 “정부는 올해 3월 채소가격안정제 비율을 오는 2025년 30%까지 높이겠다고 발표한 지 반년도 지나지 않아 채소가격안정제를 없애고 앞으로 수급관리를 중앙정부가 아닌 지방정부와 생산자단체가 하도록 하겠다고 발표했다. 또 수입안정보험이 수입보장보험이던 시기, 해당 제도가 한국의 농정과 맞지 않는다고 이를 폐기해야 한다고 한 지 얼마 지나지도 않아 이름만 바꿔 수급정책 전반을 민간보험 형태로 뒤바꾸려 하고 있다”며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는 말이 딱 들어맞는 게 이대로면 선무당 정부가 농민을 다 죽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에 지난달 30일 500여명의 농민과 해남농민대회를 개최했고 이 자리에서 올해 반드시 수입쌀을 막아내고 윤석열정부를 끝장내자고 결의한 만큼 앞으로의 투쟁에 앞장서겠다”고 밝혔다.
이날 대회는 윤석열정권 퇴진 의지를 다진 건의문 낭독과 함께 지난달 30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앞에 싣고 갔던 멸구 피해 벼를 소각하고 트랙터 10대를 전라남도청에 도열시키며 끝을 맺었다. 전남 농민들은 도열시킨 트랙터를 이끌고 내달 전국농민대회에 참석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