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특집]“함께 생산하고 생산하고 함께 나눈다”

‘두레 정신’으로 뭉친 어얼스멜론 작목반

  • 입력 2010.01.03 16:27
  • 기자명 연승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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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품질을 보장하기 위한 어얼스멜론의 선별과정은 까다롭기로 유명하지만 회원간의 신뢰를 바탕으로 공정한 선별을 하고 있다. 사진은 조성호 씨가 메론 선별기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모습

중소농이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한국농업에서 규모화와 기업화만을 강조하는 농업정책의 성공은 그다지 밝아 보이지 않는다. 소규모 농가들이 개방농정 시대에 살아남는 대안은 여러 가지가 고민되고 있다. 그 중에서도 공동생산과 공동계상으로 생산비 절감과 안정된 판로를 만드는 협업경영이 주요한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충청남도 청양군 봉암면에 15 농가가 약 3만평의 농지에 비닐하우스 1백50동에 메론 농사를 짓고 있다. 철저하게 공동생산과 공동계상을 하는 이들은 판로 걱정을 하지 않는다. 한국에서 가장 맛 좋은 메론을 생산하는 탓도 있지만 철저한 공동체 중심으로 엮어 있기 때문이다.

어얼스메론 작목반의 시초는 조성호 씨 주도로 1987년 메론 농사를 하는 사람들이 모여 만든 대한머스크메론회이다. 대한머스크메론회는 진주, 나주, 충남 등 전국모임형식으로 상인이 아닌 농민생산자 중심으로 메론 가격을 조정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그러나 상인들이 회원들에게 개별적으로 접근해 일부만 높은 가격을 주면서 와해를 시켰다.

이후 조성호 씨는 전국적인 조직체가 아닌 생산자 중심의 공동체에 뜻을 두고 1990년 초 메론 작목반을 충남 청양에 만들었다.

작목반의 출발은 5명이었다. 공동작업, 공동계상을 작목반의 원칙으로 정했다. 농사를 잘 짓든 못 짓든 출하 박스당 일괄적으로 출하대금을 지급했다. 조성호 씨는 “처음 작목반을 시작할 때는 실패를 하게 되어도 5명 모두가 실패하는 구조였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렇게 시작한 작목반은 5년 정도 지나자 회원 수가 10여명으로 늘어났고 20년이 지난 지금은 연작으로 인해 작목변경을 한 회원들을 제외하고 15 농가가 메론 농사를 짓고 있다. 

작목반이 성공적으로 운영되고 있지만 회원수가 증가하지 않는 이유는 철저한 공동체를 운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공동생산과 공동분배를 원칙으로 하는 작목반에 대한 세간의 시선이 곱지 않았던 것도 하나의 이유다. 작목반 초기에는 이런 원칙에 대해 공산당이라는 비판을 받았으며, 작목반 회원들이 농민회 활동을 하고 있어 왜곡된 소문도 나 있어 농민들이 들어오는 것을 꺼리기도 했다는 것이다.

작목반은 회원들에게 공동체 일원으로 철저한 원칙과 자발성, 엄격한 도덕성을 요구하고 있다. 도박이나 다방을 출입하거나, 접대부가 있는 술집을 출입하는 농가들은 작목반의 회원이 될 수 없다.

또한 공동작업의 엄격성도 작목반을 유지하는 힘이면서 회원수가 증가하지 않는 요인이다. 작업시간에 대한 회원들의 철저한 시간엄수는 기본이며, 하우스 보수 등 회원들이 공동으로 작업하는 것에 대해서도 인건비를 주지 않는다.

이와 더불어 엄격한 선별기준도 일반 대중들은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작목반은 품질을 높이기 위해 선별과정에서 비상품과는 철저하게 폐기처분을 했기 때문이다.

작목반의 공동체 정신은 두레에서 찾을 수 있다. 단순한 품앗이가 아닌 상부상조 정신으로 작목반을 만들었다. 초기에는 일반 농가도 참여할 수 있도록 시작했지만 농민회 회원들로 구성된 작목반이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로부터 사업보조금을 받는 것과 농협으로부터 대출을 받는 것 자체가 어려웠기 때문에 이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철저히 공동체 정신을 구현하게 됐다.

자생적으로 돈을 덜 쓰는 시설을 만들고 제값을 받기 위해 품질을 높였다. 작목반은 농민회가 생산과 유통에서 잘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으며, 서로 형제적인 공동체 의식을 고취할 수 있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영농조합법인이 아닌 작목반이기 때문에 출자형식이 아니며 농지는 개별 소유를 하고 있다. 하우스 150동에서 15농가가 공동으로 작업을 해 수확한 메론은 모두 집하장으로 집결해 선별과정을 거친다. 출하과정에서 박스당 500원의 운영비를 제한다. 운영비는 공동으로 쓰이는 물품과 경비 등에 지출된다.

작목반은 작업을 총괄하는 반장과 회계와 사무를 보는 총무, 판매업무만을 담당하는 판매책임자가 직접적인 운영을 하고 있다.

작목반이 공동계상을 하고 있지만 농지소유가 개별적이기 때문에 이로 인해 상대적으로 적은 규모의 농가는 작업일수 등에서 약간은 불리한 측면이 있다.

메론의 판매는 호텔과 백화점 등에 납품을 하고 있으며 몇 년 전부터 메론이 유행하면서 직거래도 전체 판매량의 20%를 차지하고 있다.

현재는 수요가 많아져 공급물량이 약간 부족한 편이다. 안정된 판매처를 확보했기 때문에 가장 비싼 가격은 아니어도 연중 가격이 안정돼 있어 최소한 생산비를 보장받을 수 있는 시스템이 됐다. 

최근에는 직거래에 무게를 두고 있다. 이는 안정적인 소비처를 확보하고자 하는 작목반의 방향성이 담겨 있다. 특히 직거래는 입소문이 쉽게 나기 때문에 선전효과도 뛰어나다.

메론의 품질을 유지하기 위해 1년에 한번만 출하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으며, 개인에게 출하용 BOX는 지급하지 않고 있다.

매년 초 작부체계에 대한 회의를 통해 출하시기를 정해 작업을 시작한다. 작목반에서 필요한 농자재도 이 회의를 통해 일괄로 구입해 사용한다. 종자는 기술이 발전해 약 20%정도는 자가채종을 하고 있지만 아직 기술적으로는 일본에게 뒤져있다.

어얼스멜론 작목반은 협업경영체이기보다는 공동생산과 공동계상을 중시하는 공동체에 가깝다. 그러나 농민 개개인이 경쟁을 유도하는 농업정책에 맞서 개별적 농가가 아닌 공동체 정신으로 조직화된 농민들은 살아남을 수 있다는 좋은 사례이다.  〈연승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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