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특집 - 불편한 진실] 시설 투자 못 놓는 정부 … 유럽 등에선 ‘토양 탄소고정’에 집중

2022-01-01     장수지 기자

[한국농정신문 장수지 기자]

강원도 철원군 근남면의 한 동산에서 바라 본 들녘 위로 과채류를 재배하는 시설하우스가 빽빽이 들어서 있다. 한승호 기자

 

2030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 이행과 2050 탄소중립 실현을 위해 최근 농업계에서도 탄소 발생 감축 목적의 정책이 개발·추진되고 있지만 한켠에서는 여전히 시설 투자를 부추기는 관행 농정이 그 규모를 좀체 줄이지 못하는 실정이다.

국회 입법조사처가 지난해 10월 발간한 ‘농업 부문 최종에너지 소비 현황 및 향후 과제’ 현안 보고서에 따르면 농업은 전통적으로 인력과 자연 기후 등에 의존했으나 오늘날엔 원예시설과 축사 등의 냉·난방 시설, 생산·유통과정별 농기계 및 설비 활용이 일상화되며 에너지 다소비 산업으로 변모했다. 보고서는 한국에너지경제연구원이 3년마다 조사·발표하는 ‘에너지총조사보고서’의 농림어업 에너지 소비량 통계를 분석했는데, 석유류 사용 비중은 지속적으로 감소한 데 반해 뚜렷한 전력 비중 증가세가 농림어업 에너지 소비의 주요한 특징으로 나타났다.

아울러 국회 입법조사처 보고서는 “2001년 농림어업 에너지소비량의 85.9%를 차지하던 석유류 소비는 2016년 기준 59.5%까지 점유율이 낮아진 데 반해, 전력 소비량은 2010년 이후 연평균 5.9%의 증가율을 보이며 2016년 점유율이 38%까지 높아진 상황이다”라며 “농기계용 에너지 소비 비중은 줄고 있는 대신 건물용과 장비‧설비용 에너지의 소비 비중이 늘고 있음을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2011년 유기물자원화 학술지에 게재된 ‘농촌형 녹색마을 신재생에너지 보급을 위한 시설 재배 및 농업기계의 이산화탄소 배출량’ 보고서에 따르면 일반 경종 재배의 전체 온실가스 연간 배출량은 566만7,258tCO₂며 그중 시설 부문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493만2,607tCO₂에 달했다. 시설 부문 온실가스 배출량이 전체의 약 87%를 차지한다는 계산이다.

시설 재배의 경우 가온·난방 목적의 연료 사용 말고도 기반 조성 시 소요되는 철골 자재 수급을 비롯해 일정 주기마다 교체해야 하는 비닐, 내부 구조물 등을 생산·유통하는 과정에서 온실가스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자재 투입과 온실가스 발생이 대거 수반되는 시설 재배면적은 통계청 농업면적조사 결과 지난 2020년 기준 8만611ha며, 이는 같은 시기 전체 논·밭 경지면적 156만4,797ha의 약 5%를 차지한다.

시설 재배 면적이 전체의 5%밖에 안 되지만, 온실가스 배출량은 전체의 87%를 차지하고 있다. 시설 부문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는 정책 방향도 중요하나, 면적 대비 온실가스 배출량이 적은 관행 경종 재배의 역할에도 집중해야 한다.

그럼에도 우리 농정은 규모화와 시설 투자에 국한된 양상이다. 지난해 예산만 살펴봐도 스마트팜 실증 고도화 연구에 178억원, 스마트팜 혁신밸리 빅데이터 센터 2개소 추가 등에 77억원의 예산을 각각 신규·확대 편성했다. 올해는 △데이터 기반 스마트 농업 확산 62억원(신규) △임대형 스마트팜 조성 410억원 등에 예산을 편성했는데, 농업 분야 탄소중립을 위한 예산은 △저탄소 벼 논물관리기술 보급 28억원(신규) △가축분뇨 공동자원화시설 196억원 △저탄소에너지 공동 이용시설 29억원(신규) 정도다.

스마트팜 혁신밸리, 디지털·스마트 농업 확산 등을 내세운 시설·자재 조성·투입 사업에 적잖은 예산이 투입되고 있다. 기존 사업을 유지·발전해 나가는 차원에서 적정 수준의 예산 투입은 계속돼야 하지만 전 세계적인 탄소중립 농정과는 다소 거리가 있어 보이는 행보며, 시설 집약형 농업으로 생산성을 확보하는 한편 농촌과 농지를 신재생에너지 확산을 위한 공간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여전히 두드러진다.

반면 미국과 유럽, 호주 등 선진국의 탄소중립 농정은 ‘토양’의 탄소고정에 최근 주목하는 추세다. 2019년 IPCC는 “토양 탄소 저장량은 대기의 2~3배며, 이는 가장 효과적인 기후변화 완화수단”이라고 밝힌 바 있고,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는 탄소세 수입의 100억원 이상을 무경운·녹비작물 재배 등의 ‘건강한 토양 만들기 프로그램’ 실천 농민에게 지급하고 있다.

최근 국제연합식량농업기구(FAO)는 농촌진흥청과 아시아 ‘토양유기탄소지도’를 발간하며 “토양은 대기보다 탄소를 3배나 함유하는 만큼 토양의 유기탄소보유량을 늘리면 탄소 흡수와 배출이 0에 수렴해 온난화와 기후변화를 감소·완화시킬 수 있다. 토양의 탄소 저장능력을 알기 위해선 토양유기탄소지도 구축이 선행돼야 한다”며 “유기물 투입, 작부체계 개선, 물 관리, 무경운, 바이오차 투입 등 지속가능한 관리방법으로 토양의 탄소저장능력을 늘릴 수 있다”고 강조했다.

또한 FAO는 “토양이 지속가능한 방법으로 관리되면 매년 탄소 2.05Gt을 격리할 수 있으며, 연간 농업부문 온실가스 배출량의 최대 34%를 상쇄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