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값 하락과 제주도 여성농민

  • 입력 2009.10.27 14:02
  • 기자명 김영숙 (제주도 서귀포시 대정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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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확기 쌀값하락으로 전국적으로 쌀 적재투쟁, 농협 RPC봉쇄투쟁 등 많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으며, 여성농민들도 동참하고 있다.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비상상임위 결과, 20일 서울에서 대표자대회를 열어 상임위원들의 삭발의식 등을 진행한다는 소식을 접했다. 그러나 제주는 쌀이 없는 지역이라 피부로 느끼는 절박함이나 꼭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런데 대회 3일을 앞두고 전여농 제주도연합 임원회의때, 삭발은 당연하게 받아들였으며 이를 통해 결의를 모아야 한다고 의견을 좁혔다. 대회 이틀 전에서야 각 지회장님들과 사무국장님들께 전화해 제주도 여성농민들이 결의와 의지를 보여주어야 한다는 내용을 알렸다.

비행기 이륙시간 10시 15분. 9시30분 기자회견, 10분만 기자회견하고 서울로 간다라고 공지하고 조직하기는 했지만 과연 이시기에 조직이 가능할까 조바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전화너머로 들려오는 조직상황은 우려할 만한 수준이었다. 대여섯 명으로 기자회견을 해야 하는 것은 아닌지, 이제라도 접는 것이 맞는 건지 망설여졌다.

그러나 이러한 염려는 그야말로 기우였다. 9시25분 반가운 얼굴들이 공항 가득 보이기 시작했다. 너무 크게 만들었다던 현수막이 작아 보일 정도였다. 기자회견을 하며 한결 힘이 났다. 왠지 모를 미소가 얼굴에서 가시지 않은 즐거운 마음으로 비행기에 올랐다.

서울 여의도 집회 장소에 도착해 보니 볏단을 들고 북과 꽹과리를 치며 여성농민들이 들어왔다. 모두들 결의에 찬 모습으로 대표자대회를 진행하는 모습이 아름다웠다.

드디어 삭발을 결의하신 분들의 삭발의식 진행이다. 모든 회원들의 뜻을 모아 삭발을 결의한 모습이지만 그래도 여성이고 어머니인데, 자제분의 결혼을 앞두셨다는 김경순 회장님을 비롯한 다양한 사연을 가지고도 삭발을 하는 모습에 가슴이 뭉클해져왔다. 이 땅의 여성농민으로 살아가는 길이 이렇게 삭발하는 모습까지도 보여야만 하는 것인지 의문이 생기고 말문이 막혔다. 알 수 없는 눈물이 흘러내렸다.

대회 내내 감동과 슬픔, 자랑스러움과 미안함 등 많은 감정이 교차됐다. 천막농성을 대회 이어서 한다고 하여 제주도 여성농민들은 일정을 다시 잡기도 힘들어서 대회를 마치고 하룻밤을 지내고 가기로 했다. 천막을 치는 것도 안 된다고 해 바닥에 스티로폼과 전기요, 침낭, 그리고 이슬을 가릴 수 있는 하얀 비닐로 만들어진 장소가 여성농민을 대변하고 있는 듯 했다.

서로의 온기를 느끼며 노숙을 하고 아침에 일어나 뻐근한 몸을 이끌고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 지하철역 입구에서 선전전을 진행했다. 이어 한나라당으로 항의서한을 전달하기 위해 움직이는데 경찰이 가로막고 있다. 우리가 죄인인가? 한나라당에 면담을 요청했다는데도 묵묵부답이다. 이렇게 1시간을 끌었다. 우여곡절 끝에 합의를 이루어 냈다. 우리가 3명만이라도 간다니까 경찰에서는 2명만 가란다. 그리고 얇은 스티로폼으로 만든 손 피켓은 ‘무기’라며 놔두고 가란다. 웃긴다. 회장님과 사무총장님이 다녀오셨다. 그러나 많은 것을 느끼게 해준 1박2일이었다.

김영숙
제주도 서귀포시 대정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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