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나라 임금의 개

  • 입력 2009.10.19 10:32
  • 기자명 한도숙 전국농민회총연맹 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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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군 걸왕(桀王)의 개도 성왕(聖王)인 요(堯)임금을 보면 짖는다는 말이다. 한신의 책사인 괴통은 한신이 한고조 유방에게 토사구팽(兎死狗烹) 당할 것을 미리 알고 있었다. 그리하여 한신에게 한고조를 배신하여 목숨을 부지할 것을 간하였다. 이런 이유로 한신이 죽고 난 후에 유방에게 잡혀와 팽형을 선고받자 걸견패요(桀犬吠堯)라는 고사를 말하여 목숨을 구했다.

즉 괴통 자신은 주군인 한신에게 충성을 맹세한 한신의 개라는 것이다. 그러니 주인이 아닌 유방을 향하여 짖는 것은 당연하다고 했다. 유방이 화가 났으나 이치가 그른 것이 아니어서 그를 살려 줄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개도 비록 폭군인 걸왕의 개일지라도 오직 주인만을 위하여 짖는다는데, 요즈음 정치판에는 걸왕의 개만도 못한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자식같은 나락 갈아엎는 농심

농민들이 속이 시커멓게 타들어 가고 있다. 수확을 해야 하는데 떨어진 쌀값에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 답답하기만 하다. 그러나 답답하다고 손발 묶어 두고 있으면 해결책이 나오는가? 해서 일단의 농민들이 나서서 논을 갈아엎는다. 자식 같은 나락을 갈아엎는 심정이야 오죽하랴? 쌀값 떨어지는 것을 수수방관해온 관계당국과 정치권에 항의하며 국민들에게 호소하고 있는 것이다. 낟알 한 톨을 귀히 여기는 국민정서이고 보면 충격적이고 선정적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농민들이 오죽 답답하면 저렇게 자극적인 행위를 통해 의사표현을 하겠는가?

얼마 전 한 보도에 따르면 한나라당 최고위원회에서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을 불러 농민들이 나락을 갈아엎는 것이 아니라, 단체가 이벤트로 돈 주고 한다며, 단체가 농민들을 선동한다는데 아는 바가 있느냐고 질타를 했다고 한다.

국회가 국감중인 가운데 쌀값이 폭락한 이유를 장관에게 소상히 보고하도록 하고 대책을 세우도록 했어야 옳다. 발 빠르게 대책을 세우지 못한 부분을 질책하고 대책강구를 요구해야할 국회의원이 오히려 농민들이 힘을 합쳐 만들고 농민들을 대표한 농민단체가 불순한 의도를 갖고 나락을 갈아엎고 있다고 호도하는 것은 제대로 된 민의를 대변하는 행위가 아닌 것이다. 오히려 논을 갈아엎는 현장으로 달려가 농민들의 심정을 헤아릴 일이다.

조합장도 농사 포기하자는 현실

또한 농식품부 장관은 농민들이 해마다 하는 의례적인 것이라고 했다는데 장관으로서 농민들의 심정을 제대로 전달하지는 못해도 맞장구를 치며 농민들의 가슴에 대못질을 해서야 되겠는가. 오죽하면 조합장들까지도 농사짓지 말자고 선동하는 시절이 돼 버렸는지 깊은 성찰이 요구된다.
〈전국농민회총연맹 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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