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년인데, 왜 우울해야 하는가?

  • 입력 2009.09.22 09:45
  • 기자명 김순재 경남 창원시 동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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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계가 어떠하건, 내가 사는 남부지방은 올가을에 수확할 농사는 풍년이 확실하다. 농사경력이 20년째이니, 정부 기관의 통계가 뭐라고 나오건 우리도 느끼는 감이 있다. 가만히 누워서 보지 않아도 ‘탁’하고 떨어지면 생감이고, ‘퍽’하고 떨어지는 것은 홍시다.

만물가가 다 오르고 있는데 농산물 가격은 하락을 면하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미워도 쌀을 북쪽에 좀 주었으면 재고라도 덜 하련만 연일 남북이 싸움질을 해대더니, 한쪽은 쌀이 남아서 난리고, 또 다른 한쪽은 쌀이 부족하여 ‘굶주리고 있다’고 한다. 이러니 어디 정치가 있다고 할 수 있겠는가?

우리지역의 농가는 축산물을 제외하면 주소득원이 단감농사와 벼농사이다. 비가 많이 오거나 가뭄이 조금씩 들기는 하였어도, 큰바람이 없었던 탓에 단감은 가지가 늘어질 정도로 잘 붙어 있다. 벼는 잎이 조금 말라가기는 하지만 수확량은 줄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가격은 아무도 모른다. 다만 농민들은 경기가 좋지 않다고 하니, 과일값이 내리려느니 하면서 담담히 받아들인다.

쌀은 전년도의 재고가 많이 남았다면서 미곡종합처리장에서 매입을 회피하고 있으니, 가격이 내릴 것으로 짐작하고 있다. 농업경영비는 야금야금 올라가면서 우리의 생활을 어렵게 하고 우리의 수입은 줄어가면서 생활을 쪼들리게 하고 있다.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면, 의례 사면복권 같은 것을 단행하듯이 농민들에게도 희망의 무언가를 줄 듯도 하건만, 4대강 사업으로 주변 농민의 경작지는 줄어들고 농산물 가격은 내리고, 농업경영비는 올랐으니 우리 농민들은 갑갑해진다.

그런데도 의외로 농민들은 담담하다. 어려운 경제조건에 단련이 많이 되어진 모양이다. 옆집의 형님들은 하우스를 줄이고, 여기저기 부탁하여 남의 논을 조금씩 늘려 짓고, 정부가 뭐라고 하건 보리도 조금씩 더 심고, 허리띠는 졸라매는 모양이다. 그러면서 버티는게 분명하다.

며칠 전 해질 무렵에, 옆집 형님을 읍내에서 만났다. 작업복 차림이었고, 슬리퍼를 신고 있었다. “형님, 뭐하러 나왔는기요?”하고 물으니, 그 형은 “밤낚시나 해볼까 싶어 낚시대 사러 나왔다”고 했다. 그 형 집 앞으로 흐르는 조그만 냇가에 낚시를 드리워볼 모양이었다. 그 형과는 따로 헤어져 집으로 돌아오면서, 최소한의 그 무엇만 보장되어진다면 우리의 삶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우리의 농담 표현대로, 동네 할매, 할배들을 차곡차곡 산에다 묻으며 우리 차례를 기다린다고 한다. 어떨 때는 땀흘려가면서 밤낮으로 일하며 보내도, 서늘해진 농촌의 맑은 공기를 마시고 여유로운 가을철에 약간의 경제적인 풍요가 기다려 준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힘겹게 자녀를 공부시키고도 너무나 올라버린 도시의 집값 때문에 변변한 전세방도 하나 제대로 구해주지 못하는 농촌의 부모들 마음이 얼마나 무겁겠는가? 지역이 도시와는 가까운 관계로, 턱없이 농지 값은 올라있고 우리의 대다수는 도시민의 땅을 경작하면서 먹고 산다.

깔고 앉은 집터와 몇 마지기의 논을 제외하면 팔아먹을 땅도 없고 저축해 놓은 돈도 없다. 그러니 주변의 농민들은 괜히 다 커버렸거나 커 가는 아이들을 보면 미안한 생각이 든다고 한다.

알지 못하는 농업의 미래 때문에 소 값이 오르면, ‘소를 좀 사서 키울걸’하며 농담하고 특정한 채소 값 하나가 좋으면 그 ‘채소를 재배할 걸’ 하면서 약간 여유 있어진 가을날을 보낸다.

풍년의 가을이 깊어져가면서 들판의 색깔이 변하고 있고 텔레비전은 추석을 전후해 도로가 많이 막힐 거라고 한다. 농민들은 내심으로 생산물의 풍년이 아닌 가격의 풍년이 우리에게 다가 오기를 바라고 있다.

우리에게 벅적거리지 않는 농촌에 살고, 간혹 주어지는 여유로움의 대가 치고는 낮은 농산물 가격은 너무 가혹하다. 올해 잘못 지어진 농사는 내년에 잘 지으면 되지만 해마다 낮은 농산물 가격에 농민들은 차라리 가을이 두려울 것이다. 나만 그런지는 모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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