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씨는 동틀 무렵 움직임을 멈췄다
숙영이 백구의 몸에 조각이불을 덮어주고 방에 들자 병호가 일렀다.
“책임감이 강한 놈이오. 내 집을 침범하는데 누군들 목숨을 걸지 않겠소?”
백구가 앓는 소리를 내자 그날은 식구들도 잠을 이룰 수 없었다. 그러나 지혈이 잘 되었고 먹성도 좋아 하루 이틀 시간이 지나자 상처는 탈 없이 아물어갔다. 반면에 선선한 기운이 돌고부터 장씨의 환후가 심상치 않았다. 어쩌다 기운을 차려 이야기를 나누다가도 이튿날은 코에 바람이 드는지 살필 정도였다. 곡기를 넘기지 못해 몸도 오그라지는데 정신이 맑은 날도 목소리는 엥엥대기만 해서 무언가 빠져나가는 모습이 보이는 듯하였다. 외출을 삼간 기창은 밤낮으로 숙영이 달여 오는 약과 묽게 쑨 죽을 장씨의 입에 흘려주었다.
움직임이 자유로워진 백구는 털갈이를 하느라고 사방에 털을 날렸으나 장씨가 모습을 보이지 않자 기운이 없어 보였다. 닭 뼈 같은 건 으득으득 삼킬 만큼 식욕이 왕성했지만 남기는 날이 많았고 사람 먹는 것을 그대로 줘도 식탐을 부리지 않았다.
“혈색이 안 좋구나. 어디 불편하냐?”
백구의 밥그릇을 살피는 숙영에게 하루는 측간을 나온 기창이 물었다.
“괜찮습니다.”
그러자 기창이 마루에 앉으며,
“좀 앉아보거라.”
하고는 옆자리를 가리켰다.
숙영이 마루 끝에 엉덩이를 걸치자 손을 내미는데 진맥을 하자는 뜻이었다. 시아버지라고 내외할 숙영이 아닌지라 소매를 추켜 내밀자 맥을 고르는데 따뜻하였다.
“집안에 식구가 들었구나.”
무언가 내려앉으며 가슴이 울렁거렸다.
“할머니께서 누워계시니 네게 신경 쓸 여력이 없다. 몸을 보하는 약을 처방할 테니 달여 먹도록 해라. 하고 할머니에게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크게 상심하지 말고 몸부터 챙기거라.”
“네.”
“병호랑 함께 들어오너라.”
숙영이 병호를 찾아 안방에 들자 자주 갈아입히건만 옷에 밴 지린내와 내장 상하는 냄새가 풍겼다. 장씨는 골격만 또렷할 뿐 검버섯이 무성하고 머리카락도 빠져 두피가 드러나 보였다. 그래도 소리는 알아듣는지 식구들이 대화를 나누면 주름살이 움직일 때도 있었다.
“어머님, 손자며느리가 할 말이 있다 합니다.”
기창은 말을 해놓고 숙영을 보았다. 숙영의 성격이면 직접 밝히게 해도 상관없다고 여긴 모양이었다.
“할마님, 아이가 태어난다고 합니다. 어서 털고 일어나세요.”
숙영의 말에 장씨의 얼굴이 움찔하더니 이불이 들썩였다. 숙영이 얼른 손을 감싸자 드물게 평온한 얼굴이 되었다. 장씨가 잠든 후 기창이 나가보라고 하여 잡곡에 고구마를 넣고 저녁을 지었다. 다른 날은 식구들 수발이 끝나야 부엌이든 어디서든 차려 먹지만 기창이 같이 먹자하여 셋이 한 상에서 먹었다. 부엌일을 끝내자 병호가 미리감치 이불을 펴면서 누울 채비를 하였다.
“너무 이르지 않습니까?”
숙영이 지난번의 말을 그대로 돌려주자,
“당분간은 어두워지면 누울까 합니다.”
하고 병호가 먼저 자리에 들었다. 숙영이 속속곳 차림으로 옆에 누웠다.
“왜 아무 말도 안하십니까? 맥을 짚은 아버님은 대번에 화색이 돌던걸요.”
“모르겠습니다. 어리둥절합니다.”
“그게 다입니까?”
“가슴에 돌덩이가 놓인 것 같고 세상이 좀 무서워졌습니다.”
그의 손이 속적삼 안에 들자 숙영이 몸을 틀어 젖꽃판을 내주었다. 그의 손길이 젖꼭지를 쓸더니 움직임을 멈췄다.
“무슨 생각을 하세요?”
“이야기했던가요? 동무가 옥에 갇혀 있다구.”
“했었지요.”
“부인께서 가슴을 내어줄 적에 생각났습니다. 필부필부가 세상사는 재미를 말하면서 남정네가 손을 내밀면 못이기는 척 가슴을 내준다 하였지요. 혼인도 안 한 처지로 어찌 알았을까요?”
사이를 두다가 숙영이 한숨을 쉬었다.
“겪었으니 알겠지요.”
그날 산중의 맹금 우는 소리를 들으며 잠든 숙영이 군불을 지피러 나설 때까지 안방엔 불빛이 남아 있었다. 그녀가 나서는 기척에 기창이 병호를 깨워 들어오라고 일렀다. 그새 장씨의 숨은 더욱 가늘어져 끊어진 것이나 진배없었다. 기창은 아버지와 아내의 임종을 지켰던 사람이라 누구보다 정황을 잘 아는 듯하였다.
“병호와 아기가 왔습니다.”
기창이 장씨의 귀에 속삭인 후 병호가 무릎걸음으로 다가들며,
“할머니, 병호입니다. 어서 쾌차하셔야지요.”
하였고 숙영이도 한마디 하였다.
“할마님, 조금만 더 견디세요. 조금만 더요.”
하지만 말한 보람도 없이 장씨는 긴 숨을 몇 번 쉬더니 동틀 무렵 움직임을 멈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