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농민’이라는 브랜드

  • 입력 2009.12.07 11:32
  • 기자명 김태경 <경남 거창군 고제면>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겨울나기 준비가 시작됐다. 마당에 산더미같이 쌓인 배추를 다듬어 절이고, 고추를 다듬고, 마늘 까는 일은 세월을 놓는 일이다. 무를 썰어 말리다가 이틀간의 외출에 옹창 곰팡이로 망치고, 다시 채를 썰어 말려 무말랭이를 준비했다.

삭힌 고추와 깻잎에 양념을 하고 나면 겨울준비는 끝이 난다. 이렇게 준비된 밥상에 농민밥상이란 브랜드를 붙여본다. 전여농과 여성연대에서 하고 있는 우리텃밭사업이 이 농민밥상의 나눔이라고 본다. 이 밥상은 돈을 벌기 위한 것이 아니라, 나눔의 철학이 배인 밥상이다. 그러나 입맛을 바꾸기는 쉬운 일이 아닌 것 같다. 나도 시집와서 10년이 훨씬 지나서야 반찬투정을 하지 않게 되었으니 입맛의 변화에는 많은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

어떻든 여성농민들의 이런 시작이 식량주권운동의 큰 결실로 다가갈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절실하다.
우리 지역에서 김장직거래장터를 연지가 올해로 8년째 접어들었다. 3일간 김장과 관련된 모든 재료와 텃밭에서 가꾸고 남은 여러 농산물이 여성농민들의 손에 보따리 보따리로 꾸려져 나온다.

올해는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해마다 판매하는 양이 있었는데 3일간 판매할 마늘이 장터를 연 첫날 오전에 모두 판매되어 버렸다. 생강이랑 젓갈 등 이틀째가 되는 날 판매가 끝나는 품목이 많았다. 여성농민회원들이 갖고 나온 보따리 농산물도 없어서 못 팔정도였다.

미리 충분히 알리지 않은데 항의를 하는 사람들도 나왔다. 10시에 열리는 장터인데 아침 9시부터 사람들이 나와 기다리는 진풍경도 일어났다. 아주 기분이 좋으면서도 황당스럽기도 했다. 생협에 대한 지역민들의 요구도 자연스레 나왔다.

평가시간을 갖으면서 내린 결론은 “여성농민회 이름으로 내놓는 농산물은 곧 품질보증 브랜드농산물이다”라는 것이었다. 값은 그리 싸지 않지만(결국 싸다는 말과 같다고 본다) 속이지 않는다, 솔직하다, 맛있다, 좋다, 싱싱하다. 믿을 수 있다 였다. 이 엄청난 브랜드를 잘 활용하면 우리가 꿈꾸는 세상이 더 빨리 오지 않을까 싶다.

현실을 돌아보면 쌀이 남아도는데도 수입을 해야 하고, 그 피해를 고스란히 농민들만이 안아야 하는 불합리함에는 대다수 국민들의 식량주권에 대한 안이함이 있다. 지금도 5초에 한 명의 어린이가 굶어 죽어가고 있는 상황에서 식량주권에 대한 경각심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상식이 사라진 세상에서 성장과 선진화라는 잣대만 들이대면 거짓말과 참말의 경계는 혼란스러워져 버린다. 농민, 노동자, 철거민 등 약한 자들은 나라경제를 좀먹는 존재로 거리에 나앉아있다.
우리나라 대통령은 이들을 굴삭기로 묻어버리려고 작정했나 보다. 얼마나 더 질겨야 사람의 몰골로 살아남을 수 있을까 싶기도 하지만, 우리의 브랜드로 다시 ‘시작’을 외쳐본다. (여성)농민의 상업적 가치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삶 그 자체가 만든 브랜드다. 이런 브랜드는 없었다.

제초제를 사용하지 않는 논들에서 캔 냉이, 성장촉진제나 항생제가 없는 사료로 자유를 누리며 사는 닭이 낳은 유정란, 남는 논이나 밭두둑에서 수확한 잡곡이나 콩류, 자신의 텃밭에서 키운 채소들.
아무리 선진농업을 외쳐도 이 나라 이 땅에서 이 삶의 양식은 크게 변할 수 없다. 그것이 우리 한반도의 생태계를 잘 보존해 갈 수 있는 가치불변의 농법이 아닐까싶다.

진실이 거짓에 가려 있지만, 그러하기에 더욱 빛날 수밖에 없는 우리의 진실한 브랜드를 더욱 갈고 닦아 진실이 거짓 위에 우뚝 설 수 그런 세상을 준비해가겠다.

김태경
경남 거창군 고제면
저작권자 © 한국농정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