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값 하락과 정치적 책임

2024-08-04     하승수 대표
하승수 대표. 변호사 및 공인회계사. 1990년대 중반부터 다양한 시민사회운동에 참여해 왔다. 현재는 농촌·농업·농민을 옹호하는 공익법률단체인 ‘공익법률센터 농본’ 대표, 예산감시운동 단체인 ‘세금도둑잡아라’ 공동대표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7월 25일 통계청이 발표하는 산지 쌀값이 20kg 기준 4만4879원까지 떨어졌다. 열흘 전인 7월 15일에 비해 0.9%가 떨어지면서 4만5000원 선이 무너진 것이다. 80kg 기준으로는 18만원 밑으로 떨어진 것이다.

이는 작년 10월 5일 가격이었던 21만7552원에 비해 무려 17.5% 하락한 것이고, 윤석열정권이 약속했던 80kg 기준 20만원에서도 10% 이상 떨어진 것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여전히 실효성 있는 대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 이 정도면 쌀값 하락을 의도적으로 방치하는 것이 아니냐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잘못된 근거에 기반한 근시안적인 ‘거부권 행사’

2021~2022년 쌀값이 바닥을 모르고 추락하면서 야당을 중심으로 양곡관리법 개정이 대안으로 논의됐다. 주된 내용은 일정 기준 이상 쌀이 초과 생산되거나 쌀값이 하락하면 정부가 의무적으로 쌀을 매입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전혀 새로운 얘기가 아니었다.

2020년 정부가 변동직불제를 폐지하면서, 일정 요건이 되면 정부가 나서서 쌀을 매입하는 ‘자동시장 격리’를 통해서 쌀값을 안정시키겠다고 약속했었기 때문이다. 변동직불제는 목표가격을 설정하고 쌀값이 그에 못 미치면 정부가 차액을 보전해주는 제도였는데, 이를 폐지하면서 그 대안으로 ‘자동 시장격리’를 약속했던 것이다.

그런데 2021~2022년 쌀값 하락 사태가 발생했는데도, 정부가 약속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으니, 법률을 통해 정부의 매입 의무를 보다 명확하게 규정하자는 것이 양곡관리법 개정의 취지였다.

그런데 윤석열 대통령과 정부는 이런 양곡관리법 개정안에 극렬하게 반대했다. 국가 재정에 과도한 부담을 주고 쌀 과잉 생산을 부추길 수 있어 결과적으로 농업 경쟁력을 저해할 수 있다는 주장이었다. 그러나 이 주장의 타당성에 대해서는 하나하나 뜯어볼 필요가 있었다.

첫째, 전 국민의 생존기반이자 식량자급의 마지막 보루라고 할 수 있는 쌀을 위해서 정부가 일정한 재정을 투입하는 것을 무조건 ‘과도’하다고 볼 수는 없는 것이다. 정부가 국방을 위해서 일정한 재정을 투입하는 것을 무조건 ‘과도’하다고 볼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더구나 정부가 각종 산업을 육성·지원하거나 토건사업을 벌인다는 명분으로 연간 수십조원이 넘는 예산을 사용하고 있다. 그런데 쌀값 안정을 위해서 꼭 필요할 때에 예산을 사용하는 것이 과연 ‘과도’한 것일까?

둘째, 양곡관리법이 개정되면 쌀 과잉생산을 부추길 수 있다는 것인데, 과연 국내 쌀이 과잉생산되고 있는 것인지도 따져봐야 할 문제이다. 현재 수입되는 쌀이 연간 40만톤에 달하는데, 이 수입쌀을 제외하면 국내 쌀이 과잉생산된다고 말할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셋째, 쌀값이 안정되면 농업경쟁력이 떨어진다는 논리도 이상한 것이지만, 지금 대한민국 상황이 ‘농업경쟁력’을 논할 수 있는 상황인지도 의문이다. 아무리 다른 산업에서 경쟁력이 있는 국가라고 해도 ‘먹는 것’에 차질이 생기면 국가의 존속이 불가능한 것이다. 특히 기후위기로 인해 농사짓기는 갈수록 어려워지는데, 세계 인구는 계속 증가하는 상황이다. 이것은 구조적인 식량위기를 초래할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식량자급률이 40%대에 불과하고, 가축이 먹는 사료까지 포함한 곡물자급률은 20%에도 미치지 못하는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농업경쟁력’을 얘기할 때가 아니라 어떻게든 농업기반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해도 모자랄 때인 것이다. 그리고 농업기반을 유지하려면, 필수작물에 대한 가격안정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보면 윤석열 대통령과 정부의 주장은 근시안적이고, 기후위기와 같은 시대적 상황을 간과한 것이었다. 그런데도 윤석열 대통령과 정부는 2023년 4월 4일 양곡관리법 개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했다. 최종적으로 야당이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킨 개정안은 당초 안에서 많이 후퇴한 내용이었지만, 그것조차 거부한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대책도 없이 양곡관리법 개정을 거부함으로써 ‘쌀값 안정’을 위한 실효성 있는 대책을 세울 시간까지 낭비해 버렸다. 따라서 현재의 쌀값 하락 사태가 해소되지 않는다면 윤석열정부에게 정치적 책임을 물어야 한다. 지난해 12월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본청 앞 계단에서 열린 ‘쌀값 재폭락 근본 대책 수립 및 양곡관리법 개정안 통과 촉구 기자회견’에서 농민들이 조속한 법 개정을 촉구하고 있다. 한승호 기자

공염불이 된 ‘쌀값 20만원’

더더욱 문제인 것은 근시안적인 논리로 양곡관리법 개정안을 거부하면서 정권 차원에서 약속했던 ‘80kg 기준 쌀값 20만원’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약속은 양곡관리법 개정안 거부권 행사의 정당성을 확보하려고 한 것이었다. 양곡관리법 개정이 없어도 ‘이 정도 쌀값은 지키겠다’는 약속인 것이다.

그렇다면 대통령과 정부는 이 약속을 지킬 정치적 책무가 있다. 만약 약속을 지키지 못한다면, 양곡관리법 개정안을 거부한 것에 사과하고 지금이라도 양곡관리법 개정안을 받아들이는 것이 옳다. 대통령과 정부의 약속은 그 정도의 정치적 무게감을 가져야 한다.

그런데 대통령과 정부의 지금 행태를 보면, 80kg 기준 쌀값 20만원에 대해 아무런 책임감도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 그렇지 않다면 18만원 아래로 떨어진 쌀값을 방관하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더구나 윤석열 대통령은 양곡관리법 개정안을 거부할 때 ‘포퓰리즘’ 운운하면서 야당을 비난해놓고, 지금의 쌀값 하락 사태에 대해서는 아무런 얘기도 하지 않고 있다.

더 나쁜 것은 책임을 전가하는 것이다. 지난 6월 정부와 여당은 ‘농협을 통해서 10만톤 소비를 촉진하겠다’는 것을 대책이랍시고 발표했다. 그러나 이것은 농협중앙회에 책임을 떠넘긴 것에 불과하다. 쌀값 안정은 정부가 책임질 영역이지 농협중앙회가 책임질 수 있는 영역이 아닌데도 책임을 떠넘긴 것이다.

그래서 농협중앙회는 연말까지 1000억원 규모의 예산을 투입하여 ‘범국민 쌀 소비촉진 운동’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한다. 범국민 아침밥먹기 운동, 쌀 수출·판매 확대, 쌀 가공식품 시장 활성화 등을 추진한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지역농협이 보유하고 있는 쌀 재고량을 소진하고, 국민 1인당 연간 쌀 소비량을 60kg로 회복시킨다는 것이다.

그러나 농협중앙회가 노력한다고 해서 갑자기 쌀 소비가 촉진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기본적으로 쌀 소비 촉진은 중·장기적인 대책은 될 수 있겠지만, 당장의 ‘쌀값 하락’에 대한 단기대책이 되기는 어려운 것이다. 더구나 지금 농협중앙회가 나서는 것은 정부의 책임방기 문제를 손바닥으로 가리는 것이 될 수 있다. 농협중앙회의 재원만 소모되고 ‘쌀값 반전’에는 그다지 효과가 없는 것으로 드러나지 않을지 우려되는 상황이다.

지난달 9일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회의실에서 열린 제22대 국회 첫 농림축산식품부 업무보고에서 송미령 장관이 더불어민주당이 발의한 양곡관리법 개정안에 대해 답변하고 있다. 한승호 기자

정치적 책임을 묻는 것과 함께 국회 중심 논의 필요

물론 이렇게 쌀값이 떨어지다가 반등을 할 수도 있다. 정부가 뒤늦게 대책을 내놓을 수도 있고, 다른 변수로 인해 쌀값이 반등할 수도 있다. 정부는 2024년 벼 재배면적이 당초 계획보다 1만ha 이상 줄어들었다는 수치를 믿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설사 쌀값이 반등한들, 뛰어오른 생산비를 감안하면 80kg 기준 쌀값 20만원도 정책의 기준이 될 수는 없다. 또한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벼 재배면적 감축 기조도 재검토돼야 한다. 쌀은 식량자급을 위한 최소한의 기반이고, 고령화된 농민들이 마지막까지 붙들고 있는 농사도 쌀농사다. 식량위기가 우려되는 상황에서 전 국민의 생존을 벼랑 끝으로 몰아놓겠다는 것이 아니라면, 더 이상의 벼 재배면적 감축이 타당한 것인지도 재논의돼야 한다. 그리고 쌀농사부터 적정한 가격이 보장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래야 최소한의 농업기반을 지킬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윤석열정권은 정치적 책임이 매우 크다. 대책도 없이 양곡관리법 개정을 거부함으로써 ‘쌀값 안정’을 위한 실효성 있는 대책을 세울 시간까지 낭비해 버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신의 약속을 지키려는 노력조차 게을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재의 쌀값 하락 사태가 해소되지 않는다면 윤석열정권에게 정치적 책임을 묻는 수밖에 없다.

다른 한편 근본적인 대책을 수립하는 논의도 병행해야 한다. 핵심은 두 가지다. 첫째, 과거의 변동직불제처럼 일정한 가격(목표가격, 적정가격, 기준가격 등의 용어 중에 어느 것을 사용해도 관계없다)을 설정하고, 그 가격에 미달할 경우에 차액을 보전해주는 방안이다. 둘째, 일정 기준 이상의 쌀 재고과잉이나 쌀값 하락 시에 정부가 재정을 투입해서 쌀을 매입하도록 명시하는 방안이다. ‘자동 시장격리’라는 정부의 약속을 지키게 하는 것이다.

이 두 가지 방안을 중심으로 하되, 다른 새로운 제안이 있으면 논의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미 정권에 기대할 것이 없어진 상황이므로, 이 논의는 국회를 중심으로 신속하게 이뤄질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