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지역이 희망이다

  • 입력 2009.10.27 14:00
  • 기자명 윤병선 건국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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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확기 산지 쌀값이 폭락을 거듭하고 있다. 사상유래가 없는 쌀값 대란의 소용돌이 속에서 농민들은 사활을 건 싸움을 벌이고 있다. 가을걷이에 바쁠 농번기임에도 전국의 여성농민들은 여의도 국회 앞에서 삭발을 하고, 천막도 치지 못한 채 비닐을 이불 삼아 밤을 지새우고 있다. 전국 각 지역에서도 성난 농민들의 함성이 하늘을 찌르고 있지만, 정부가 지금까지 내놓은 해결책은 쌀국수에 쌀막걸리 타령 일색인 쌀 소비확대가 유일하다. 우이독경(牛耳讀經)에 마이동풍(馬耳東風)이다.

끝 모를 MB정부의 농업압박

성난 농심을 진정시킬 수 있는 대책에 대해서 고민하기는커녕 오히려 농민의 부아를 돋을 심산인지, 논을 갈아엎는 사람은 농사짓는 농민이 아닌 단체라는 등 딴전을 부릴 뿐 농심을 헤아리려는 진정성도 없다. 이런 와중에 지난 15일 정부는 농민들을 더욱 궁지로 몰아넣을 것이 명백한 한-EU FTA 최종협정문에 가서명을 했다. 협상과 관련해서 그 흔한 공청회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고, 협상타결이 가져올 결과에 대한 사전점검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 어떤 명확한 대비책도 제시하지 않은 것은 물론이다. 과거 정권은 그 아무리 잘못된 농업정책이라 하더라도 지금처럼 몰아치기식으로 우리의 농업을 농단하지는 않았다. 몰매질을 하더라도 매 맞는 사람이 최소한 정신을 차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몰매질하는 사람의 최소한의 양심인데, 지금은 그야말로 전광석화(電光石火), 번개 불에 콩 볶아 먹듯 정부가 농업을 갈아엎고 있다.

‘지역살리기 운동’의 제도화

‘시장’이라는 이름으로 우리의 농업과 농촌을 농단하고, 정부의 정책이 농민을 막다른 길로 몰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의 농업과 농촌을 지키려는 농민들마저 없다면 우리에게는 희망이 없다. 그러나 농민과 함께 하는 깨어있는 수없이 많은 도시민들이 함께 있기에 아직은 절망하기에 이르다. 이런 점에서 한국농정신문 창간9주년 기념호에 소개된 전국 각지의 지역먹을거리운동 사례는 작지만 우리에게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를 일깨워준 기사였다. 이제는 이런 지역먹을거리운동을 지역단위에서 제도화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우리보다 앞서 지역먹을거리운동을 ‘지산지소’라는 이름으로 전개하고 있는 일본의 경우, 현(縣:우리나라의 도에 해당)이나 시 차원에서 지산지소운동을 지원하는 조례를 제정하고 있다. 2008년 후쿠이현(福井縣)은 종합적이면서 계획적인 ‘지산지소’를 추진하기 위해서 ‘지산지소의 추진에 관한 조례’를 제정하였다.

이 조례는 “지산지소의 추진에 관해서 기본이념을 정하고, 현의 책무와 함께 시정(市町), 생산자, 사업자 및 현민의 역할을 명확하게 하고, 현의 시책의 기본으로 되는 사항을 정하여 안전하고 안심할 수 있는 현내농산물 등의 공급, 현내 농림수산업의 지속적인 발전 및 활력있는 농산어촌의 형성에 도모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치바현(千葉縣) 이치하라시(市原市)에서는 지난 10월 1일 ‘이치하라시민에게 건강한 웃는 얼굴을 퍼뜨리는 지산지소추진조례’가 통과되었다. 이 조례는 지속가능한 농업의 구축, 안전한 먹거리를 제공함으로써 건전한 식문화의 배양, 생산자와 소비자가 교류함으로써 협조의 순환을 실감할 수 있는 사회건설, 먹을거리가 순환되는 사회의 구축으로 자연환경의 보전 등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또한, 지난 7월에는 이 조례를 참고로 해서 중앙정부차원에서 지역먹을거리운동을 지원하는 ‘지산지소촉진법안’이 자민당의 농림부회·총합농정조사회합동회의에서 통과되었다. 이 법안은 “지역의 생산자와 소비자를 연결하고, 혹은 지역의 생산자와 대도시의 소비자를 연결함으로써 안심 안전한 국산농림수산물의 소비확대를 촉진하고 나아가 식품 자급률 향상과 농림수산업자의 소득향상, 소비자에게 저렴하게 국산품을 공급할 수 있게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최근 경기도 평택시가 ‘평택푸드 지원에 관한 조례(안)’를 입법예고하였다. 이 조례는 “평택시가 평택농업과 농촌의 지속가능한 발전과 공익적 기능을 증진하고, 시민들에게 안전한 농산물과 품질 좋은 식품을 안정적으로 공급하여 시민식량권을 보장하며, 농업인과 농촌주민의 소득안정,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하여 평택시 평택푸드 지원 등에 관하여 필요한 사항을 규정함”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쌀값 폭락과 지방농정의 중요성

 

쌀값폭락에 중앙정부가 이렇다 할 정책을 내놓지 않고, 딴전을 피우고 있는 상황에서 지방의 여러 지자체들은 쌀재고량 소진과 쌀값폭락 대책을 내놓고 있다. 비록 이런 대책들이 현재의 쌀값폭락으로 인한 피해를 회복시키는 데에는 한계가 있지만, 앞으로 지자체의 농정이 갖고 있는 중요성이 더욱 커질 것이라는 점을 시사하고 있다. 따라서 중앙정부의 농정을 바로 잡기 위한 노력과 함께 지자체의 농정이 올바로 전개되도록 하는 노력도 동시에 이루어져야 한다. 지역단위에서 ‘지역먹을거리운동 지원 조례’나 ‘농산물가격안정 지원 조례’등을 제정하기 위한 노력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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