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자치군·특별자치면이 필요하다
최근 전북 임실군에 가서 강연을 할 기회가 있었다. ‘전북특별자치도와 풀뿌리민주주의’라는 주제였는데, 참석하신 분들에게 “전북특별자치도가 글로벌생명경제도시를 비전으로 하고 있다는데, 그걸 아시나요?”라고 물어보니, 모른다고 하는 분들이 꽤 됐다. 지금 추진되는 특별자치도의 문제를 보여주는 한 장면이었다.
2006년 제주특별자치도가 출범한 이후에 세종특별자치시, 강원특별자치도, 전북특별자치도까지 출범했다. ‘특별자치’라는 단어가 들어간 시·도가 전국 17개 시·도 중에 4개로 늘어난 것이다.
특별자치냐 특별개발이냐?
이렇게 ‘특별자치’를 하겠다는 지역은 늘어났지만, 특별자치 자체는 혼란에 빠져 있다. 특별자치를 왜 하는 것인지, 도대체 어떤 방향으로 해야 하는 것인지부터 정립이 안 돼 있기 때문이다.
‘특별자치’란 개념 그대로 이해하면, 한 국가 내에서 특정 지역이 다른 지역에 비해 차별화된 자치권을 누린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예로는 유럽의 섬 지역을 들 수 있다. 제주특별자치도가 출범할 당시에는 포르투갈의 마데이라(Madeira), 아조레스(Azores) 제도를 모델로 삼았었다. 포르투갈의 마데이라와 아조레스는 포르투갈 본토에서 멀리 떨어진 섬 지역인데, 1970년대 이후 포르투갈의 민주화 과정에서 헌법상으로 특별한 지위를 인정받았다. 그리고 본토의 지역들에 비해 광범위한 자치권을 누리고 있다. 그래서 제주특별자치도도 입안 과정에서 포르투갈의 예를 참조했던 것이다.
사실 한 국가 내에서 모든 지방자치단체들이 동일한 자치권을 누려야 하는 것은 아니다. 한 국가 내에서 지역별로 다양한 형태의 자치권을 누리는 사례들은 많다. 그런 점에서 ‘특별자치’라는 시도 자체는 긍정적이다.
문제는 ‘특별자치’를 한다고 하면서 특별한 개발을 하려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지역의 정치인들, 기득권 세력들이 그런 혼란을 초래하고 있다.
제주의 경우에도 특별자치도 이전에 ‘제주국제자유도시’라는 것이 먼저 추진됐다. 제주국제자유도시는 미사여구를 빼면 결국 규제 완화를 하겠다는 것이 핵심이었다. 그리고 2006년 특별자치도가 출범했는데, 시작부터 혼선이 있었다. ‘제주국제자유도시를 하기 위한 수단으로 특별자치를 한다’는 식의 잘못된 인식이 퍼져 있었기 때문이다.
국제자유도시는 경제전략의 일종이고, 특별자치는 제주지역 민주주의의 근본에 관한 것이다. 국제자유도시라는 경제전략은 언제든지 폐기하고 다른 전략을 채택할 수 있는 것이지만, 특별자치는 제주지역의 미래를 위해서 포기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국제자유도시보다 특별자치는 훨씬 더 근본적이고 포괄적인 개념인데, 정치인이나 소위 ‘전문가’라는 사람들조차 그에 대해서 제대로 된 인식이 없었던 것이다.
난개발로 몸살 앓는 제주가 반면교사
결국 국제자유도시 추진을 명분으로 개발에 관한 규제가 완화된 것은 제주의 난개발을 부추겼다. 중국자본 등 외국자본까지 들어왔고, 그 결과 많은 논란과 부작용이 발생해 왔다. 제주특별자치도가 출범할 당시에 중앙정부는 연방제 국가의 ‘주(州)’ 수준으로 분권을 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지방분권도 제대로 되지 않았다.
오히려 제주국제자유도시 구상에서 매우 핵심적인 기능을 하게 돼 있는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는 국토교통부 산하기관으로 돼 있어 국토교통부의 통제를 받고 있는 실정이다. 제주특별자치도청의 2인자인 행정부지사는 여전히 행정안전부 공무원이 낙하산으로 내려오고 있다.
제주의 경우에는 특별자치도를 출범하면서 기초지방자치단체를 폐지했는데, 그로 인한 부작용도 심각했다. 도지사 1인에게로 권력이 집중됐고, 제주시의 도시지역으로 집중 현상도 심화됐다. 결국 ‘분권과 자치’는 제대로 안 되고, 난개발만 확대된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다.
이런 제주특별자치도의 경험을 다른 지역에서는 반면교사로 삼을 필요가 있다. 그리고 제주지역 일각에서 나오는 것처럼 제주의 경우에도 국제자유도시 비전을 폐기하는 것을 검토해야 한다. 오히려 ‘생명과 평화의 섬’과 같은 비전이 제주의 미래를 위해 필요할 것이다.
강원과 전북특별자치도에 대한 우려
그런데 강원과 전북을 보면, 제주의 전철을 밟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가 드는 점들이 있다. 강원특별자치도의 경우 ‘미래산업글로벌도시’로 지역비전을 설정하고 있고, 전북특별자치도의 경우 ‘글로벌생명경제도시’를 비전으로 설정하고 있다. 모두 ‘도시’라는 공통점이 있다. 그리고 ‘자유로운 기업활동’이나 ‘규제 완화’ 같은 것이 핵심적인 키워드 중에 하나로 돼 있다.
강원이나 전북의 경우에는 광범위한 농·산·어촌지역을 포괄하고 있는데, 지역의 비전이 ‘도시’로 설정된다는 자체가 매우 우려스럽다. 자칫 농·산·어촌지역이 소외될 우려도 있는 것이다.
물론 아직까지 강원이나 전북특별자치도의 경우에 세부적인 내용이 모두 채워진 것은 아니다. 지금이라도 지역주민들의 참여를 보장하고 제대로 된 의견수렴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 특별자치도가 되면 계획도 수립하고 조례도 손봐야 하는데, 그 과정에서부터 주민들의 의견이 반영돼야 할 것이다.
특별자치군, 특별자치면도 가능해야
지방분권은 중앙정부로부터 광역지방자치단체로의 분권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광역지방자치단체로부터 기초지방자치단체로의 분권도 필요하다. 그리고 모든 시·군에게 동일하게 분권을 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 시·군에게만 특례를 인정하는 것이 지금도 제한된 범위 내에서는 가능하다.
요즘 수원, 고양과 같은 도시에서 ‘특례시’가 됐다는 것을 홍보하고 있는데, 군도 ‘특례군’이 될 수 있다고 현행 지방자치법에 나와 있다. 즉 지방자치법 제198조 제2항 제2호에서는 `실질적인 행정수요, 지역균형발전 및 지방소멸위기' 등을 고려하여 특례군을 인정할 수 있게 돼 있다. 그리고 전북과 강원 같은 특별자치도의 경우에는 시장·군수가 도지사와 협의를 거쳐 행정안전부 장관에게 특례 부여를 요청할 수 있게 돼 있다.
따라서 지금도 ‘특례군’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 자치역량이 있고 준비가 된 군에서는 ‘특례군’을 추진해서 보다 폭넓은 자치권을 보장받는 것을 검토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는 아예 특별자치군과 같은 개념을 도입하는 것도 논의할 필요가 있다. 특별자치도가 가능하다면, 특별자치군도 가능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1961년 5.16쿠데타 직후에 폐지된 읍·면 자치권 부활을 위해 특별자치 읍·면과 같은 제도를 도입하는 논의도 필요하다. 전국적으로 동시에 읍·면 자치권을 회복하는 것이 어렵다면, 준비가 된 곳부터 순차적으로 읍·면장직선제, 읍·면의 예산자율권 등을 도입하여 농촌지역의 생활인프라를 개선하고 풀뿌리민주주의를 실현하자는 것이다. 이를 특별자치 읍·면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특별자치 읍·면의 시범실시는 현재 존재하는 「지방자치분권 및 지역균형발전에 관한 특별법」의 개정을 통해서도 가능하다. 지금 일부 지역에서 시범실시하고 있는 주민자치회도 지방분권특별법에 근거를 두고 시행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의 특별자치도가 농촌을 소외시키는 측면이 있는 것은 분명하다. 오히려 농촌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특별자치군, 특별자치 읍·면이 필요할 수 있다. 농촌의 문제는 농촌 스스로 결정하고 풀어갈 수 있도록 자치권을 확대해야 한다. 앞으로 관련된 논의가 일어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