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의 판결

  • 입력 2009.11.09 11:04
  • 기자명 한도숙 전국농민회총연맹 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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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이 황해도 곡산부사로 부임했을 때의 일이다. 당시 전임 곡산군수의 학정에 시달린 농민 이계심 이란 자가 무리 천 여명을 이끌고 시위를 주도한 혐의로 처벌을 기다리고 있었다. 황해도 관찰사는 다산에게 이계심을 처단하라고 주문한 터였다. 그러나 다산은 그 자리에서 그의 죄 없음을 판결했다.

국가 잘못된 통치엔 바른말 해야

그의 판결문은 이러했다. ‘官所以不明者 民工於模身 不以漠犯官也 如汝者 官當以千金買之也’ 풀면 “통치자들이 깨끗하지 못한 까닭은 백성들이 자기 몸 사리기에만 재주를 부리고 관의 잘못을 항의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일은 천금을 주어 높이 사야 할 일이다.” 즉 오늘의 말로 풀어보면 국민들이 국가의 잘못된 통치행위에 대해 바른 말을 하지 않는 것은 민주주의를 포기하는 행위라는 것이다.

전농은 농민들의 사회·문화·정치적 권익 실현과 국가의 민주화, 통일을 지향하는 자주적 농민운동단체임을 분명히 하고 투쟁해 왔다. 그동안 생산의 주인공으로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고 빼앗기기만 해온 농민들이 스스로 힘을 모아 목소리를 내었고, 지금도 당연히 통치자들을 향해 때로는 호된 질책을 하고 때론 농민들을 모아 집단항의를 하는 것이다. 봉건시대에도 이런 인본주의적 생각들이 통치행위의 발전을 가져 왔다고 보여 지는데, 민주주의가 틀을 잡은 지금이야 당연한 국민의 기본권리 아니겠는가.

며칠이 지나긴 했지만 아직도 어안이 벙벙한 일이 벌어졌다. 보도에 따르면 농림수산식품부가 정책을 비판적으로 보는 전농을 다른 농민단체들로부터 갈등을 유발시키고 분리하려는 책동을 하며 이번 11월17일 농민대회에 힘을 빼도록 국정원 등에게 협조를 구했다는 것이다. 또한 불법 탈법행위에 대해서 온정을 거두고 강력한 처벌을 경찰에 주문했다는 문건도 폭로됐다고 한다.

장태평 장관은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르고 있다. 혹시 ‘새벽방담’에 올라오는 격양가나 태평가에 도취되어 있는 것은 아닌가. 농민들이 요구하는 쌀값 정책은 실패했다. 또 농협개혁은 개악으로 치닫고 있다. 이런 현실에 농민들이 분노하고 있는데 농민들의 눈을 돌려놓으려 얕은 수작을 부렸다면 목민관의 일을 그만두어야 한다.

농민들 눈 돌리려 해선 안돼

다산이 이계심을 방면한 것이 개인의 심성 때문이 아니라 사회가 그렇게 발전해가야 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장태평 장관은 어디까지 역사를 돌려놓으려 하는가. 장 장관 역시 다산을 존경한다고 할 것이다. 무엇이 국민과 농민을 위한 것인지 분간하기 어렵도록 눈이 어두워졌다면 자리에 연연하지 말고 결단해야 한다. 〈전국농민회총연맹 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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