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동조합 원칙고수…경제사업 흑자
“지역농업을 바꾸는 힘”- 충북 괴산군 ‘불정농협’

고추 최저가격 보장제로 경제사업 기반 다져
농가 잎담배 전량매매, 산지유통센터 활성화
예산 총회 거쳐 사업 확정, “집행은 투명하게”

  • 입력 2009.10.11 22:14
  • 기자명 연승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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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협법에 지역농협은 조합원의 농업생산성을 높이고 조합원이 생산한 농산물의 판로 확대 및 유통 원활화를 도모하며, 조합원이 필요로 하는 기술, 자금 및 정보 등을 제공해 조합원의 경제적·사회적·문화적 지위 향상을 증대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고 명시돼 있다.

조합원은 지역농협의 운영과정에 성실히 참여하여야 하며, 생산한 농산물을 지역농협을 통하여 출하하는 등 그 사업을 성실히 이용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

조합의 역할과 조합원의 의무가 서로 잘 지켜지는 조합이 바로 원칙을 고수하는 협동조합이다. 충북 괴산의 작은 규모의 농협인 불정농협에서는 조합원들과 함께 협동조합의 원칙을 지키며 상생을 하고 있다.

조합원이 요구하는 것이 반영이 되고 조합원은 반영된 자신의 요구를 지키며 조합의 경제사업이 나날이 번창하는 불정농협. 불정농협은 무엇이 다를까.

농협을 평가하는 지표 중 당기순이익을 우선시하게 되면 경제사업과 신용사업을 구분해서 평가하기 어렵다. 특히 쉽게 이익을 낼 수 있는 신용사업에만 치중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한국의 농협은 당기순이익 등 계량화된 수치로 평가하기보다는 경제사업을 통해 조합원들의 요구(needs)를 만족시키고 있는가를 파악해야 한다.

불정농협은 조합원 1천6백10명의 크지 않은 규모이다. 불정농협은 고추최저가보상제도, 잎담배 전량매매, 산지유통센터 활성화 등의 사례로 전국적으로 많이 알려진 농협이다. 불정농협의 경제사업 활성화의 요인은 협동조합의 원칙을 지키는 것이다.

남무현 불정농협 조합장은 “협동조합의 원칙을 지킨다가 기본”이라며 “따라서 모든 사업 결정은 농민조합원이 한다. 농민조합원이 사업 판단을 하려면 조합원이 조합의 사업을 이해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 충북 괴산의 불정농협은 조합원들과 함께 협동조합의 원칙을 지키며 상생을 하고 있다. 사진은 유통에서 복숭아를 공동선별하는 모습.

불정농협은 조합원에 대한 끊임없는 교육을 통해 조합과 경제사업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있다. 이런 의사구조 결정에 가장 큰 역할을 하는 것은 분과위원회다.

농협의 의결기관은 총회와 대의원대회, 이사회이지만 불정농협은 분과위원들이 주축이 돼 예산서를 직접 짜고 토론을 통해 사업이 결정되면 이를 토대로 이사회, 대의원총회를 거쳐 최종 확정된다.

남 조합장은 “분과별 사업에 대해 3만원까지도 공개한다”며 “예산서를 조합원이 직접 짜면서 조합원들이 농협경영에 참여한다는 주인의식을 갖게 됐다”고 설명한다.

또한 “보통 일반 농협들은 결산총회 때 가장 시끄럽지만, 우리 조합은 예산 총회 때 가장 시끄럽다”고 덧붙였다.

그도 그럴 것이 분과별로 사업계획서를 제출하고 사업예산을 확보하기 위해 예산 총회에서 가장 많은 토론이 벌어지기 때문이다. 예산 총회를 거쳐 확정된 사업은 투명하게 집행된다. 조합원들은 사업계획에 맞게 농사만 지면 이후 수확부터 유통까지는 농협이 책임을 진다.

이런 과정 속에서 불정농협의 예산서는 다른 조합들보다 자료 분량도 적고 이해하기 쉽게 만들어져 있다.
조합원들이 이미 사업계획을 수립하는 과정 속에서 예산서를 속속들이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보통 조합에서 자료요구로 인해 조합원들과 조합장이 싸우는 모습은 불정농협에서는 보기 힘들다.

남 조합장은 “지역농협이 법과 정관에 의해 움직이지만, 농민조합원이 결정한 내용은 법보다 우선한다고 생각한다. 어떤 자료도 조합원이 요구하면 모두 공개한다”고 말했다.

투명한 집행시스템은 조합원이 조합에 대한 믿음을 쌓는 가장 기본이다. 실례로 정관에는 조합원 100분의 3의 요구가 있어야 자료를 공개할 수 있지만, 불정농협은 조합원이 요구하면 자료를 공개하고 있다.

불정농협의 투명한 운영과 민주적 의사결정 구조는 농협의 경제사업 활성화로 이어진다. 불정농협은 2007년 고추 최저가 보장제를 도입했다.

최저가보장제는 기준이 되는 가격 이하로 농산물 가격이 하락했을 경우 농협이 조합원의 생산비를 보장해 주는 것이다. 최저가 생산비 보장제도는 65세 이상의 고령 조합원을 대상으로 시작했다. 2007년 최저가격은 홍고추 20kg 2만4천원, 건고추는 6백g에 5천원이었다.

최저가 보장을 위해 괴산군으로부터 연간 4억원을 손실보전금으로 지원받고, 홍고추를 태양초로 가공할 수 있는 고추가루공장을 도입했다.

현재 고추는 불정농협 차원이 아닌 괴산고추조합공동사업법인을 설립해 최저가격을 보장과 전량수매를 하고 있으며, 지난해부터는 감자에 대해 최저가격보장제를 도입했다. 지난해에는 20kg에 1만원을 최저가격으로 정했지만 올해는 9천5백원을 최저가격으로 정했다. 조합원이 생산한 감자는 개별적으로 선별하지 않고 수확 후 바로 농산물종합물류센터로 집하해 공동선별을 거쳐 공동계상을 한다.

불정농협의 최저가 보장제는 조합원들의 큰 호응을 받으며 경제사업 활성화의 기반이 됐다. 그러나 최저가 보장제 등 조합원으로써 혜택을 받기 위해서는 불정농협에서 제시한 품종이나 품질에 대한 규정을 지켜야 한다.

조합사업에 참여하지 않는 조합원에게는 수매는 보장하지만 최저가격 보장 등을 하지 않는다. 남 조합장은 “조합사업에 조합원들이 참여를 해야 조합경영의 안정성을 확보할 수 있다. 재배면적, 재배품종 등을 연초에 조합원들과 계획해서 수립해야 하는데 이 사업에 참여하지 않으면 사업을 예측할 수 없어 수립된 계획에 차질이 생긴다”고 말했다.

또한 “조합원들이 생산한 농산물을 좋은 가격에 팔기 위해서는 GAP 또는 친환경 재배를 해야 하는데 이런 사업에 참여하지 않는 조합원에 대해서는 혜택이 돌아가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조합원들과 계약을 통해 농산물 생산의 불확실성을 최소화하는 전략을 통해 안정적인 사업구조로 이어지고 있다.

조합원들과 머리를 맞대고 사업을 진행하면서 불정면의 농업도 변화가 생겼다. 불정농협이 선도적으로 GAP 농산물과 친환경농산물을 생산하면서 이에 참여하는 조합원이 늘었고 괴산군의 친환경급식을 선도적으로 맡게 됐다. 불정농협에서 생산된 친환경 농산물은 괴산군 내의 학교에 전량 공급되고 있다.

이런 노력에 따라 괴산군은 괴산읍과 감물, 칠성, 불정면을 일원에 1천1백70여농가가 참여해 수도작 9백ha 전작 및 특작 6백ha 등 1천6백ha 규모로 괴산광역친환경농업단지를 조성할 계획을 갖고 있으며, 불정농협이 괴산친환경농업단지사업의 주체로 선정됐다.

광역친환경농업단지조성사업은 3년간 동안 1백억원(국비 50, 지방비 40, 자부담10%)이 투입되며, 농업환경개선과 친환경농업육성을 위해 경종과 축산을 연계한 자연순환형 친환경농업단지가 조성되는 사업이다. 불정농협의 선도적인 노력으로 지역농업이 변하고 있는 것이다.

불정농협이 자랑하는 또 하나는 농산물종합물류센터이다. 괴산군과 함께 총사업비 3억2천만원을 투자해 설립했다. 물류센터는 폐교된 이담초등학교를 이용하여, 80평 규모의 저온저장고시설 설치, 20평형 예냉실, 선별라인 1식을 시설을 갖고 있다.

물류센터에서는 감물, 불정면에서 생산되는 고추, 가지, 두태, 과수 등의 농산물을 공동선별 및 공동판매를 추진해 노동력 절감효과와 상품의 규격화를 통한 농산물 가치상승 등 다양한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있다.

특히 물류센터를 활용해 조합원들이 생산한 친환경 쌀을 초등학교 급식용으로 추진해 이에 따른 인지도 상승으로 대량 수요처에서 납품요청을 하는 등 판매사업의 증진과 동시에 뛰어난 홍보효과를 거두기도 했다.

이외에도 불정농협은 지난해 수매물량 30톤을 kg당 9천원에 수매하는 내용의 엽연초 매매계약을 민간담배회사인 우리담배와 체결해 엽연초 농가들의 판로를 확보하기도 했다.

경제사업의 활성화는 신용사업으로 이어졌다. 불정농협은 경제사업 규모만으로 따지면 충청북도 농협 중 5위안에 든다. 그러나 전체규모는 68개 농협 중 55위이다.

지난해 4억5천만원의 당기순이익을 냈으며, 경제사업의 활성화로 인해 예수금이 1백억원이 증가했다. 지난해 6월말 대비 신용사업 수익은 1억5천3백만원이지만, 경제사업 수익은 30억6천3백만원이다.

조합원들의 복지사업에도 불정농협은 선도적 역할을 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조합원 자녀를 위한 영어캠프를 도입해 농촌지역의 열악한 교육환경을 개선하고 있다. 지역 내 학교와 연계해 학교에서 영어캠프 운영을 하고, 운영비 전액은 불정농협에서 부담했다.

불정농협은 또한 농협종합유통센터 부근 이담초등학교를 매입해 도농교류센터로 운영해 불정농협의 농산물을 구매하는 도시민에게는 체험학습장을 제공한다는 계획이다.

남 조합장은 조합원들이 편하게 농사를 짓을 수 있도록 영농지원단을 내년에 도입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영농지원단은 일종의 법인형태로 불정농협이 50%를 출자하고 젊은 조합원들이 농기계 등으로 50%를 출자해 만들어 조합원들의 농사를 지원한다는 계획이다.

영농지원단은 최저가보장제와 마찬가지로 점점 심각해지는 조합원 고령화에 대비하고 농협의 사업을 확장하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노리고 있다.

남 조합장은 “조합원들은 씨만 뿌리면 영농지원단에서 수확에서 판매까지 모두 책임지는 시스템을 만들겠다. 불정농협 조합원은 농사에서 은퇴는 없다”고 말했다.

유통판로 확보에 있어서 남 조합장은 대형유통업체와의 거래가 아닌 소규모 품종 유통을 고민하고 있다. 대형유통업체와의 거래는 결국 농협이 종속될 수밖에 없다는 판단에서다.

남 조합장은 보부상 프로젝트를 구상하고 있다. 보부상 프로젝트는 1만 소비자 관리시스템으로 소비자에게 좋은 밥상을 제공하기 위해 직거래를 하는 사업이다.

대형유통업체가 아닌 학교급식, 생협, 일반 소비자 등 3만여명의 소비자를 확보하면 불정농협에서 생산되는 농산물의 안정적인 판로를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 남 조합장의 생각이다. 시장개방 등으로 나날이 조건이 열악해지는 농업현실에서 불정농협은 한국농업의 미래를 열어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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