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종감자 캐던 날

  • 입력 2009.07.12 12:32
  • 기자명 정영이(전남 구례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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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영이(전남 구례군 용방면 죽정리)
어떤 종자를 심어야 할 지, 어디에 심어야 관리가 쉽고 자주 들여다 볼 수 있을지….

이래저래 고민하다 감자를 심어보기로 했다. 감자는 이미 대부분의 농가에서 씨감자를 남겨두지 않는다. 기술센터 등에서 온갖 농약을 버무려 육종하여 보급하는 것을 이장이 방송할 때 앞 다투어 사다 심는다.

감자를 심어보기로 결정하고 나니 씨감자를 어디서 구하느냐가 문제다. 이미 감자 심는 시기가 한참 지난지라 토종 씨감자는 물론이고 육종한 것도 구할 수 없다. 사방으로 수소문하니 다행히 산동면 농민회원이 생산한 감자가 있다는 것이다.

어렵게 구한 농민회원 씨감자

씨감자는 구했는데 이젠 농사일이 한창인 시기라 회원들과 날 잡기가 만만찮다. 잡은 날을 서너번 번복한 끝에 결국 늦은 듯싶은 4월1일에 대망의 토종텃밭에 감자를 심었다.

감자는 처음 심다보니 베테랑 아짐(아줌마)들에게 꾸지람도 듣고 하우스 안이라 깡마른 땅을 갈며 흙먼지를 뒤집어 쓴 신입회원 언니의 남편에게는 미안하기 이를 데 없다.

우여곡절 끝에 기다란 이랑에 감자 심기는 끝났고 흐뭇하기 그지없다. 싹이 언제나 틀지 농약 한 방울 하지 않았으니 풀과의 전쟁은 어찌할지…….

하우스라 비를 맞을 수 없으니 물은 또 누가 번번이 줄 것인지…….

그래도 심었다는 것만으로도 스스로 대견해했다. 하지만 물주는 것은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호스를 잡고 주려니 넓은 하우스에 3시간으로도 모자랐다.

보다 못한 우리 남편, 철물점으로 달려가 스프링클러를 사다가 군데군데 설치해주더니 이제 물주기 담당이다.

감자는 풀 속에서도 잘 자라 주었고, 회갑을 넘기신 동네 아짐은 약을 쳐야 한다며 성화셨지만, 끝내 우리의 고집을 꺾지 못하셨다. 6월의 마지막 주 여성농민회 회원과 농활학생들이 합심을 하여 감자를 캤다.
지난주 일요일에 캤으면 풀이 이 정도는 아니었을 텐데… 농약 한 방울 하지 않은 농사다. 앞서가며 풀과 함께 풀보다 낮은 감자 줄기를 베고 가면 따라오며 감자를 캤다. 땀이 비 오듯 쏟아졌다.

감자 수확을 하고 나면 기왕에 임대하는 밭이니 한철 농사로 끝낼 것이 아니라 두 가지 작목을 해보자는 회원들의 의견으로 메주콩을 심기로 했다. 윤주남 여성농민회 전회장님이 벌써부터 토종 콩 종자를 넉넉하게 가져다 주셨다.

토종씨앗 텃밭 얘기를 하자면 구구절절 흐뭇한 사연이 많다. 이렇게 흐뭇한 농사. 바보 같은 농사를 포기하지 않고 지어내는 여성농민들.

전국 각지에서 하지 감자는 쏟아져 나오겠지만 구례에서 지어낸 감자만한 것 있음 나오라고 해!!!
그 마음을 알아주었는지, 우리텃밭 소비자 회원들의 폭발적 구매로 구례감자는 금방 동나버렸다. 그리고 구매뿐만 아니라 고생하고, 고맙다고 소비자들이 어찌나 격려를 해주던지 정말 황송해서 몸 둘 바를 모를 지경이다.

식량/종자주권을 지키기 위해…

구례에서의 토종텃밭은 이렇게 시작이 되었다. 많은 우여곡절과 좌충우돌 돌발 상황도 많지만 토종농사를 짓고 나니 그래 바로 이거야, 힘들지만 이렇게 농민들의 마음을 알아주고, 토종씨앗을 지키는 이것이 대안이라는 생각이 확고해진다.

토종농사를 짓기 전에는 어쩌면 당위적으로 이해하고, 머리로 이해되던 것들이 이제는 온몸으로 이해되고 각오와 결심이 생긴다.

동네 아짐들도 그런 씨감자로는 이제 농사 안 된다고 하지만 굴하지 않고 온 국민의 건강한 먹을거리와, 식량주권, 종자주권을 지키기 위해 내년에도 그 다음 해에도 구례에서는 굵은 감자만 골라 씨감자를 심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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