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죽을 울리다

  • 입력 2009.10.12 11:56
  • 기자명 한도숙 전국농민회총연맹 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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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벌판이 누렇게 황금빛으로 익어가고 있다. 작년 이맘 때 쯤엔 들판에 콤바인이 나락들을 끊임없이 쏟아 낼 때인데 올핸 금빛들판이 아직 고요하기만 하다. 웬일인가? 쌀대란의 전주곡이다.

그런데 정부 정책은 왜이런가? 대통령은 근본적인 대책을 내놓겠다고 했다. 그런데 내놓는 대책마다 헛발질이다. 기가 막힌 것은 7월부터 가을 쌀대란이 일어날 것이란 예상을 농민들이 농식품부에 전달했다.

그러나 관계관들은 콧방귀도 뀌지 않았다. 그러다 쌀값이 1만원에서 3만원까지 하락해버린 상황이 발생하자, 10만톤을 농협이 사도록 했다.(8월 11일) 그것으로 재고미는 한톨도 남지 않는다고 큰소릴 쳤다. 더군다나 농협은 역경매방식으로 수매를 함으로서 시중쌀값을 떨어뜨리는 농민 배신행위를 저질렀다.

분노한 농민들이 여기저기서 논을 갈아 엎고 규탄대회를 열어 삭발과 단식·단지혈서로 항의하고야 분위기를 눈치 챈 것인지, 23만톤을 수탁방식으로 수매하겠다는 정책을 발표하면서 가을 쌀대란 ‘이상무’라는 제목으로 보도자료를 내었다.(9월 29일) 게다가 농민들의 심리적 불안감 때문이라며 농민들을 현혹하는 일부 농민단체(?)를 비난하였다.

수탁방식은 무엇인가? 농민들의 금쪽같은 쌀을 나중에 팔아서 정산한다는 것인데 지금처럼 쌀값이 하락세를 타고있는 시기에 농민들이 여기에 응하겠는가? 정책의 실효를 계산하지 않고 농심을 잠재워 보려한 수작에 불과한 것이다.

통계청에서 올해 쌀 생산량 추정을 보도하였다. 농식품부는 또다시 보도 자료를 통하여 10만 톤 정도를 공공비축미 수매방식으로 수매하겠다고 나섰다.(10월 7일) 그러나 이 모든 대책들이 농민들의 피 값인 쌀값이 정곡 80kg당 13만원대까지 떨어져 버린 상태에서 나온 것이다.

외국에서 들여오는 쌀이 농민들을 잡아먹기 시작한 것은 애써 가리고 소비가 줄어서 재고가 쌓인다고 막걸리에 쌀국수 타령만 길게 늘어 놓고 있다. 국민 60%가 지지하는 대북 인도적 지원은 하지 못하겠다는 의지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한쪽은 쌀가마에 눌려 농민이 죽고 한쪽은 쌀이 모자라 기아에 허덕인다는데 근본대책이 되지 못한다는 말만 되풀이하는 장관이 애처롭다. 과녁의 관중은 맞히지 못하고 궤만 맞히는 변죽을 울리는 행위이다.

근본적이고 핵심적인 정책이라면 농업을 시장에 맡긴다는 정책을 버려야한다. 그것이 식량정책을 바로 세우는 기본이다. 변죽만 울릴 것이 아니라 핵심정책인 식량주권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헌법이 경자유전의 원칙을 명시하고 우리 국민이 이것을 지키고자하는 의지를 가지고 있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전국농민회총연맹 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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