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일본은] 농산물의 합리적 가격 책정을 법제화로
일본의 농민운동가이자 국회의원이었던 아시카 카쿠(足鹿 覺)는 1977년 출판한 <농산물 가격은 누가 정하는가>라는 책에서 “농민은 자신이 생산한 농축산물에 대한 가격은 자신이 정하지 못하고 값싸게 판매한다. 하지만 농민이 구입하는 농기계 등의 자재는 거의 모두 메이커가 가격을 정해 비싸게 사야 한다”면서 현대사회에서의 농민과 자본의 기본적 모순에 대해 지적한다. 그리고 농산물의 가격 결정에 있어 농민이 참가할 수 있도록 법적 보장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국제 정세와 극심한 기후변화 등을 배경으로 일본 농정의 헌법이라 불리는「식료·농업·농촌기본법(농업기본법)」개정안이 지난 5월 29일 참의원 본회의에서 가결됐다. 이번에 개정된 법에서 주목할 점은 농산물을 비롯한 ‘농식품의 합리적 가격 형성’에 관한 내용이다. 제2조(식량 안전보장의 확보) 제5항에는 ‘농식품의 합리적인 가격 형성에 대해서는 수급 사정이나 품질 평가가 적절하게 반영되면서 농식품의 지속적 공급이 이뤄지도록 농업인, 식품산업 종사자, 소비자 등 푸드 시스템 관계자들에 의해 농식품의 지속적인 공급에 필요한 합리적 비용이 고려되어야 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또한, 이를 위한 정부의 책무를 제23조(농식품의 지속적인 공급을 위한 비용의 고려)에서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다. ‘정부는 농식품의 가격 형성에 있어서 푸드 시스템에 속해있는 각 단계별 관계자들이 농식품의 지속적 공급에 필요한 합리적 비용이 반영될 수 있도록 하고, 그 필요성에 대한 이해 증진과 합리적 비용의 명확화 촉진, 그리고 그 외에 필요한 시책을 마련하도록 한다.’
이에 농림수산성은 올해 1월부터 농산물의 적정가격 책정을 위해 쌀과 과일, 채소 등 품목별 생산비 구조 조사에 착수했다. 생산부터 유통, 소매까지 각 단계에서 거래되는 가격을 파악하고, 비료 가격이나 운송비 등의 비용이 농산물 가격에 미치는 영향을 정밀 조사 중이다. 그리고 상승한 비용을 농산물 가격에 적절하게 반영할 수 있도록 조사 결과를 활용할 방침이다. 조사 대상 품목은 쌀·대두·밀 등의 곡물과 사과·감귤 등의 과일, 채소와 음용 우유, 달걀, 식육, 차 그리고 두부와 낫토, 곤약 등의 가공식품이다.
일본에서 농산물의 적정가격 책정에 관한 논의가 시작된 배경엔 농민에 대한 공정한 보상을 보장하기 위한 프랑스의 ‘에갈림(EGAlim) 2법’이 있다. 실제로 농림수산성의 제1차 ‘적정가격 형성에 관한 협의회’에서 에갈림법에 관해 논의한 바 있다. 에갈림 2법에선 농업인과 농산물의 첫 번째 구매자가 반드시 서면 계약을 해야 하고, 생산비를 반영한 가격 결정 방법을 기재하는 것을 의무화하고 있다. 법에서 정한 계약 기간은 3년이며, 생산비 변동이 있을 때만 변동된 생산비를 가격에 반영토록 한다.
하지만 일본에선 적정가격 책정이 현실적으로 어려우리라는 우려도 있다. 프랑스는 농협이 농가로부터 농산물을 매입하는 경우가 많아 계약이 편리하고, 생산비 지표를 정부 인가를 받은 ‘품목별 전문조직(organisations interprofessionnelles)’에서 작성하기 때문에 객관성을 담보할 수 있지만, 일본은 이러한 조직이 없다는 것이 그 이유다. 그럼에도 현재 농림수산성에선 음용 우유와 두부·낫토 워킹그룹을 각각 운영하고 있다. 워킹그룹에선 생산자와 제조업자, 도·소매업자, 소비자, 전문가 등의 의견을 청취해 각 품목의 생산 및 유통 특성 등을 파악하고, 합리적 가격 도출을 위한 논의를 추진하고 있다.
농산물의 가격 형성을 법제화·제도화하기는 어려움이 있다. 농산물 가격을 정하는 것은 농업인뿐만 아니라 유통업자, 식품가공업자, 소비자에 이르는 모든 푸드 시스템 구성원이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농민은 가격 결정의 주체가 돼야 한다. 농민은 농산물 판매가격을 통해 생계를 유지하고, 재생산을 위한 자금을 확보한다. 그러려면 농산물 가격 결정에 있어서 최소한 생산비와 농민의 인건비는 보장돼야 한다. 그렇기에 농산물 가격 결정에 농민이 참여한다는 것은 농민의 기본적 인권을 보장하는 가장 중요한 첫걸음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