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천주학에 들 생각입니까?”

2024-08-18     이광재 작가

미리 준비한 탱자가시로 물집을 다스리고 감발을 치던 병호로부터 받았던 감동을 잊을 수 없었다. 그로부터 기대하게 되던 집안의 모습이 있었는데 소금실에 들어와 겪은 바로는 과연 상상했던 그대로였다. 처음에는 조금씩 기동하던 장씨가 자리보전한 것만이 그녀는 아쉬웠다.

“할마님, 다리 주물러 드릴까요?”

그녀가 다가앉자 기창이 자리를 물렸다. 몸이 밭아 뼈만 도드라진 장씨가 특히 무릎 때문에 고생하는 것을 알고 그쪽을 어루만졌다.

“우리 애기는 손이 커서 어쩜 이리도 아프고 시원한지 모르겠구나.”

“좀 살살할까요?”

“아니다. 딱 좋다. 내가 손을 보아야 눈을 감을 터인데.”

“네 할마님, 밤낮으로 노력하겠습니다.”

장씨가 검버섯 핀 얼굴에 미소를 머금었다.

“시할미도 있고 시아버지도 있는데 부끄러운 말을 편히도 하는구나.”

그 말에 숙영이도 배시시 웃었다.

“앞으로는 숨겨서 말하겠습니다.”

“아니다. 넌 그래서 시원하고 이쁘구나. 손이 귀한 집이다. 집안을 일으켜라.”

“할마님만 털고 일어나시면 여럿을 낳아드릴게요.”

장씨는 가는 코를 골며 잠이 들었다. 기창이 숙영을 따라 마루로 나서며 물었다.

“네 보기에 요즘 병호는 어떠하냐? 학업에 매진하느냐?”

소반을 든 숙영이 잠시 망설이다가,

“어쩌면 아버님…… 출사에 뜻이 없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고 답하자 내색하지 않으려고 해도 기창은 낯이 어두워졌다.

“알았다. 일 보아라.”

기창이 측간으로 향할 때 병호가 싸리문을 열고 들어섰다. 저녁을 준비하여 안방에서 기창과 병호가 겸상을 하고 죽을 쑤었으나 장씨는 두어 숟갈밖에 뜨지 못하였다. 가을인 데다 산골이라 기명을 치우자 이내 어둠이 내려왔다. 장씨와 기창에게 저녁 문안을 한 병호는 등불에 기대어 필사한 문건을 읽고 있었다.

“아까 그 주머니는 그분 것이 맞지요?”

“그이가 흘리고 간 물건입니다. 지난봄에 챙겨두었는데 이제야 전해드렸습니다.”

“그분은 천주학쟁이죠?”

“그런 듯합니다.”

“한데 무슨 말을 그리 긴히 하셨습니까?”

병호가 시선을 들고 웃었다.

“제 일을 다 알고 싶으십니까?”

“말씀하지 않으면 모르지요. 하지만 천주학은 집안의 목숨 전부가 걸린 일이니 엄중하지요. 그런 사람과 긴한 이야기를 나누는데 어찌 몰라도 된다 하십니까?”

병호는 반박하지 못하고 오후에 있었던 일을 일러주었다. 묵주가 든 주머니를 건넸을 때 뒤가 켕겨 고심했던지 약초꾼 얼굴에선 단박에 화색이 돌았었다. 병호는 조선에 들어온 서양 신부가 있거든 대면케 해달라 청하였고, 사내는 병인년 이후 모두 물러갔다 들었지만 내막은 알기 어렵다 난색하였다. 서학에 관심을 두었던 터라 이치에 닿거든 무리에 들겠다며 한 차례 더 당부하자 기회가 되거든 연락하겠다며 사내는 돌아갔다는 것이었다.

“정말 천주학에 들 생각입니까?”

“옳은 길이면 그리 해야지요.”

숙영은 반닫이에 개어놓은 이불을 꺼내 깔았다.

“할마님께선 속히 손을 보자 하십니다.”

“그래도 좀 이르지 않습니까?”

뒤안에서 급히 뛰어가는 짐승의 발자국 소리가 들리는데 백구가 분명하였다. 아까부터 장태 쪽에서 닭이 수런거리더니 무슨 낌새가 있는 모양이었다. 백구가 낮게 으르렁대는 소리를 낸 후 대숲 쓸리는 소리가 쑤아아 일어났다. 그러다 일시에 멈추므로 다시 덮는 이불을 내오는데 백구의 성에 받친 소리가 들려왔다. 그저 위협이나 해보는 소리가 아니라 뭔가 사생결단할 때나 내는 소리였다. 안방 문 열리는 소리가 들렸고 병호가 짚단에 불을 붙여 뒤안으로 가보니 살점이 너덜거리는 백구의 등짝에서 피가 흘러 털에 배었다.

“아가, 된장을 가져오너라. 병호는 오징어 뼈를 갈아오구.”

기창이 백구의 등짝을 손으로 막았고 숙영이 부엌으로 달려가는 사이 병호는 관솔을 밝히고 갈무리해둔 오징어 뼈를 돌확에 빻았다. 기창이 상처를 들춰 뼛가루를 뿌린 후 된장을 두툼히 얹고 동여맬 것을 가져오라 하자 숙영이 미리 마련해둔 어린애 기저귀를 가져왔다.

“산짐승도 배가 고팠던 게지. 삵이란 놈이다.”

기창은 기저귀로 백구의 몸을 감아 마루 밑에 깔린 짚검불에 눕혔다. 처치를 하였으니 지혈이 되면 소생할 것이요, 그렇지 않으면 어려워진다는 말에 기창과 병호가 방에 들고도 숙영은 자리를 뜨지 못하였다.

“몇 마리 내주고 말지 어찌 목숨을 건단 말이냐?”

그녀가 중얼거리자 녀석은 꼬리를 흔들었으나 앓는 소리를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