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밥그릇은 정직한가?

  • 입력 2009.10.19 10:27
  • 기자명 한국농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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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도 참 한심타! 밥 한 그륵도 몬 묵나. 농사꾼이 밥을 그래 묵고 무신 일을 하노.”

점심때가 다 되어서야 일어나 마루에서 밥 몇 술 떠다말고 상을 물리는 아들이 가증스러웠던지 어머니는 긍휼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혀를 찬다. 그런 어머니를 힐끗 올려다보다가 나는 문득 가슴이 따뜻해지는 것을 느낀다.

어머니는 늘 ‘그륵’이라고 발음을 한다. 그륵! 나는 그 말이 참 좋다. 어떤 때에는 그륵이라는 말끝에 미륵이 슬며시 따라오기도 한다. 미륵. 하늘이 열리고 오늘까지 사람들은 학수고대로 있지도 않는 미륵을 기다리느라고 생고생을 하고 있다. 하루 세 번이나 미륵님과 마주하면서도 사람들은 미륵을 몰라본다. 쌀이 미륵이고 밥이 미륵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사람들은 매일 밥에게 경배를 할 일이다.

“영 입맛이 없네. 커피 있으면 그거나 한잔 주소.”

나는 속이 쓰려 배를 쓸어내리면서도 버릇처럼 담배를 꺼내 문다. 어젯밤에는 또 과음을 했다. 이건 너무 큰 병이다. 사람들을 만나 죽이 맞으면 끝없이 퍼마신다.

“지랄한다, 니 입도 참 벨나다. 입맛이 없으면 밥맛으로 묵지.”

나는 밀어낸 밥상을 이윽히 내려다본다. 반나마 남아 있는 밥그릇 속의 밥알들이 일제히 나를 빤히 올려다보며 한 소리 하는 것 같다. 한심한 자식, 술이나 좀 덜 처마시지! 라면이나 삶아 그 국물로 속이나 달래지 왜 나를 찾았니. 앞으로 라면 국물에 나를 말아먹는 짓거리는 제발 좀 하지 마. 자존심 상해! 밥은 그렇게 빈정거린다. 따귀라도 후려칠 태세다. 나는 민망해서 슬그머니 방으로 들어가 버린다. 쓰린 속을 달래며 마감이 임박한 원고를 들여다보지만 집중이 되지 않아 밀쳐놓고 인터넷을 뒤적인다.

한나라당 인간들이 벼를 갈아엎은 농민들에게 딴지를 걸었다는 기사가 보인다. 논 주인이 갈아엎은 것이 아니라 농민단체가 그랬다면 문제가 있으니 장관에게 조사해서 보고하라고 또 삐딱선을 탄다. 이 집단은 무식한 것인지 꺼벙한 것인지 통 감이 잡히지 않는다. 농민이든 농민단체든 그들이 왜 자식처럼 키운 벼를 갈아엎지 않을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해서는 생각도 해보지 않는 모양이다.

지금의 쌀값 대란을 초래한 장본인이 누군가? 두 말할 것도 없이 청와대와 한나라당 아닌가? 대북지원 쌀 2년 치 80만톤만 시장에서 격리시킨다고 생각을 해보라. 너무 쉽다. 해법은 거기에 있다. 저잣거리 장삼이사도 간단하게 풀 수 있는 현안을 가지고 정부와 여당은 무슨 대단한 수학문제 풀듯 끙끙거린다. 참 무식하다.

나는 이명박 정권과 한나라당 의원들에게 묻고 싶다. 당신들의 밥은 정직한가? 하루 세 번 대하는 밥그릇에게 미안하지는 않는가? 밥 앞에 무릎 꿇고 경배한 적이 있는가? 밥그릇 앞에서 당당한가? 배고픈 개처럼 허겁지겁 먹는 게 아니라 기도하는 심정으로 경건하게 먹는 것이 밥이다. 그러니까 밥은 성자처럼 거룩한 것이다.

그리고 제발 밥값 좀 해라. 저 거룩한 밥을 하루에 세 끼씩이나 먹으면서 무엇을 했는가. 미국산 쇠고기를 먹겠다고 이명박 대통령은 호언장담을 하더니 왜 먹지 않는가. 만만한 게 홍어×이라고, 미국산 쇠고기는 명령이라면 죽음도 불사하는 전경들에게만 먹였다니 세상에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다는 말인가. 참 과타! 참으로 못난 인간들이다.

나는 밥이 귀한 줄을 전혀 모르고 있는 그들에게 졸시「밥상 위의 안부」한 편 낭랑하게 읽어주고 싶다. 흑백의 거친 폐허 속에 나뒹굴고 있는 밥그릇을 한번쯤 생각해 보라.

“오늘도 식당밥으로 점심을 이우셨나요/은유와 상징으로 맛보신 농촌은 어떠했나요/표고버섯 고사리 도라지 바지락에/된장국 곁들인 삼치구이 백반을 드시다가/버릇처럼 간혹 손이 간 김치 몇 조각이 혹/그대 입맛을 다치게 하지는 않았습니까/얼핏 젓갈냄새 풍기는 김치쪼가리/걸쳐 먹은 밥 몇 숟갈에서/몸파는 어린 조국의 안부를 들었습니까//오늘도 밥상 위에서 안부를 묻습니다/우리에게 나라는 무엇입니까/흑백의 거친 폐허를 거처로 삼은 사람들이/북만주나 외몽고에 전세 들고 싶은 날/생인손을 앓는 목민심서 문장 속으로 들어가니/토사곽란의 길 끝에 잘 늙은 절 하나/시줏돈은 색주가에 다 퍼날랐는지/속(俗)때 묻힌 대웅전은 장엄하나/요사채는 기울어 덧쌓인 폐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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