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량 지키려는 진정성으로 신뢰 회복해야

  • 입력 2009.11.23 12:03
  • 기자명 한국농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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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7일 전국의 3만여명 농민들이 서울 여의도에서 쌀값대란 해결과 농협개혁을 촉구하는 대규모 집회를 열었다. 이제 가을은 농민들이 수확의 기쁨을 서로 나누는 아름다운 계절이 아니라, 폭락하는 농산물가격으로 한 여름 땡볕아래에서 일할 때보다 훨씬 힘든 계절이 되어 버렸다.

작년 봄만 하더라도 한국 사회를 세계적 식량위기의 큰 물살에서 비켜설 수 있게 해 줬던 쌀이 지금은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고 있다. 계속 늘어나는 쌀 재고 문제가 갈수록 심각해 질 것이라는 경고를 농민단체들은 작년부터 끊임없이 주장해 왔고, 그 대안으로 쌀 대북지원의 재개라는 해법을 계속 제시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무대응으로 일관해 왔다.

대북 식량지원이라고 내놓은 것도 곳간의 넘치는 쌀 대신 수입옥수수가 고작이었다. 쌀의 재고누적을 쌀관세화에 대한 논의를 확산시키는 계기로만 이용하려고 했다. 이 때문에 기어이 정부가 쌀마저 포기하는 매우 위험한 길로 들어서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키웠다. 재고누적에 대응해서 생산된 쌀의 시장격리를 고민하기보다는 지금 당장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 처방을 대책으로 내놓는 것이 고작이었다. 쌀라면, 쌀막걸리에 최근에는 베트남식 만두피인 쌀종이까지 대책으로 등장한다. 쌀종이는 우리나라에서 생산되는 자포니카(중.단립종)로는 쉽게 만들 수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도, 여기에 한 술 더 떠 쌀종이를 과자 포장지로 활용해서 포장에 싼 채 과자를 먹을 수 있도록 하는 쌀종이 제조법 연구를 독려하고 있다.

이번의 전국농민대회에 참여한 단체들이 주장한 바와 같이, 그리고 한국농정신문이 여러 차례에 걸쳐 주장한 바와 같이 현재의 쌀값대란을 멈추게 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과잉분을 시장에서 완전하게 격리시키는 조치가 필요하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중단된 대북쌀 지원은 인도적 차원의 성격을 가지고 있으면서, 국내 쌀 생산의 유지라는 중요한 역할도 함께 수행해 왔기에 확대된 국내 소비처라는 성격도 동시에 가지고 있다. 따라서 대북식량지원의 재개만큼 확실하고 신속하게 재고쌀을 시장에서 격리시키는 대책은 없고, 이에 대한 제도화도 필요하다.

공자는 나라를 다스리는 데에는 세 가지가 필요하다고 했다. 공자의 제자인 자공이 그 세 가지 중에서 부득이 버려야 하는 것이 있다면 무엇을 먼저 버려야 하냐고 묻자, 공자는 제일 먼저 군대를 버려야 하고, 그 다음이 식량이라면서 마지막까지 지켜야 할 것은 국민의 신뢰인 믿음이라고 했다. 지금 정부는 끝까지 지켜야 할 신뢰를 지키기 위해서 식량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식량을 지키려는 진정성이 없기에 농민으로부터 믿음을 잃고 있다. 식량을 지키면 신뢰도 얻을 수 있는 천하에서 가장 쉬운 길을 정부만 모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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