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네바의 개구리

  • 입력 2009.12.07 11:50
  • 기자명 한도숙 전국농민회총연맹 의장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우물안 개구리’라면 흔히 넓은 세상을 보지 못하고 현재 보고 있는 세상이 전부인줄 알고 사는 어리석은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대체로 북한을 지칭할 때 우물안 개구리라고 한다. 이것은 조롱과 멸시를 잔뜩 담아서 북을 비난하는 데 주로 써먹고 있다. 또 한쪽은 농민들에게 향해 있는 것 같다.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고?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던 모 그룹 전회장의 말이 인구에 회자될 무렵부터 우리농업은 급속도로 쇠락하기 시작했다. 이미 신자유주의 세계화 속에서 우리나라가 살아갈 유일한 길이 수출이라고 외치며 국민들을 세뇌시켜 나갔다. 그 이면에 농촌의 고통스러움은 파묻혀 버렸고, 국가의 식량주권이라는 중요한 문제도 관심 밖으로 밀려났다. 그래서 농민들은 스스로의 살 길과 국가식량주권이라는 문제를 붙들고 고민하기에 이른 것이다. 이런 농민들을 향해 사회는 우물안 개구리라고 비아냥대며 모자라는 사람들로 치부하기에 이르렀다.

우물안 개구리는 자의적 판단으로 우물로 뛰어든 것이 아니다. 누군가 파놓은 우물로 빠져 들어간 것이다. 그 우물은 인간의 욕심이 반영된 것이고, 세상을 팔딱거리며 뛰던 개구리는 그만 그것을 보지 못하고 우물안으로 깊이 빠져버렸다. 우물안의 개구리는 피해자이다.

그 우물안의 개구리들이 제네바에 모였다. 세계도처에 도사리고 있는 신자유주의자들의 범죄에 힘을 모아 대처하기 위한 방편으로 이구동성으로 WTO를 반대하는 것이다. WTO는 신자유주의를 구체화한 국제기구이다. 그럼 신자유주의는 무엇인가. 바로 우물이다. 깨끗하고 시원한 물을 더 많이 요구하는 인간에 의해 더욱 깊은 물과 많은 우물을 요구했고, 사람들은 온갖 기술과 자본을 동원해 더 깊은 곳의 물을 더 많은 곳에서 퍼 올린다. 신자유주의가 확대·심화되는 것이다. 우물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빠져드는 개구리는 더 많아 질 것이고,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개구리는 살아날 가망이 적어진다.

세계의 농민들은 개구리와 마찬가지 신세가 돼 버린다. 우물안에서 우물통으로 들어온 하늘이 하늘의 전부인줄 아는 개구리이기 이전에 신자유주의 자본의 확대와 심화로 어찌하지 못하고 함정에 빠져 들어가 살길을 잃어버린 피해자들인 것이다.

깊은 우물 탈출하려는 농민들

농민들에게 돌팔매질하지 마라. 농민들은 산업화의 피해자였으며, 지금은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피해자들이다. 오늘도 시장으로 내팽개쳐지는 농민들이 세계 각 곳에서 아우성을 치고 있다. 그들의 삶이 보장되지 못하는 세상이라면 가만히 있을 수 있겠는가. 깊은 우물을 탈출하려 몸부림을 치고 있는 애처로운 농민들이다.
〈전국농민회총연맹 의장〉

저작권자 © 한국농정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