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막걸리잔 타령할 때가 아니다

  • 입력 2009.08.24 12:04
  • 기자명 윤병선 건국대 교수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올해 벼재배면적이 역사상 최저를 기록했다는 소식과 함께 산지의 쌀값은 끝 모를 추락을 계속하고 있다.

 현재의 쌀값 하락세가 지속될 경우 올해 수확기 산지 쌀값이 지난해에 비해 8%이상 하락할 것이라는 전망조차 나오고 있다.

올해의 벼 재배면적이 작년보다 1.2% 줄어든 92만 4천500여ha로 크게 감소했고, 올해의 작황예상도 노란 불이 켜져 있는 상황이어서 쌀값이 안정세로 돌아서는 것이 당연할 텐데 상황은 전혀 그렇지 않은 것이다.

 춤추는 시장, 멍드는 농심

이는 쌀재고 문제가 예상외로 쉽게 풀리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들이 시장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고, 농정에 대한 신뢰가 철저하게 무너졌기 때문이다.

세계적 식량위기로 필리핀에서는 총든 군인들이 쌀배급소의 질서를 유지하고, 아이티에서는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을 때만 하더라도 식량자급률이 26%정도에 불과한 한국에서 그나마 쌀은 자급하고 있었기에 안도했던 것이 작년의 일이다.

그런데 불과 1년여가 지나자마자 이제는 쌀재고 문제를 고민하는 지경이 되어버렸다.

냄비장세도 이런 냄비장세가 없는 곡물시장에 대하여 정부는 ‘시장개입의 최소화’, ‘개입에 따른 시장왜곡’이라는 논리를 앞세워 국내 쌀값의 폭락을 수수방관해 왔다고 할 수 있다.

지구온난화로 온도가 1℃ 오르면 쌀 수확량은 10% 줄어들 수 있다고 경고가 이어지고 있고, 올해만 하더라도 중국과 인도의 쌀 주산지에서 가뭄으로 인해 쌀 생산이 크게 줄 것이라는 예측들이 줄이어 발표되고 있는 상황에서 농정당국은 오히려 국내쌀값의 하락을 방조하여 이른바 ‘조기 쌀관세화’의 군불을 지핀 것은 아닌가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로 무대응으로 일관해 왔다.

실제로 정부가 내세우는 ‘조기 쌀관세화’는 국내산 쌀값과 외국산 쌀값의 차이가 줄어들었기 때문에 관세화를 하더라도 지금의 수입물량보다 늘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논리에 근거하고 있으니 이런 의심을 받아 마땅하다.

중앙정부가 쌀값하락 문제에 대하여 손을 놓고 있는 사이에 재고누적에 따른 햇벼수매차질을 우려한 지자체와 농협은 자기지역의 쌀을 판촉하는 행사를 경쟁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이로 인해 각 지자체간의 출혈경쟁이 이루어지기도 하고, 지역주의에 기반을 둔 판촉마저 붐을 이루고 있다.

수도권에 살고 있는 출향인을 대상으로 펼치고 있는 고향쌀 팔아주기 운동이 그것이다.

한 광역지자체에서는 2008년산 쌀을 9월까지 재고를 0으로 만든다는 의미의 ‘890’을 슬로건으로 지역쌀 소비촉진운동을 펼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들이 지자체차원에서 쌀 재고 감소에 어느 정도는 기여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국가전체의 재고감소로 이어질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어차피 쌀 자체의 소비가 늘지 않고서는 ‘땅따먹기놀이’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런 걱정 때문인지 농림수산식품부는 최근 ‘밀가루시대에서 쌀 전성시대로!’라는 보도자료를 배포하였다.

정부의 가공용 쌀 공급가격을 30% 낮추고, 쌀 제분공장을 설립하고, 쌀막걸리 전용잔을 개발하여 ‘제대로 된 잔’에 막걸리를 마실 수 있도록 하여 막걸리의 품격을 올리겠다는 것이 그 내용이다.

‘제대로 된 잔’이 없어서 쌀막걸리의 소비가 적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제대로 된 잔’을 개발하기에 앞서서 시중에 유통되는 쌀막걸리가 국내산 쌀을 얼마나 이용하고 있는지, 출고량 상위 20% 중 국내산 쌀 사용 막걸리는 단 한곳에 불과한 이유는 무엇인지를 살펴봐야 한다.

우리말의 ‘삭았다(발효되었다)’에 어원을 두고 있다는 일본의 사케가 자국산 쌀을 한해 27만톤이나 소비하게 된 힘은 어디에 있는지를 고민해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고민도 지금 이 순간에도 폭락하고 있는 산지 쌀값을 어떻게 되돌릴 것인가 하는 문제를 해결한 다음에 해도 늦지 않다.

 수습대책에도 선후가 있다

 일단은 과잉분을 시장에서 격리하고, 장기적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양파값이 폭락하면 양파를 들고 서울역 앞으로 가서 양파를 공짜로 나눠주는 식의 쇼를 되풀이 할 것이 아니라, 재고분으로 인한 시장가격 압력을 제거해야 한다.

정부는 작년도산 쌀 10만톤을 매입하여 격리하기로 하였다고 발표하였지만, 이것도 지역농협의 창고에서 농협중앙회의 창고로 옮기는 수준의 임기응변식 대책일 뿐이다.

최근에 중단된 대북쌀 지원은 인도적 차원의 성격을 가지고 있으면서, 국내 쌀생산의 유지라는 중요한 역할도 함께 수행해 왔기에 확대된 국내소비처라는 성격도 동시에 가지고 있다.

따라서 농민단체들과 일부 정치권에서 지속적으로 주장해 온 대북식량지원의 재개만큼 확실하고 신속하게 재고쌀을 시장에서 격리시키는 대책은 없다.

그런 다음에 쌀가루 이야기도 할 수 있고, 쌀라면 이야기도 할 수 있고, 막걸리잔도 이야기 할 수 있다.

저작권자 © 한국농정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