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기의 농사이야기

산 밑에 사는 죄

  • 입력 2007.09.08 15:32
  • 기자명 관리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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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전화가 부르르 떤다. 나는 흠칫, 놀란다. 아니나 다를까, 화면에 작은아버님의 전화번호가 돋을새김으로 박힌다. 버릇처럼 나는 담배를 끌어당긴다. 오래된 습관이다.

“야야, 복상은 다 따가나?”

나는 대답 대신 조심조심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헛기침을 한다. 침략군의 십자포화처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융단폭격을 퍼부어대던 폭염이 어느 날 갑자기 종적을 감추더니 연일 비가 퍼붓고 소리끼 없이 가을이 왔다. 나는 이마를 찡그린다. 미주알고주알 푸념을 늘어놓는 작은아버님의 목소리가 빗소리에 젖는다.

“사람이 없어 큰일이다. 느그 형제라도 다 와야 될따……야야, 내 말 듣고 있나? 그래도 니가 8대 주손(胄孫) 아이가.”

다음 일요일에 문중 벌초를 하기로 했는데 참석할 사람이 별로 없다고 걱정이시다. 5대조부터 10대조까지의 산소가 있는 운주산 아래 장구밭 그 악산을 떠올리며 나는 코끝이 짠해진다.

몰락해가는 가문이 안타까워 명당자리에 눈이 어두워 풍수에게 속을 줄 알면서도 해발 오백고지 굽이굽이 능선을 따라 조상들 뼈를 싸 짊어지고 다녔을 할배들의 눈물겨운 생애가 손끝에 만져지는 것 같다. 갈수록 문중은 쇄약해지고 후손들은 조상을 외면한다.

수백 명에 이르는 후손들은 다 어디로 가고 해마다 여나믄 명만 모여 식은땀을 흘린다. 그나마도 일흔 살 전후의 늙은이들이 전부이고 젊은 사람이라곤 어쩌다 보이지만 낫질이 젬병이다.

“니가 통기해서 다 오도록 해라. 다음 일요일이다. 알았제?”

사뭇 애원조다. 이제는 작은아버님도 많이 늙었나보다. 일방통행의 그 명령조는 흔적이 없다. 놋날 디룻듯 비가 쏟아진다. 나는 먼저 농사짓는 아우에게 전화를 건다.

“우리만 후손인기요! 나는 인자 안 갈라니더.”

아우는 장구밭 벌초를 알리는 내 말허리를 툭 자르며 화를 낸다. 나는 늘 아우에게 찍 소리 한번 못한다. 8대 주손인 제 형의 입장을 생각해서 20년 가까이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열심히 조상건사를 도왔다.

그런데 작년 벌초 때, 문중 사람들이 거의 오지를 않아 장구밭 벌초는 우리 형제들의 독차지가 되어버리자 아우는 말했다.

“나도 오늘로 이 벌초 졸업장 받았구마.”

예초기로 풀을 베는 일품의 그 솜씨가 빠진다고 생각하자 어깨에 힘이 빠진다.

“우야겠노. 산 밑에서 농사짓는 게 죄 아이가. 쪼매만 더 하면 이 일도 끝이 안 있겠나.”
“언제요? 말대가리 뿔나면요?”

과부 치마끈 잡고 사정하는 홀아비처럼 나는 징징거렸고 아우는 다시 버럭, 한다. 그러나 목소리는 많이 누그러져 있다. 마흔여섯 나이에 이제 막 옹알이를 시작하는 첫아이를 가진 농투사니의 빠른 체념을 나는 전화선 저 너머로 오래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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