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일장을 맛보다㊵] 일상이 무료하고 지루할 땐, 용인오일장
용인에 사는 친구에게 용인오일장을 간다고 하니 웃었다. 재미없는데 뭐하러 오느냐고 했다. 그렇고 그런, 너무 뻔한 시장이라는 얘기였다. 어느 오일장엘 가야 할지 정할 때마다 하는 고민들이 그렇지만 그래도 나는 뚜벅뚜벅 가본다. 가보면 그곳에는 그곳만의 매력도 있고 늘 이야깃거리가 있었다. 오일장은, 거기가 어디든 가보면 아는 재미가 있다. 용인오일장도 그랬다.
용인오일장은 경전철로도 다녀올 수 있는 곳이라 수도권에 사는 사람들은 주차 걱정 안 하고 가도 좋겠다. 김량장역이나 송담대역에서 내리면 된다. 지리산에서 출발한 나는 중앙동행정복지센터에 주차를 하고, 중앙시장을 관통하는 오일장투어를 시작했다. 구획 정리가 잘 된 상설시장에는 족발과 순대국을 파는 전통 순대 마을을 비롯해 만두 마을, 떡 마을 등이 있어 다양한 먹거리를 경험할 수 있다. 우리 일행은 중앙시장에서 꽤나 알려진 식당에서 수제비와 계란말이김밥을 아침으로 먹었다. 제법 이른 시간인데 모든 좌석이 꽉 차 있었고 우리가 나올 무렵에는 밖에 줄을 선 사람들도 있었다. 가격은 싸고 양이 많은데 맛도 괜찮았다. 가게 입구에서 수제비를 끓이는 분의 손놀림이 예사롭지 않았다. 나도 음식을 하는 사람이니 더 느낌이 왔다.
장마철이라 우산 써야 하나 하는 걱정을 하며 빗속을 뚫고 달렸는데 상설시장을 벗어나니 해가 쨍하니 뜨거워서 오히려 힘든 날이다. 상설시장을 옆에 두고 개천을 따라 늘어선 오일장이 제법 길어서 봄가을에는 소풍 나온 기분으로 다녀도 좋을 것 같다.
7월의 오일장이나 시장의 주재료는 수박, 오이, 참외, 호박, 가지 등 다양한 여름채소들이다. 벌써부터 나온 고구마줄기를 까면서 파는 상인도 있다. 상인들과 눈이 마주치면 사라고 하니 거절하기 힘들면 알아서 눈길을 피해야 한다. 적당히 눈을 맞추고 적당히 눈을 피하면서 다니면 그 또한 재미나다.
오일장에 가면 흔한 풍경이 난전으로 만나는 정육점이다. 용인에서도 어김없이 소나 돼지의 부위별 판매를 하는 상인을 만났다. 수구레도 팔고 있었다. 수구레는 구례오일장과 부산에서 국밥으로 먹어본 것이 전부인데 데쳐서 무침으로 해 먹거나 볶아서도 먹는다고 한다. 사고 싶었지만 너무 더운 여름에 계속되는 일정이라 아쉬웠다. 우리의 이런저런 관심이 좋았는지 장터 주위가 예전에는 수구레촌이었다는 정보도 주었다. 그러나 이제는 수구레를 주제로 파는 음식점은 없다고 했다. 도래창도 팔고 있었는데 지금은 날이 뜨거워 할 수 없지만 겨울엔 그곳에서 도래창을 구워서 판다고 한다. 겨울에 다시 와야하나, 하면서 자리를 떴는데 용인에 사는 동행이 우리를 도래창볶음을 파는 곳으로 안내했다. 다행이라면서 도래창 볶는 모습을 넋을 놓고 보았다. 4명이었지만 늦은 아침을 먹어 2인분만 해달라고 했다. 흔쾌히 차려주신 2인분은 4인이 먹고도 남는 양이었다. 처음 먹어본 도래창은 녹진한 기름맛이 아주 고소하니 먹을만했다. 술안주로 괜찮겠다 싶었는데 밥도 볶고 싶었다. 남은 일정이 발목을 잡아 낮술도 못하고 나와 다시 천변을 따라 오일장을 걸었다.
김량장역에서 출발해 걷는 오일장의 끝자락에 재미난 모습이 보였다. 중년의 여성 두 분이 깻잎지와 열무김치를 담아다 팔고 계시는 모습이었다. 가장 큰 반찬통이 비어가는데 이미 빈통이 여러 개였다. 전문 반찬가게도 아니고 길에 펴놓고 파는데 펴자마자 바로 다 팔리는 분위기였다. 옆에 앉아 따뜻한 밥을 팔면 정말 재미나겠다.
용인중앙시장과 용인오일장 부근엔 파머스마켓, 로컬푸드매장도 같이 있어 쇼핑의 천국 같은 느낌이 나는 곳이다. 1000원에 파는 원피스, 500원에 세 켤레를 주는 양말, 국화빵과 어묵탕, 호떡이 유혹하고 한 보따리 5000원인 채소와 과일들이 넘쳐나는 장터 옆에 첨단의 시설을 자랑하는 대형마트가 있는 매력적인 장터가 용인오일장이다. 5와 0이 붙는 날에 선다.
고은정 제철음식학교 대표
지리산 뱀사골 인근의 맛있는 부엌에서 제철음식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제철음식학교에서 봄이면 앞마당에 장을 담그고 자연의 속도로 나는 재료들로 김치를 담그며 다양한 식재료를 이용해 50여 가지의 밥을 한다. 쉽게 구하는 재료들로 빠르고 건강하게 밥상을 차리는 쉬운 조리법을 교육하고 있다. 쉽게 장 담그는 방법을 기록한 ‘장 나와라 뚝딱’, 밥을 지으며 만난 사람들과의 인연을 밥 짓는 법과 함께 기록한 ‘밥을 짓다, 사람을 만나다’ 등의 저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