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일장을 맛보다㊴] 양평오일장, 시골장의 소박함은 사라졌지만…

2024-06-23     고은정 제철음식학교 대표

 

기찻길을 배경으로 물 맑은 시장 옆 주차장에 선 양평오일장의 전체 모습. 사진 류관희 작가

 

 

수도권 사람들이 짧은 나들이를 하기에는 나쁘지 않은 오일장이 바로 양평오일장인 것 같았다. 경의중앙선 양평역에서 내리면 바로 오일장과 연결되는 큰 장터인 덕이다. 여느 시장들보다 간식을 사서 먹거나 끼니를 때우거나, 아니면 술을 한 잔 하기에 좋은 먹을거리들이 즐비한 장이라 더욱 그렇다.

양평은 물 맑은 남한강을 끼고 있어 경관도 제법 수려하다. 가까운 곳에 세미원이라는 이름의 연밭도 함께 가볼 수 있어 좋다. 오일장이 서는 곳은 상설시장인 ‘물 맑은 시장’ 바로 옆이다. 양평군은 서울시민들의 상수원을 끼고 있는 곳이라 서울시와 협력해 친환경농업을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런 만큼 강물이 맑아 여러모로 서울시민들의 휴식 공간 같은 곳이기도 하다.

아쉬운 점이라면 직접 수확한 농산물이나 손수 만든 제품을 들고 나오시는 어르신들의 자리가 자꾸 사라진다는 것이다. 양평오일장은 사람들로 넘쳐나는 곳이다. 그만큼 장사가 잘 되는 장이니 장에 나오는 상인들 중 일부는 근처의 용문장과 양평장에만 다니신다고 했다. 적게 일하면서 생계를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면 그보다 더 좋은 일은 없을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오일장을 소개하는 기사를 쓰겠다면서 카메라를 들고 다니는 우리를 접근도 못하게 하신다. 얼굴이 알려진 유명인과 함께 하는 공중파 방송 정도 되지 않고선 환영받기 쉽지 않은 곳이란 생각에 약간 서럽다.

 

 

양평 개군면 소고기 얘기를 해주신 사장님의 가게 장터집. 사진 류관희 작가

 

 

아침부터 푹푹 찌는 날이라 지치기도 했고 먼길을 달려간 곳이라 아침부터 먹으려고 이리저리 둘러보니 양평해장국을 파는 장터집이 있다. 3대째 운영 중인 곳이라는데 백년의 전통을 이어갈 장수음식점이라는 간판이 붙어 있다. 국밥을 다 먹을 무렵 2대 사장님이 커피를 가져다주시면서 말을 붙이셨다. 같이 온 사진작가의 카메라들을 보고 더운 날에 어깨가 많이 아프겠다며 관심을 보이셨다. 본인도 루브르박물관에서 전시를 하신 경험이 있는 사진작가라신다.

해장국집 사장님과 얘기를 나누며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던, 스스로 깜짝 놀란 사실, 양평에서는 아주 특별한 소고기가 생산된다. 양평의 이름을 붙이고 전국에 퍼져있는 해장국집이 생긴 이유가 사실은 양평의 소고기에서 시작되었을 것임을 나는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소고기의 부속물이 가득 들어간 해장국은 양평에서 소가 많이 길러진 것임을 암시하고 있었는데도 말이다. 마블링을 기준으로 한 소고기의 등급제를 시작하게 한 곳도 양평이라고 했다. 해마다 열리는 한우대회에서 늘 좋은 성적을 올리고 있는 곳도 양평이라고 했다. 일반인들이 사먹기 쉽지 않은 고가의 한우라 호텔 등 특정한 몇몇 곳에서만 팔린다는 개군면 특산품 소고기는 장터 어디에서도 만나지 못했다. 오일장을 돌다보면 만날 수 있는 ‘양평 친환경 로컬푸드’ 매장에서도 만날 수 없었다. 그 은밀하게(?) 거래된다는 소고기의 맛이 너무나 궁금했지만 포기해야 했다.

 

 

각지에서 온 마늘들이 마늘 천국을 이루고 있다. 사진 류관희 작가

 

 

아침도 먹고 의외의 정보를 얻은 식당을 나와 장터를 어슬렁거린다. 단양·의성·서산·고흥 등의 햇마늘이 6월 중순의 양평오일장을 가득 채우고 있다. 6월이 제철인 완두콩·감자·오이·상추·열무 등 있을 건 넘치게 다 있지만 이상하게 양평이 보이지 않는 양평오일장이 많이 아쉽다. 도시의 대단위 아파트 단지에서 특정 요일마다 서는 팔도오일장 같은 모습이 보였다. 어쩌면 내 욕심일지도 모른다. 직접 밥을 안 해 먹는 현대인들에겐 이런 모습의 장이라도 서는 것에 감사하며 살아야 하는 건 아닌지 하는 생각을 하며 좀 더 어슬렁거려본다.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술이라도 마실 것이 아니면 더 머물 이유가 없어 장터를 나왔다. 돌아오는 길에 장터에서의 시간을 드라마 재방송 보듯 다시 짚어본다. 뭘 써야 좋을지 몰라서다. 뭔가 이야기를 풀어나갈 실마리를 찾지 못해서다. 그러다 프랜차이즈 사업을 계획하고 있지만 본점이라는 상호는 쓰지 않을 생각이라 하신 장터집 사장님이 떠올랐다.

부모님께 물려받은 식당을 더 잘 지켜나가기 위해 이런저런 문헌을 찾아본 결과 양평해장국과 같은 음식을 조선시대부터 먹어온 기록이 있어서라고 했다. 어떤 이름으로 사업을 키우실지 궁금하다. 부모님의 가게를 이어받고 다시 자녀에게 대물림 중인 가게가 있음에 잠시 울컥해졌다. 내가 품고 있는 오일장의 모습이 사라지고 있는 것에 안타까움이 커서 더 그런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공부하는 식당의 대표가 많은 세상, 그 지역의 특색이 지켜지는 오일장 같은 것에 희망을 걸면서 돌아온 날이었다.

수도권의 사람들이 남한강을 끼고 드라이브도 하고, 집에서 하기 쉽지 않은 음식들을 먹으며 하루 나들이를 하기 좋은 곳, 그곳이 양평오일장이라 쓰며 마침표를 찍는다.

 

 

다 팔릴 때까지 줄을 서는 순대집도 있다. 사진 류관희 작가

 

가족 모두 여기저기서 반찬집을 하고 있는 중. 사진 류관희 작가

 

고은정 제철음식학교 대표

지리산 뱀사골 인근의 맛있는 부엌에서 제철음식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제철음식학교에서 봄이면 앞마당에 장을 담그고 자연의 속도로 나는 재료들로 김치를 담그며 다양한 식재료를 이용해 50여 가지의 밥을 한다. 쉽게 구하는 재료들로 빠르고 건강하게 밥상을 차리는 쉬운 조리법을 교육하고 있다. 쉽게 장 담그는 방법을 기록한 ‘장 나와라 뚝딱’, 밥을 지으며 만난 사람들과의 인연을 밥 짓는 법과 함께 기록한 ‘밥을 짓다, 사람을 만나다’ 등의 저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