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9주년>르뽀-쌀값 폭락...한숨짓는 농민들

“대출금 원금은 커녕, 이자나 갚을 수 있을지…”
■ 전국서 가장 먼저 벼 베는 강원도 철원군 들녘을 가다

  • 입력 2009.10.05 10:48
  • 기자명 김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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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보다 80kg 2만원 하락, 벌써 내년 농사 걱정
“임대료-농자재 값 등 갚고 나면 남는 것이 없다”
“정부 쌀 추가매입, 시장서 완전격리” 한 목소리

▲ 금빛으로 물든 철원 들녘에서 최근 벼 수확이 한창이다. 쌀값 폭락시대도 가장 먼저 맞닥뜨리고 있는 농민들의 표정은 어두웠다. <사진-김주영 기자>
2009년 가을, 전국이 쌀값으로 들썩이고 있다. 큰폭의 쌀값 하락으로 추수기 들녘을 바라보는 농민들의 마음이 우울하다 못해 ‘망연자실’ 그 자체다. 경북 의성과 전남 나주, 여주 농민들은 1년 쌀농사 일부를 갈아엎었다. 철원은 80kg기준 나락 수매가가 2만원 가량 떨어졌다. 농민들과 농민단체들은 대북 쌀지원이든 시장격리든 당장의 대책부터 근본적인 대책까지 마련하라고 줄기차게 요구하고 있으나, 정부는 쌀 가공 시장 확대와 대농육성 등 엉뚱한 해법을 제시하고 있다. 원성의 메아리가 가득한 가을 농촌들녘을 찾았다.


추석을 일주일여 남겨놓은 지난달 24일, 국내에서 가장 먼저 벼를 베는 철원의 들녘은 이미 수확기를 맞아 분주했다. 철원은 전국 쌀 생산량의 약 1% 정도를 점유하는 지역이지만, 대부분의 농가가 벼농사를 짓고 있고 햅쌀을 가장 먼저 출하하며, 밥맛이 좋아 다른 지역보다 비교적 높은 수준의 쌀값을 형성해 왔다. 그러나 올해는 오히려 가장 먼저 수확기 쌀값 폭락사태와 맞닥뜨리고 있었다.

계산기 두드리기 바쁜 농민들

철원의 들판은 황금빛으로 물든지 오래고, 벼 수확이 한창이었다. 콤바인이 굉음을 내며 힘차게 돌아가고 있는 반면 논주인은 올해도 대출금 이자만 갚아야 하는지, 아니면 원금 일부라도 상환할 수 있는지 수확의 기쁨은커녕 계산기 두드리기에 바쁘다.

김용빈 철원군농민회 회장은 분주한 들판을 가리키며 “수확하고 있는 농민들은 진작부터 계산기를 수없이 두드려 왔을 것”이라고 전했다.

철원의 올 해 벼 수매가격은 철원 농협이 80kg 기준 18만원선으로 결정했다. 이는 지난해(20만4천원)에 비해 2만원정도 떨어진 가격이다. 이 지역 다른 농협들도 이를 따를 것으로 보여 문제의 심각성이 커지고 있다.

철원의 농가는 대부분 벼를 경작하고 있다. 한 농가당 평균 7천평 가량의 논농사를 짓고 있어 농민들이 당장 만지는 돈은 농가마다 차이는 있으나 평균 2천만원에서 2천5백만원 정도다. 그러나 이는 나락을 수매하고 처음에 만지는 돈일 뿐, 이 지역 70%가 임차농으로 토지임대료, 농자재 값을 치르고 나면 남는 게 없다. 내년에 무엇으로 농사지을지 걱정이 앞선다.

그래서 겨울에는 다른 일을 찾아야 하는 경우가 많다.

제값만 보장되면 농사 지을텐데

▲수확기가 한창인 철원의 한 미곡처리장 앞에는 나락을 수매하기 위한 트랙터들이 도열해 있다. <사진-김주영 기자>
▲ 해가 진 시간, 농민들은 여전히 수매를 기다리며 서성이고 있다. <사진-김주영 기자>
더욱이 철원지역은 도심과의 접근성(경춘 구간 고속도로 개통)이 좋아 토지 값이 꾸준히 상승하는 추세로 이미 많은 땅이 외지인의 차지가 됐다. 그나마 농토를 갖고 있는 농민들도 이를 마련하느라 빌린 대출금을 갚아야 하고 이마저도 이자만 갚고 마는 해가 많다.

오후 4시 철원읍 동송농협 종합미곡처리장(RPC) 앞은 수확한 벼를 실은 트랙터들이 줄지어 도열해 있었다. 대낮부터 늘어선 트랙터들은 저녁 7시 이미 땅거미가 내려앉았지만 수확기가 한창이라 각자 자기 순서를 기다리고 있는 것. 농민들은 이미 서너 시간 째 트랙터 안에서 혹은 삼삼오오 모여 쌀값을 놓고 푸념 섞인 한탄을 주고받고 있었다. 그것도 진이 빠지면 밥을 먹으러 가고 그러다 졸리면 트랙터 안에서 잠시 눈을 붙인다.

미곡처리장 주변에는 30대부터 70대 노인까지 이 지역 다양한 연령층의 농부들을 만날 수 있었다. 1년 농사를 지어 수확한 쌀을 헐값에 팔아야 하는 농민들은 한결 같이 정부와 농협중앙회를 향해 원성을 쏟아냈다.

칠순이 넘어 힘겹게 육체노동을 해내는 노인들은 도시민들이 쌀 귀한 줄을 모른다며 성을 내면서도 제값만 받으면 죽을 때까지 농사를 짓고 싶다고 말했다. 그나마 얼마 남지 않은 젊은이들은 쌀값이 계속 생산비에도 못미친다면 당장은 길이 보이지 않아도 다른 대책을 마련해야하지 않겠냐며 정부에 대한 원성을 높였다.

50년 넘게 철원에서 농사를 지었다는 심준식 (장로1리, 72세) 노인은 다짜고짜 성을 낸다. “서울 사람들이 밥을 안 먹잖아. 그게 문제지. 몰라 물어? 피자니 햄버거니 주전부리만 하고. 아무리 그래도 밥 안 먹는 사람 있어? 쌀 귀한 줄 몰라. 없어봐야 알지.”

옆에 있던 박종서(장노 1리, 68세)노인도 한마디 거든다. “정부가 쌀값을 계속 내리려고 하는데 지금도 충분히 싸. 계속 이러니 농사지을 마음이 없어. 평생 농사지어 할 일이 없으니까 마지못해 하는 것”이라면서도 평생을 해왔으니 제값만 치러주면 농사짓고 싶다는 말도 빼놓지 않는다.

철원 동송읍에서 농사를 15년간 지었다는 38살 김모씨는 이 지역 농민 중 비교적 젊은 편에 속한다. 김모씨의 말에 따르면 그나마 철원은 다른 지역에 비해 젊은 사람이 많다고 한다. 그는 예전에는 철원쌀값이 좋은 편이어서 농사지을 만 했다고 떠올렸다. 쌀값대책에 대해 묻자 서울에 있는 농민단체들의 대응에도 문제가 있다며 입을 열었다.

물가 오르는데 쌀값은 뒷걸음질

▲ 농민들은 제값만 주면 농사를 짓고 싶다고 말했다. <사진-김주영 기자>
“언론을 보면 농민단체들이 우리의 요구를 함께 주장해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런데 이제는 떼를 써서 받아내는 단계는 지난 것 아닌가. 같은 테이블에 앉아서 문제를 해결해야 된다고 본다. 지금 있는 틀에 문제가 있으면 장기적인 안목에서 농민과 정부 그리고 농협이 잘 조율하는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모씨는 정부와 농협중앙회가 제 역할을 못한다며 언성을 높이기도 했다.

“농협중앙회의 역할이 크다. 농협이 자기 역할이 뭔지 모르는 것 같다. 정부는 문제가 더 크다. 한국에는 중·소농이 많은 것을 다 아는데 정부가 계속 대농들만 지원하는 포괄적 지원금이니 하는 것을 만들고 공개적으로 대농을 육성하겠다고 말한다. 농촌이 기업인가? 쌀이 경쟁력에서 뒤쳐지면 도태되어야 하나. 우리 보고 농사짓지 말라고 하는 거면 대안을 만들어 주든지. 지금 쌀값이 언제 쌀값인줄 아나. 10년 전이나 별반 다를 것이 없다. 지금이나 예전이나 그게 그거다. 다른 물가는 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뛰는데 쌀값만 뒷걸음질이다. 답답하다. 요새는 당장 다른 길이 보이지 않아도 농사를 계속 지어야 하나 생각한다.”

익명을 요구한 한 지역농협 관계자는 “요새 쌀값이 떨어지니까 유통업계가 이를 호재로 삼아 돈을 많이 남기고 있다. 서울의 대형마트들은 쌀을 덤핑판매하고 있고, 그러다보니 쌀값은 계속 떨어진다. 계속해서 쌀시장에 영향을 주는 거다. 여기에 농협중앙회는 손해 볼 것이 보이니 일부러 나서지 않는 상황이다. 농협중앙회와 정부가 지원해줘야 한다. 나름대로 기준이 있고 고충도 있긴 하겠지만 이들이 농민들을 도와줘야 하는데 그렇게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고 전했다.

그는 이후 대책에 대해 묻자 말을 아끼면서도 정부가 쌀을 사서 완전 격리하는 것이 가장 급선무라고 말했다. 그는 이는 ‘모두 아는 사실’이라고 강조하며 정부만 모른 척 한다고 말했다. 이어 “쌀 가공품 얘기 하지만 큰 영향이 없다. 지금 농민들이 농사를 지을수록 빚은 많아지고 있는데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농자재 값은 오르고 철원의 경우 토지 임대료도 매년 오르고 있다. 생산비가 오르고 있는 거다. 정부가 대책을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올 해로 농사를 26년째 짓고 있다는 이 모씨(장흥3리, 51세)는 “예년에 비해 6백만원에서 7백만원정도 손해를 봤다”며 정부의 쌀값 대책에 대해 격양된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그는 “쌀 소비량이 줄고 있다. 우리도 안다. 그래서 쌀농사 조금만 지으라고 하는데 대책을 마련해줘야 할 것 아니냐”며 국내 쌀소비에 대해 차근차근 따져보자며 말을 이었다.

“국민이 5천만명이라고 보고 쌀 생산량이 450만톤이고 수입쌀 33만톤 들어온다. 국민 1인당 70㎏ 정도 쌀을 먹는다. 수입쌀 빼고 계산해도 100만톤 남지 않나. 정부가 말하는 대로 농사 안 지을테니 다른 대안을 달라. 나도 이제 농사짓기 싫다.”고 잘라 말했다.

차라리 농협에 돈 두는게 낫다

이 씨는 이어 “대북쌀지원 얘기하는데 북으로 꼭 보내야 하나. 안되면 제3세계로 주면 안되나. 울화가 치민다. 무슨 수를 쓰든 쌀을 격리시켜달라는 말이다. 농사는 지으나 마나니 차라리 농협에 돈을 넣어 두는게 낫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저녁 8시 대부분의 트랙터들이 수매를 마친 시간, 철원 동송농협 미곡처리장 앞 한 노인이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오토바이를 몰고 나타났다. 노인은 다짜고짜 수매를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시비를 걸고 있었다. “내가 부채가 얼만줄 아나. 속이 상해서 마셨다”며 한참을 번갈아가며 시비를 붙인 끝에 오토바이에 다시 몸을 실은 노인은 조심해 가라는 걱정에 “죽으면 좋지. 그게 좋아”라며 갈지자로 오토바이를 몰고 자리를 떴다.  〈김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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