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 생활 속에 살아 있는 농촌

  • 입력 2009.11.30 13:02
  • 기자명 소희주 경남 진주시 지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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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여덟에 셋째를 얻었다.
이제 겨우 목을 들어 이리 저리 두리번거리고 눈을 맞추어 방긋 웃기도 하고...

한창 바쁠 하우스일철에 애기랑 같이 누워있는 것이 뭐 맘 편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기도 하고 좋기도 하고 그런 것이 아니겠는가.

오늘은 단비 기저귀를 갈아주다 문득 떠오르는 얼굴이 있다.
언제 적 겨울인가, 노숙자 부부가 다리 밑에서 아이를 낳고 너무 추워 누울 곳을 찾아 헤메다 빈집을 찾아 들어가서 작은 담요하나를 덮고 잠이 들었는데... 깨어보니 죽어 있더라던 그 뉴스 속 애기.

서울이었다.
빈집은 문짝들이 뜯겨나간 흉가같은 집이었다.
‘그 애기도 우리 단비처럼 이렇게 이뻤을까.
그 엄마는 그 이쁜 애기를 낳고 얼마나 기뻤으며 얼마나 서글펐을까.
그렇게 태어나자마자 버림받는 아이들...
죽지는 않더라도 추위와 싸우며 태어나는 아이들이 또 얼마나 많을까.

난 이렇게 따뜻해도 되는걸까. 이렇게 편안해도 되는걸까...’
“단비야, 세상의 아픔을 볼 줄 알고, 마음속 슬픔도 읽을 줄 알고, 위로가 아닌 행동으로 슬픈 현실을 걷어내 줄 수 있는 용기 있는 사람이 되어라.”
기도를 하고 나니 눈가가 뜨거워졌다.

그런 상황과 비교할 것은 못되지만은 우리같이 없는 사람들이 살기에는 그래도 농촌이라는 곳이 다들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이고 또한 사람 사는 인정이 살아있어 낫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 부부도 빈손으로 농촌의 빈집에 정착했다.

난 서울을 잘 모르나 농촌은 확실히 달랐다.
내가 임신을 하고 출산을 하면서 우리동네 어머니들은 절대로 나를 맨입으로 보내지 않으셨다. 내가 아무리 바쁘다고 하고 빌린 소쿠리만 잠시 갖다놓으러 들어가도 절대로 임산부는 맨입에 보내는 법이 아니라고...

집 구석구석을 뒤져서 어떤 먹을거라도 찾아서 챙겨주시는 것이었다.
처음엔 좀 부담스럽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했으나 이내 그것이 우리 어머니들의 살아온 방식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먹을 것이 궁했던 시절에, 임산부와 젖먹이는 애기 엄마라도 굶기지 않겠다는 어머니들 간의 약속.
이런 공동체가 생활 속에 살아있는 곳이 바로 농촌이다.

우리 같은 처지에, 도시에 살았더라면 애기 낳고 서너달 지나면 이내 맞벌이로 나서야 한다.
때문에 아직 옹아리도 못하는 애기와 눈물의 이별을 매일 하며 생업전선에 뛰어들어야 할 것이 분명하다.
그래도 나는 농촌에 살고 있으니 집에 애기 재워놓고 하우스 왔다 갔다 할 수도 있고 급할 때는 동네 아지매들한테 부탁할 수도 있으니 이런 것도 다행이다 싶은 생각까지 든다. 따신 방에 누워있다 보니, 지난 여름 만삭으로 무거워진 허리를 떠받치며 한낮 땡볕에 한 열 번쯤은 울면서 일했던 것은 금새 추억이 되어 버린다.

농촌에 살아 좋은 점이 또 가슴에 들어차는 걸 보니 정운찬 총리의 말마따나 사람이 간사하긴 참 간사하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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