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일장을 맛보다㊶] 대천이란 이름으로 더 익숙한 보령오일장
지금은 모습이 변했지만, 소나무 숲이 좋았고 넓은 백사장이 아름다웠던 대천해수욕장을 기억한다. 나와 비슷한 또래들은 대천이 보령보다 입에 붙은 사람들이 꽤 많을 것이다. 이유라면 1995년에 대천시와 보령군을 보령시로 통합을 한 탓일 것이다. 마지막으로 가본 게 언제인지 가물가물해서 얼마나 변했는지 궁금하기도 했다. 이 더운 여름에 바다를 보러 가는 것도 아니고 뙤약볕 아래 오일장을 돌아다니는 일은 쉽지 않다. 그래도 오랜 시간 그곳을 지키고 앉아 장사를 하시는 분들을 생각하면 불평을 할 일은 아니다.
보령오일장은 보령시 중앙시장 건너 도로변을 따라 3과 8이 들어있는 날에 선다. 주차할 곳이 따로 없으니 중앙시장 주차장을 이용하면 된다. 새벽에 출발해 9시에 만난 우리는 제3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근처의 보리밥집으로 갔다. 그곳은 ‘점심에나 문을 열고, 오전엔 점심 장사 준비로 바쁘니 말도 시키지 않았으면’ 했다. 별 수 없이 중앙시장 초입에 있는 소머리국밥집엘 갔는데 기대 이상이었다. 특히 친절함에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이웃이 가져온 호박 2개를 주시면서 식구 많은 사람이 가져가라셨다. 부족하다고 느끼셨는지 오이고추를 한 봉지 또 주셨다. 조리를 하시는 안주인께서는 급하게 버무린 배추겉절이를 냉면대접으로 한 대접 주셨다. 아침을 먹으면서 배도 부르고 좋아진 기분으로 장터로 향했다.
그늘도 없고, 장 보는 일과 무관한 사람들도 지나다니는 옆으로 자동차들도 달리는 길이다. 시 차원에서 뭔가 조처를 해주었으면 하는 생각을 잠시 하면서 다녔다. 나물 좋아하는 내가 보기만 해도 설레는, 지금 정말 맛있는 참비름나물이 많이 나와 있다. 이른 봄부터 나오는 하우스 재배 비름나물이 아니고 노지에서 자란 것들이다. 돌아가기 전에 사 가야지 하면서 한 걸음 더 나가면 어린 덩굴손이 붙어있는 정말 탐나는 호박잎이 발길을 붙잡는다. 사가면 큰 잎은 쪄서 쌈으로 먹고 어린 것은 감자 넣고 된장국을 끓이면 너무나 좋을 호박잎이다.
8월의 보령장은 참비름, 호박잎 말고도 각양각색의 호박, 다양한 품종의 오이, 오이가 늙어 피부가 터진 노각들이 풍성하게 나와 있다. 윤기가 하나도 없이 건조해진 노인의 다리를 닮은 모습이 정말 이름과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고구마순은 김치 담을 욕심이 나게 했다. 호박잎이나 고구마줄기를 하시는 분들은 모두 사가는 사람 편하라고 쉬지 않고 손을 놀리신다. 호박잎은 까실까실한 뒷면의 줄기를 까고, 고구마순은 줄기 껍질을 벗기는 일이다. 사고 싶지만 다듬을 시간이 부족한 사람들이 약간의 웃돈을 내고 사가면 좋겠다.
바다를 끼고 있는 곳의 오일장이지만 묘하게 해산물장은 소소한 규모였다. 처음 본 소라젓갈과 고추씨에 파묻어 놓은 생선들이 보였다. 그리고 다른 지역의 오일장과는 다르게 ‘보령 김시장’ 골목이 따로 있다. 김 특화거리를 만들어 놓았다. 김 특화거리를 지나 옆골목으로 가니 말린 햇고추를 가지고 나온 상인들이 많이 보인다. 가까운 안면도의 고추들이 보령장에 나온다. 안면도에서 나오는 고추는 괴산이나 영양의 고추와 견줄만한 품질로 나도 가끔 구매하고 있다. 고추가 많이 나온 골목엔 소형트럭의 짐칸을 식탁 삼아 점심도 먹고 술도 한 잔 하는 상인들도 보인다. 이런 것이 오일장의 낭만인가 싶은 생각이 들어 거기 같이 끼고 싶은 발길을 돌렸다.
그러다 삼삼오오 모여 식사를 하시는 상인들을 만나게 되었는데 식사가 맛있어 보였다. 남의 밥상을 기웃거렸더니 딱해 보였는지 먹을 수 있는 곳을 알려주셨다. 1000원이면 먹을 수 있다고 했다. 먹을 생각은 아니었지만 1000원의 밥값이 궁금해서 가보니 ‘행복로 섬김공동체’라는 간판이 붙어 있었다. 장날 상인들을 위해 거의 무료급식에 가까운 밥상을 차리고 있었다. 가슴이 뜨거워지는 순간이었다. 이런 배려들이 오일장이나 전통시장을 지키는 힘이 되면 얼마나 좋겠나 하는 생각을 하게 했다.
아침에 먹지 못한 보리비빔밥집에서 점심을 해결하고 장터를 떠났다. 장터를 벗어나면서 창밖을 유심히 보면 오일장에서 만난 어색했던 해산물장을 이해할 수 있다. 중앙시장 옆으로 수산물골목이 특화된 한내시장이 있다. 그 옆으로 동부시장도 있고 현대상가도 있다. 보령은 보령 9경을 포함해 머드체험장도 있고, 놀거리가 많지만 시장투어만으로도 하루를 보낼 수 있는 곳이다. 투박한 손으로 깎아주시는 오이를 먹어보고 살 수 있는 곳이라 넉넉해지는 곳이다.
고은정 제철음식학교 대표
지리산 뱀사골 인근의 맛있는 부엌에서 제철음식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제철음식학교에서 봄이면 앞마당에 장을 담그고 자연의 속도로 나는 재료들로 김치를 담그며 다양한 식재료를 이용해 50여 가지의 밥을 한다. 쉽게 구하는 재료들로 빠르고 건강하게 밥상을 차리는 쉬운 조리법을 교육하고 있다. 쉽게 장 담그는 방법을 기록한 ‘장 나와라 뚝딱’, 밥을 지으며 만난 사람들과의 인연을 밥 짓는 법과 함께 기록한 ‘밥을 짓다, 사람을 만나다’ 등의 저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