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기의 농사이야기

새말 아지매에 대한 단상

  • 입력 2007.09.15 15:14
  • 기자명 이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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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나, 여깃다. 고맙다고 전화나 한통 해 조라.”

참깨밭 비닐을 걷어내고 마루로 올라서자 어머니가 내 발 끝에 담배 한 보루를 툭 던져 놓으신다. 여름내 복숭아 잘 먹었다고 새말댁 아지매가 주고 갔단다. 나는 기분이 묘해져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문다. 빗물과 폭염으로 끔찍했던 지나간 여름내 내 날카로운 신경의 끝을 건드리던 새말 아지매가 담배 한 보루를 가져 왔다?

여름내 작업을 마치기가 바쁘게 오전 10시쯤 공판장에 복숭아를 갖다 주고 오면 한두 상자 남겨 두었던 B품 상자는 늘 깨끗이 비워지고 없었다. 나는 B품은 시장에 내놓지 않는다. 그것이 시장거래 질서를 어지럽힌다고 믿기 때문에 무조건 버린다. 간혹, 어떠한 경우에도 복숭아를 사 먹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한 상자쯤 갖다 주어도 대부분은 내다버린다. 그런데 날마다 그 복숭아가 없어지자 하루는 어머니께 물었더니 ‘새말 새댁’이 가져간단다.

“자식이 여들 아이가. 암만 줘도 그 집에는 모자린다.”
상처 나고 찌그러지고 병들고 무른 것을 얻어다가 매일 자식들에게 택배로 보낸다고 한다.
“그걸로 여덟 자식을 다 멕인다고요? ……차라리 앞집 소나 주소.”

나는 기가 막히고 화가 나서 단단히 못을 박아버린다.
“야가 와이카노. 짐승 주는 거 보다야 사람 묵는 기 낫지. 니도 차암 희한하다.”
일흔을 막 넘긴 새말 아지매는 8남매를 두었다. 그런데 나는 아직도 집안 동생들인 8남매의 아래로 절반은 이름도 순서도 잘 모른다. 다만 내가 기억하는 그 집 남매의 순서는 딸, 아들, 아들, 딸, 딸, 아들, 딸, 아들이라는 것뿐이다. 그러나 몇 명이 결혼을 하고 몇 명이 미혼인지는 알지 못한다. 언젠가 어머니에게 그것을 여쭤 보았지만 어머니도 손가락을 짚다가는 이내 고개를 젓고 말았다.

새말 아지매. 저녁 밥숟갈을 떠 넣으면서도 꾸벅꾸벅 졸던 여자. 그러나 밥풀 하나 흘리지 않고 정확하게 입안으로 가져가던 그녀를 생각하면 내 코끝에는 매운 고춧가루가 느껴진다. 문득 8남매의 아래로 절반 이상이 아직 어린아이였을 때의 먼 기억이 눈가를 스친다. 그때, 아지매는 3천평이 넘는 사과농사를 혼자서 지었다. 남편은 농사라면 아주 젬병이었다. ‘평생 동지’를 외치던 독재정권의 하수인이 되어 건달처럼 살았다. 어쩌다 볼일이 있어 그 집에 가보면 풍경은 정말 가관이었다. 한 놈은 마당 이쪽 구석에서 엄지손가락을 물고 졸고, 한 놈은 저쪽 구석에서 검지를 빨며 꾸벅거리고, 또 한 놈은 새끼손가락을 빨면서 칭얼거렸다. 파리 떼가 얼굴에 달라붙어 아이들의 눈물과 콧물을 빨아먹던 돋을새김의 오래된 풍경을 바라보며 나는 희미하게 웃는다.

“야야, 그래도 고맙다고 전화라도 한통 해 조라, 어야?”

어머니 목소리가 오래된 풍경을 흔들어버린다. 나는 새말 아지매가 가지고 온 담배를 끌어당겨 포장을 뜯는다. 환영일까, 일흔을 막 넘긴 나이에 허리가 꼬부라져 유모차를 앞세워야 걸을 수 있는 여자가 먹이를 구해 새끼들에게 달려가는 어미 새처럼 복숭아를 물고 바쁘게 내 눈앞을 휙 스치며 날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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