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면당하는 WTO-DDA

  • 입력 2009.12.07 11:31
  • 기자명 장경호 건국대학교 경제학과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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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 30일부터 12월 2일까지 스위스 제네바에서 세계무역기구(WTO) 각료회의가 열렸다. 반세계화 시위에 참가하기 위해 출국했던 한국대표단 3인이 부당한 처우를 받았던 사건이 주목을 받았지만 상대적으로 각료회의 논의내용이나 회의결과는 별로 주목받지 못했다. WTO 회원국의 통상장관들이 참석하는 각료회의는 사실상 WTO의 최고의결기구이다.

찬밥 신세 전락한 WTO/DDA

그리고 이번 각료회의는 지난 2005년 12월 홍콩각료회의 이후 4년 만에 열리는 것이었다. WTO의 최대 현안과제인 도하개발아젠다(DDA)가 장기간 표류하고 있는 상황에서 최고의결기구인 각료회의가 4년 만에 열렸는데도 언론으로부터 찬밥 대우를 받은 것이다.

사실 이번 각료회의 개최 전에 이미 DDA 문제가 의제에서 제외되는 순간부터 이러한 상황은 예상된 일이었다. 세계경제위기 이후 G8(주요 8개국 정상회담) 혹은 G20(주요 20개국 정상회담)이 열릴 때마다 어김없이 DDA를 조속히 타결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합의가 나왔지만 정작 최고의결기구인 각료회의에서는 회의 안건으로 올리지도 못하고 있는 것이 WTO의 현실이다.

여전히 WTO는 협상시한인 2010년까지 DDA를 타결할 것이라고 말하지만 매번 협상시한을 넘겨 왔던 그동안 진행과정과 장기화되고 있는 세계경제위기 상황을 고려할 때 사실상 어려울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다. 새로운 협상시한으로 정해진 2010년에도 DDA 협상이 타결될 가능성 보다는 그 반대의 가능성이 더 높게 예상되고 있다.

이처럼 DDA가 헤매고 있는 이유는 복잡한 역학구도와 첨예한 이해관계 때문이다. UR 당시는 미국과 EU의 합의를 바탕으로 UR 협상이 타결되는 비교적 단순한 역학구도였다.

그런데도 협상타결까지 7년여의 시간이 걸렸다. 지금 DDA 협상의 역학구도는 UR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 매우 복잡해 졌다. 미국과 EU의 대립구도가 그대로 유지되는 가운데 UR/WTO체제 10여년의 경험에서 상대적으로 불리한 대우를 받았다고 생각하는 개발도상국이 선진국 주도의 협상을 반대하면서 발언권과 협상력을 높이고 있다.

브라질, 인도 등은 미국과 EU 등 선진국이 농가에 지급하는 농업보조금의 철폐 혹은 대폭 감축을 핵심적인 요구로 내걸고 있으며, 지난 11월 로마 세계식량정상회의에서 무바라크대통령이 밝힌 바와 같이 이집트는 국제곡물시장에서 서구 국가의 독점정책을 비난하면서 식량안전보장을 위한 새로운 국제질서를 수립하여야 한다고 주장하였으며, 리비아의 가다피 대통령은 서방 선진국 자본들이 아프리카의 토지를 대대적으로 구입하여 곡물수출 및 바이오연료 원료곡물 생산기지로 이용하는 것은 새로운 봉건제와 같다고 비판하였다.

게다가 2007년 미국의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로 인해 촉발된 세계경제위기의 장기화로 인해 DDA는 우선적인 관심의 대상에서 제외되었다. 각국이 경제공황이라는 파국을 막기 위해 앞다투어 정부가 막대한 재정을 투입하여 경기부양책을 실시하는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시점에서 DDA 협상은 계륵과 같은 존재가 되어 버린 것이다.

UR의 뒤를 이어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새로운 첨병을 만들 목적으로 DDA가 시작되었지만 정작 신자유주의로 인한 세계경제위기가 닥치자 세계 각국은 경제적 파국을 피하기 위해 신자유주의와 배치되는 정책을 취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향후 세계경제위기가 어떤 방향으로 전개되는가에 따라 WTO와 DDA의 운명도 극과 극을 달리게 될 것이다. 만약 현재의 경제위기가 빠른 시일 내에 해결된다면 WTO/DDA는 미국과 EU 그리고 개발도상국 사이에 적당한 타협을 통해 기본골격은 유지하되 개발도상국에 대한 약간의 우대조치를 강화하는 선에서 마무리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완전 타결까지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수도 있다. 그러나 경제위기가 장기화되거나 더욱 심각한 경제불황으로 전개될 경우 신자유주의는 최소한의 영향력도 남기지 못하고 사라지게 될 것이며, 그 첨병 역할을 하던 WTO/ DDA는 아예 없어지거나 전혀 새로운 모습으로 탈바꿈할 지도 모른다.

세계경제 위기와 농정의 전환

이것이 격동적이고 불안정한 세계자본주의경제의 변화추이에 대해 우리가 더욱 관심을 가져야 할 이유이며, 발생할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을 열어 놓은 상태에서 폭넓은 대응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무엇보다 요구되는 시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MB농정은 신자유주의의 끝자락에 매달려 한미FTA 조기비준, 쌀시장 조기관세화, 농업선진화 등을 운운하면서 한 방향으로만 내달리고 있다. 발상의 전환, 농정의 전환이 반드시 필요하다.


장경호
건국대학교 경제학과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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