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곡된 ‘농’-‘식’ 관계 복원 위해 필수”

새벽시장, 조례 제정, 텃밭사업 등 국내서 활발
지역경제 활성화, 지역내 고용 확대 등에 기여
단일경작체계, 다품목 소량생산체계 전환 과제

  • 입력 2009.10.05 15:32
  • 기자명 윤병선 교수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풍년가가 울려 퍼져야 할 가을 황금들녘이 농민들의 한숨 소리로 가득 차 있다. 태풍을 한 번도 보내지 않은 하늘을 원망하는 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예전 같으면 천벌 받을 소리라고 어른들의 호된 꾸지람이 나올 법하지만, 지금의 농촌은 그렇게 되어 버렸다.

그렇다고 먹을거리를 사 먹는 도시민이 행복한 것은 아니다. 지난 추석 차례상을 준비하는데 들어간 비용은 작년보다 최소한 8% 오른 것으로 조사되었다.

더군다나 장바구니를 들고나선 소비자들은 차례상에 올린 제수용품을 사면서도 안전하다는 확신을 갖지 못한다. 수입된 농수축산물이 버젓이 국내산으로 둔갑하고, 유통기한을 지난 먹을거리가 장소를 불문하고 등장한다.  생산농민은 생산농민대로, 소비자는 소비자대로 먹을거리체계의 피해자가 되어 버린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멀어진 농(農)과 식(食)의 관계

▲ <윤병선 교수>
왜 사람이 살아가는데 가장 소중한 먹을거리를 둘러싸고 있는 관계들이 온전하지 못하게 된 것일까? 농(農)이라는 생산현장과 식(食)이라는 소비현장 사이의 왜곡된 관계는 누구에 의해서 무엇 때문에 만들어진 것일까?

순환의 체계 속에서 이루어졌던 우리의 농사가 소득이 아닌 이윤을 만들어내기 위한 산업, 즉 농업으로 변질되면서 농민의 역할은 축소되었고 그 자리는 농업을 통해서 이윤을 얻고자 하는 자본들로 채워졌다. 농사의 처음이면서 끝인 종자도 종자업체에 의존하게 되었고, 퇴비도 폭탄제조업체가 생산한 비료로 대체되었다.

녹색혁명의 산물인 다수확품종을 재배하기 위해서 독가스제조업체가 제공한 살충제에 의존하지 않으면 안 되는 구조가 되었다. 자연의 순환을 고려했던 다품종 생산이 단일경작으로 대체되면서, 먹을거리 생산은 지역경제의 순환이나 지역의 필요와는 점점 멀어지게 되었다.

과거의 다품종 생산은 지역내 자급을 바탕으로 이루어졌지만, 대규모 단일경작은 지역의 시장을 지향한 것이 아니었기에 유통자본의 개입이 없다면 판로의 확보도 어렵게 되었다. 농사의 연장에서 각 지역에서 이루어졌던 농산가공도 가공자본의 몫으로 되어버렸고, 제도와 법은 농민의 소규모가공을 제한하고 식품자본에게 유리하게 적용되었다. 지역이나 국가단위에서 순환이라는 체계 속에서 이루어졌던 먹을거리의 생산과 소비는 생산단계에서부터 거대자본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종자, 농약, 비료에서 시작해서 가공과 유통에 이르는 거의 전 과정이 거대 종자업체와 농화학업체, 유통업체, 가공업체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그 결과, 소비자가 부담한 식품비 가운데 생산농민에게 돌아가는 몫은 포장업자가 가져가는 몫보다도 적은 지경에 이르렀고, 소비자는 소비자대로 획일화된 ‘질 나쁜 값비싼’먹을거리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전면적 전개는 ‘농’과 ‘식’의 거리와 관계는 더욱 멀어지게 만들어 버렸다.

생산-소비자 얼굴 볼 수 있다

지역먹을거리(로컬푸드)운동은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에 ‘얼굴을 볼 수 있는 관계’를 만들어 내자는 운동이다. 그간 거대자본에 의해서 인위적으로 늘어난 ‘농’과 ‘식’사이의 물리적 거리뿐만 아니라, 사회적·심리적 거리를 줄이자는 운동이다. 따라서, 지역먹을거리운동은 농(農)이라는 생산현장과 식(食)이라는 소비현장사이의 왜곡된 관계를 회복시키고자 하는 운동이고, 더 나아가 녹색혁명형 농업에 의해서 파괴된 ‘농’의 순환체계도 복원하고자 하는 운동이다.

지역먹을거리운동은 현재의 세계 농식품체계가 거대 농기업들에 철저하게 종속되어 이들 소수의 대자본의 이윤확보를 위한 수단으로 먹을거리가 농단되고 있는 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운동이고, 지속가능한 순환형 농식품체계를 회복시키는 운동이다. 또한, 농민과 소비자 사이의 이익을 공유함으로써 신뢰를 확산하고, 녹색혁명형 농업이 초래한 생태적 균열을 회복시킴으로써 농촌사회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하고자 하는 운동이다.

영국이나 미국에서는 시장으로부터 일정 거리(운동주체에 따라 30마일, 50마일, 100마일 등) 이내에서 생산된 농산물을 지역먹을거리로 정의하기도 하지만, 이러한 물리적 기준은 지역먹을거리운동에서 부차적인 것으로 될 수 있다.

우리 지역산이라는 라벨만을 붙여서 파는 것이 지역먹을거리는 아니기 때문이다. 지역먹을거리운동에서 중요한 것은 생산자와 소비자가 소통할 수 있는 ‘관계’속에서 먹을거리의 생산-소비가 이루어짐으로써, 생산자는 자신이 생산한 안전한 먹을거리를 소비자에게 전달하고, 소비자는 생산자의 안정된 생활에 기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지역먹을거리운동에서는 규모와 상관없이 참여할 수 있기 때문에 전업농가뿐만 아니라 겸업농가도 주역이 될 수 있고, 경작을 포기하는 휴경지의 감소에도 기여할 수 있다. 지역전체로서는 외부로의 화폐유출을 막아 지역내 소득의 향상을 가져와서 지역경제에 공헌한다. 지역먹을거리운동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지역의 일을 일상적으로 처리해야 하는 경우도 많아져서 지역내 소통이 강화되고, 이것이 농업후계자의 육성이나 지역농업의 진흥으로 연결된다.

먹을거리운동과 지역농업 경제
또한, 농산물가공에서 지역산농산물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을수록 농업소득유발효과는 높아지게 된다. 여성이나 고령자가 농산가공사업에 참여하면 새로운 고용기회가 창출된다. 뿐만 아니라, 지역내에서 생산되는 다양한 농산물을 동일지역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먹을거리로 이용하게 되면, 농산물이 농민의 손을 떠나 밥상에 오르기까지 운송되는 거리(푸드마일)가 축소되어 수송과정 중에 발생하는 탄소의 배출도 줄일 수 있고, 장거리운송에 따른 먹을거리의 질이 하락하는 문제도 발생하지 않게 된다.

이와 함께 세계농식품체계에서 시장을 확보하지 못해 소멸될 위기에 있는 지역의 다양한 농산물들의 생산을 촉진하게 된다. 이는 지역먹을거리운동이 지역의 다양한 수요를 충족시킬 수 있는 방향으로 전개되는 과정에서 다품종 소량생산도 존립할 수 있는 가능성이 넓어지기 때문이다. 다품종 소량생산체계는 대규모 단작체계로 사라진 생물다양성이나 독특한 농촌경관 등의 회복에 기여하게 된다.

국내 지역먹을거리운동 유형

우리나라에서도 다양한 형태로 지역먹을거리운동이 전개되고 있다. 원주에서는 오래 전부터 새벽농민시장이 열리고 있고, 전남 나주시는 이미 2003년에 전국 지방자치단체 중 최초로 학교급식조례를 제정한 이후 지역먹을거리협의회를 구축하고, 생산자와 소비자, 학교, 학부모가 참여하는 학교급식모델을 만들고 있다.

충남 서천군은 지역특성에 맞는 지역먹을거리체계를 구축하기 위한 작업을 진행 중에 있는데, 지역의 생산자를 중심으로 생산자조합직매장이 운영되고 있으며, 마서면의 새마을협의회 등이 주축이 되어 동네장터를 운영하고 있다. 충남 천안시는 별도의 예산을 배정하고, 기업체 방문 판매와 아파트단지의 직거래장터를 지역먹을거리운동과 연계해서 확대하고 있다.

경기도 평택시의 경우는 지역농산물의 생산과 소비를 촉진하기 위한 조례제정을 진행하고 있다. 전북 완주군은 소비자가 신뢰할만한 먹을거리의 기획생산체계의 구축 및 생산자-소비자간의 커뮤니케이션 활성화를 위해 로컬푸드사업단을 설치하고, 앞으로 로컬푸드지원센터를 만들 예정이다.

또한, 전국 각지에서는 생산농민이 만든 제철채소 꾸러미를 소비자와 직거래하는 운동도 전개되고 있다.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이 노동부의 사회적 일자리 지원사업을 받아 추진하고 있는‘우리텃밭’사업은 직거래를 통하여 취약계층 여성농민에게 생산비를 보장하며, 여성단체회원들에게는 안전한 먹을거리를 제공하고, 여기에서 발생한 수익금은 농촌지역 취약계층을 위한 교육문화복지 사업에 우선 지원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 이러한 꾸러미사업은 과거에는 주로 생협을 중심으로 이루어졌지만, 최근에는 지역단위(춘천, 서천, 청주 등)에서도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지역먹을거리의 장점을 살려서 학교급식을 비롯한 단체급식과 결합하여 운동을 전개하고 있는 사례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가까운 일본의 경우 지역농산물을 학교급식에서 활용하기 위한 노력이 법적으로 인정을 받았고, 내년에는 학교급식의 30%이상을 지역농산물로 사용하는 것을 정책목표로 삼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학교급식에서 지역먹을거리를 활용하고 있는데, 전남 나주시는 지역의 친환경농업을 육성하고 지역먹을거리를 통해 생산자와 소비자가 서로 협력하는 모델을 만들기 위해서 학교급식운동에 주력하고 있다.

경남 교육청에서는 지역생산이 가능한 품목을 중심으로 한 ‘표준식단’을 작성하고, 전통 식문화계승을 위한 장독대 설치를 추진하고 있다. 원주시도 2011년까지 관내 모든 유치원과 초·중·고교 급식에 지역에서 생산되는 친환경 쌀을 지원하고, 채소류처럼 저장에 불안정한 품목에 대해서는 안정적인 공급체계를 만들면서 급식지원에 포함시킬 예정이라고 한다.

지역먹을거리운동 향후 과제

지역 내에서 생산된 농산물이 지역에서 소비되는 선순환구조가 만들어진다면 지역경제의 활성화에 기여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지역내의 고용 확대를 가져올 수 있다. 그러나, 지역먹을거리운동이 올바로 정착되기 위해서는 해야 할 일도 많다.

현재의 단일경작위주의 영농체계를 다품목 소량생산체계로 전환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지역의 다양한 수요에 대응한 공급이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소비자들 또한 농산물의 공동생산자라는 인식을 갖고, 지역의 농업을 함께 책임진다는 자세가 필요하다.

한편 지역먹을거리운동을 전개하면서 경계해야 할 부분도 많다. 특히 지역먹을거리운동을 거대자본을 매개로 전개해서는 그 목적을 달성하기 어렵다. 거대자본은 ‘농’과 ‘식’의 관계를 단절시킨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아울러 ‘지역’이라는 단어에 매몰되어 지역먹을거리운동이 지향하는 ‘관계’의 회복을 소홀히 해서도 안 되고, 지역이기주의를 부추기는 행태 또한 경계해야 한다. 지역내 관계의 심화와 함께 지역간 연대의 확대도 고민한다면 지역먹을거리운동을 통한 ‘범위의 경제’가 발휘될 수 있는 여지는 더욱 넓어질 것이다.  

저작권자 © 한국농정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