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아이들이 행복한 학교

  • 입력 2009.10.05 11:34
  • 기자명 조경선(전남 고흥고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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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경선 교사>

1990년대, 전국농민회총연맹에서 3년간 일하다 한눈에 보기에도 딱 건강한 농민회 총각을 만나 전남고흥으로 온 지 10년이 훌쩍 지났다. 그 사이 커브를 틀어 임용고시를 보았고, 교사가 되었다.

내가 사는 면 단위 조그만 종합고등학교에서 4년을 전부 보내고, 올해는 읍내 고등학교로 옮겼다. 가정방문을 다녀온 담임선생님들께서는 작년보다 아이들의 가정형편이 좋아 보인다고 했다.

같은 군 단위에서 읍내와 면 단위의 가정형편이 이렇게 차이가 날까 싶었다. 읍내 아이들은 어른들이 보기에 단정했고, 무엇보다 밝고 환하게 잘 웃었다. ‘천사’ 같은 아이들이라고 선생님들께서 칭찬하신다. 나는 지난 4년간 지독히도 마음을 쏟았던 아이들 얼굴이 겹쳐졌다. 그 아이들에게 ‘돌대가리’ 라며 서슴치 않고 모욕을 주었던 선생님도 있었다.

면단위 실업계였던 우리 반 25명 가운데, 양부모님과 함께 사는 학생은 불과 3명에 불과했다. 그 중 한 아이 부모님의 경우, 작년에 엄마가 오랜 암 투병 후 돌아가시고, 한 달 후 아버지가 간경화로 돌아가셨다.

나는 그 아버지의 장례식장에서 먹먹한 가슴을 한참이나 부여잡고 있어야 했다. 더군다나 작년에는 고등학교 1학년인데 중학교에 다니는 동생과 단 둘이 사는 경우도 있었다. 뿐 만 아니라 초등학교 여동생이랑 사는 남학생도 있었다.

그리고 며칠 전에는 함께 그 학교에서 일하던 동료 선생님과 늦은 밤까지 이야기를 나누며 아이들의 소식을 들을 수 있었는데, 그 아이 중 한 명은 자퇴를 하고야 말았다고 전했다.

기초생활 수급자로 정부의 보조를 조금이나마 받기도 하고, 지역에서 이름을 밝히지 않고 이들을 후원하겠다는 사람과 연결이 되기도 했었다. 지역에서 아동, 청소년센터나 복지시설에서 지원을 하기도 한다고 들었지만, 그 아이들의 삶에서 큰 위로와 힘이 되지는 못하는 실정이다.

우리 군에서도 우수한 학생들을 육성한다는 명목으로 서울의 입시 학원 강사를 초청해 국·영·수 과목을 소수의 성적 우수 학생들에게 수강하게 하고 있다. 영어시험을 잘 본 아이들에게는 해외여행도 무료로 보내주고 있다.

물론 피 같은 막대한 예산이 소요된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농촌 우수고등학교 육성 사업으로 기숙형 공립학교가 된 우리 학교와 군에서는 서울대 합격생을 좀 배출해 보자는 계획으로 많은 정열을 쏟고 있다. 그래서 인근 도시로 인구가 빠져나가는 현상을 막고, 명문고등학교로 발돋음 하고자 한다고 한다.

모의고사를 치른 날, “언어영역 1등급이 몇 명이냐? 100점이 몇 명은 나와줘야 한다, 누구는 서울대를 가야하니까 1등급이 나올 수 있도록 각별히 지도해 달라”는 말을 들었다. 나는 “소수가 잘 하는 것보다 다수가 그 과목을 좋아하고 조금씩 오르는 것이 더 중요하다. 차라리 평균 점수를 보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아이들에게는 전부 수고했고, 잘했다고 칭찬해 주었다. “우리가 쇠고기도 아닌데 만날 등급으로 스트레스 받지 말자, 적어도 문학 시간에는 말이야.”라고 덧붙였다.

이제 농촌에서 서울대를 한 명 보내기 위해 애쓰는 노력에서 벗어나야 한다. 우리 학교와 지역에서 돌봄이 필요한 청소년은 얼마나 되고, 그들의 삶은 어떤 조건에 놓여있는지 시급하게 파악하여 지원 정책을 펴야 한다. 당장 소수를 위한 입시 강연은 집어치우고, 청소년들이 자신의 수준과 흥미와 끼에 맞는 다양한 교육 문화 프로그램을 접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또 학부모들이 적극적으로 대학 평준화를 위한 활동도 함께 해나갔으면 좋겠다. 대한민국 농촌의 아이들이 행복한 학교와 세상은 불가능한 꿈일까. 오늘도 서울대를 보내기 위한 꿈을 꾸다 절망하는 읍내의 농촌 학부모들과 학교에서 취업은 시켜주겠지 하고 생각하는 면단위 농촌의 학부모들 사이에서 고민한다. 그 와중에 전체 학생 수가 적다고 교사 수를 더 감축하겠다는 소식이 들릴 뿐이다.

<조경선(전남 고흥고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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