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백두산이여! 천지여!

환경농업단체연합회 감사 오덕훈(경북 상주)

  • 입력 2007.09.15 15:05
  • 기자명 오덕훈 환농연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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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덕훈 환경농업단체연합회 감사

나는 백두산만 보면 가슴이 쓰렸다. 백두산 천지 사진만 보아도 가슴이 뛰었다. 백두산은 우리 민족의 시원(始原)이며 민족의 성산(聖山)이라는 관념이 우리 겨레의 일원이라면 누구에겐들 없겠는가?

더구나 옥빛 물이 끊임없이 샘솟아 흘러 압록강이 되고 두만강이 되게 하는 천지(天池), 백두산 천지는 신비와 동경(憧憬)이, 그리고 자랑스러움이 사시사철 수 만년을 솟아나는 그 천지의 물처럼 우리 가슴에 솟아나지 않는 이 있겠는가? 나라고 어찌 예외일 수 있겠는가?

우리 땅을 통해 오른 감격
그런데, 온전히 우리 것이라고 믿었던 그 백두산이, 천지가 어느 새 중국 것으로 바뀌어 있다는 것이 생각할 때마다 쓰리고 아팠다.

중국과 수교가 되고 많은 사람들이 지금은 중국 땅이 된 만주를 통해, ‘중국 땅 백두산’을 다녀올 때도 나는 가지 않았다. 그렇게 그립고 가보고 싶은 백두산, 천지였지만, 나는 가지 않았다.

‘우리 백두산, 천지’가 중국 것으로 나누어졌다는 것이 분하고 원통한데, 중국을 통해 가는 것은 아주 그것을 내가 인정해 주는 것이라고 여겨졌다. 그래서 굳이 가려고 했으면 갈 수 있었던 중국 백두산 행을 거부하고 있었다.


“언젠가 우리 백두산을 우리 땅을 통해 가리라.”


이렇게 다짐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바램과 고집이 내 평생이 이루어지리라고 스스로도 장담하진 못한 것이 솔직한 고백이다.

내가 이번에 평양에 오게 된 것만도 꿈같은 일이다. 남북교류가 틔어 여러 단체 활동이나 계기로 평양을 다녀온 사람들은 많았지만, 나에게는 요원한 일이었다. 평양으로 오기 전날 밤에 나는 한 숨도 자지 못하고 왔다. 그러나 우리 땅을 통해 백두산에 오른다는 일은 내가 평양에 온 것보다 더 설레고 꿈같은 일이다.

백두산에 오르기로 한 전날, 나는 가서 무엇을 할 것인가 생각해 보았다. 스스로 돌아보니 그저 들떠 있기만 하였지 막상 아무런 마음의 준비도 없음을 깨달았다. 자정이 가까운 시간에 호텔 꼭대기 층에 있는 식당 겸 주점으로 올라갔다.

술을 한 잔 시켜놓고 이것 저것 보니 북어 찢어 쟁반에 담아 놓은 안주와 진열대에 과자 봉지가 보였다. 과일은 보이지 않았다. 소주 한 병, 북어 한 접시, 과자 한 봉, 그리고 술잔 하나를 빌렸다. 민족의 성산에 왔으니, 그것도 평생 혼자 속으로 바라던 우리 땅으로 우리 백두산에 왔으니, 당연히 천지 신명께 제사를 올려야 하리라. 빌 것도 없다. 아니 빌기로 하면 어찌 없기야 하겠는가?

너무 많아 탈이지. 그러나 평생에 처음 올라가 무엇을 빌기보단 그냥 감사하고 싶었다. 하느님도 좋고 부처님도 좋고 천지신명도 좋다. 우리 땅을 통해 우리 백두산에 오르게 받아 준 백두산도 좋다.

그저 감사의 절을 올리지 않으면 안될 것 같았다. 비록 주과포도 제대로 장만하지 못한 초라한 제물이지만, 이 감격과 고마움을 그렇게라도 전하고 싶었다.

말로만 듣던 개마고원(북쪽 안내원은 백두고원으로 부른다고 했다.)위에 내려 버스를 타고 오르는 백두산 길은 이미 감동이었다. 미리 수 십 년 도안 감동을 준비해 오던 차인지라, 그 감동을 무딘 내 손길로 다 적어 표현할 길은 없다.

버스에 내려 문득 돌아보니 바로 발아래 천지가 보였다. 아 여기가 바로 백두산 그 곳, 천지 그 곳이구나! 강사 선생(북측 현장 안내원)의 설명과 가르침이 나의 감동과 환희에 무슨 보탬이 되겠는가? 하늘은, 푸르를대로 푸르른 하늘은 하얀 구름 몇 구비 날리며 천지에 내려와 잠겨 있었다.

가슴앓이 멈추지 않을 것

내가 왔다. 백두산에 왔고, 천지를 내려다보고 있다. 하늘은 더 없이 쾌청하고 기온은 적당히 선선하다. 장군봉 아래서 가방을 열고 제상을 차렸다. 차마 제상이라고 하기조차 민망하지만, 다른 분이 또 술을 한 병 내놓아 제사상이 되었다. 도포에 갓을 쓰신 분을 먼저 잔을 올리게 했다.

나는 세 번 째로 잔을 올렸다. 안내원의 채근으로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기면서 저 건너 ‘중국 땅 백두산’이라는 곳에 건물이 보였다. 또 다시 가슴이 쓰리다.

백두산에 왔지만 백두산, 천지만 생각하면 앞으로도 가슴앓이는 멈추지 않을 것 같다. 그러나 우리 땅을 통해 우리 백두산에 오른 이 감격을 내 살아 있는 동안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아, 백두산이여, 천지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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