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시금치 메카 남해군, 폭락에 시름

산지가격 평년의 반토막 생산비 이하 시세 지속 “놀 수 없어 수확할 뿐”

2019-01-20     권순창 기자

[한국농정신문 권순창 기자]

남해 시금치농가 박광윤씨가 수확 중인 밭에서 최근의 어려운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박씨는 얼마전 1kg 670원의 경락가를 받고 자체폐기를 고려하기도 했다.

겨울채소 폭락은 배추·무만의 얘기가 아니다. 시금치·애호박·상추 등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채소류들도 올 겨울 폭락의 늪에 빠졌다. 겨울시금치의 집중 산지인 남해군의 경우엔 최근 섬 전체가 무거운 분위기에 휩싸여 있다.

남해군엔 농민들 사이에서 ‘산지경매’라 불리는 독특한 거래방식이 존재한다. 농협 직원이 경매사, 산지수집상이 중도매인 역할을 맡아 산지 곳곳을 돌아다니며 진행하는 간이 경매다. 남해에선 계약재배나 포전거래 대신 이 경매를 통해 산지수집상이 물량을 수집한 뒤 도매시장 등 각자의 거래처로 출하한다.

이같은 방식은 산지유통인들을 통한 거래에 일말의 공정성을 부여할 수 있다는 점에서 나름의 장점도 있겠지만 결국 유통비용의 가중이 불가피하고, 특히 올해처럼 가격이 폭락하면 농민들의 피해를 더욱 증폭시키는 경향이 있다. 최근 가락시장 시금치 경락가격은 4kg당 6,000원 안팎으로 평년대비 20~30% 하락해 있다. 하지만 산지경매는 가격하락폭이 좀더 커서, 평년에 1kg당 2,000~3,000원 하던 가격이 1,000원대 초반으로 반토막 나 있다.

15년째 시금치를 재배하는 박광윤씨는 “초창기에 냉장시설이 없을 때 홍수출하가 돼야 나오던 가격이 지금 나오고 있다. 시금치는 수확에 손이 많이 가는 작목인데 인건비도 안 나오는 꼴이다. 그저 놀 수 없으니 마지못해 수확하는 것”이라며 한숨지었다.

지난 14일 동남해농협 남면지점에서 산지수집상들이 참여하는 ‘산지경매’가 진행되고 있다. 이날 시금치 1kg 경락가는 최고가 1,620원, 최저가 500원을 기록했다.

남해 농민들은 논 이모작으로 주로 시금치와 마늘을 재배한다. 그런데 마늘은 노동강도가 높아 고령화된 농민들이 감당하기 힘든데다 해마다 가격불안을 반복하는 대표적 품목이다. 이에 마늘 대신 시금치 재배가 꾸준히 늘었고 최근엔 시금치 면적이 마늘의 두 배에 육박하고 있다. 최근엔 육지에서도 겨울시금치 재배가 꽤 늘어난데다 올해는 알맞은 강수량으로 습해·병해까지 비껴가 생산량이 크게 늘어났다.

겨울시금치는 그동안 남해 농민들의 중요한 소득원이었다. 벼농사로 본 손해를 그나마 시금치로 보전하는 식이었다. 그러나 타작목에서부터 밀려오는 도미노식 피해로 인해 이젠 시금치도 더 이상 안전지대가 아니게 됐다.

최길세 남해군 남면 이장협의회장은 “설을 앞둬 가격이 한창 좋을 땐데도 불구하고 이 모양이다. 20년 시금치 농사지으며 이런 폭락은 못 본 것 같다. 중요한 소득작목인 시금치가 폭락하니 시내의 가게도 텅텅 비고 남해의 지역경제가 죽어버렸다”며 안타까워했다.

이태문 남해군농민회장은 “가을에 시금치값이 잠깐 좋더니 12월부터 폭락이 왔다. 1월 되면 올라가겠지 했는데 더 떨어졌고, 설 지나면 올라가겠지 하는 사람도 있는데 내가 볼 땐 그럴 만한 요인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또 “소비지에서 가락시장, 산지로 갈수록 가격진폭이 커진다. 산지는 폭락에 허덕이는데 지난 11일엔 시금치 소비자가격이 15% 올랐다는 기사가 나왔다. 유통과정이 어떻게 이뤄지는지 모르겠다”며 야속한 심정을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