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성들이 종자 지키기 투쟁 나서
▶칠레(후아나 쿠리오, 아나무리 여성농민 조직 대표)=종자복원은 정치적 의미를 내재한 활동으로서 식량주권과 맥락을 같이 한다. 이 두 가지는 토지운동과 자주적 생산능력보존, 그리고 우리 민중들의 먹을거리 보호 등과 같은 가치와 목적에 기반을 두고 있다.
신자유주의는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식량주권을 파괴하고 차지하려 하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는 그것을 재건하고 강화해야 한다.
실제로 칠레는 종자를 보호하지 못해 식량을 안정적으로 공급하고자 수입의존도가 계속해서 높아지고 있다. 1970년보다 농산물 수입은 20배 이상 증가했고 같은 시기 감자, 밀, 콩류, 우유, 쇠고기 등의 생산은 비슷한 수준으로 떨어졌다.
이 결과로 칠레의 식료품 가격은 비싸졌을 뿐 아니라 고혈압, 당뇨병과 같은 성인병이 보건 분야의 중요문제로 떠오르게 됐다.
칠레에서 종자를 지키기 위해 벌이고 있는 투쟁은 우리의 땅에 대한 권리가 실현되도록 하는 운동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이는 생명을 위한 투쟁이며 이와 같은 중요한 임무를 여성들이 맡고 있다.
자본의 공격을 저지하기 위해서라도 우리 종자를 지키고 보존하며 식량주권을 구축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식량이 모든 인간에게 꼭 필요한 것임은 더 이상 말할 필요도 없기 때문에 식량을 물과 산소같이 소중하게 여기며 언제나 이를 지키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국제연대로 자원주권 실현해야
▶한국(한영미, 전여농 정책위원장)=한국 농업·농촌 사회는 미국의 잉여 구호물자 원조와 수입으로 인해 전통적으로 지어오던 밀농사, 목화농사 등은 사라져 버렸고 ‘잘살아 보세’라는 기치아래 이뤄진 국토개발은 농촌도 이윤추구의 시장경제로 재편시켰다.
80년대에 들어서는 무한이윤을 뽑아내려는 신자유주의 체계에 농업을 편입해 농약과 비료사용의 급증으로 인해 토양이 산성화, 사막화되어 가고 있다.
이러한 모습을 지양하고 대안농업의 상을 만들기 위해 생산자, 소비자가 각자의 역할을 하기 위해 식량과 종자주권을 실현하기 위한 노력들을 진행하고 있다.
식량주권, 종자주권은 단순히 안전한 먹을거리를 안정적으로 먹겠다는 소비자의 권리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제철음식 소비를 통해 생산체계를 변화시키고 서구식 음식에 길들여져 있는 입맛을 바꾸고, 전통적인 방식으로 생산 가공된 식품을 먹을 수 있는 권리를 찾고 우리의 식문화를 바꾸는 운동이다.
보조금의 산물로 낮은 가격으로 물밀듯이 밀려들어오는 수입농산물이 우리나라 농민들 뿐만 아니라 소비자와 수출국 농민의 생존권까지 빼앗는 것임을 알려내고 자유무역의 첨병인 WTO, FTA와 초국적 기업과 국가에 의해 주도되고 있는 독점을 막고 환경과 건강에 악영향을 끼치고 있는 GMO, LMO를 반대하는 운동이다.
또한 사회적 연대와 동맹에 기반한 농정패러다임 마련과 국민농업으로의 전환을 통해 지속가능한 농업을 실현하는 노력이다.
이러한 것들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유전자원에 대한 국가의 배타적 권리를 주장하고, 국제적으로 연대하여 토종에 대한 자원주권을 실현해 나가야 한다.
농민은 생태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자가 채종의 권리를 확대하여 자본의 굴레에서 벗어나 이를 소비자들이 사회적 합의를 통해 생산 활동을 지원하고, 국가는 국민의 주권을 실현할 수 있는 국내법과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하며, 이를 사회 운동으로 확산하는데 앞장서야 한다.
기업교배종 농민의존 끊어내야
▶인도네시아(마르다 엘리어스, FAPI 농민조직 회장)=종자가 농민들에 의해 소유되고 관리·통제되어야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논리이지만, 불행히도 인도네시아 종자는 대규모 농기업의 이윤창출을 위한 농민 착취의 수단으로 이용되고 있다.
따라서 종자를 지키기 위해 인도네시아 쿠로 지역의 농민들은 대규모 농기업이라는 장애를 극복해야 했다.
대규모 농업 기업들은 현장의 간부들에게 쉴틈없이 교육을 해서 상품판매의 기회를 노렸고, 교활하게도 자신들의 교배종자가 ‘최상품’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종자와 기술구매를 부추겼다. 그래서 많은 농민들은 높은 생산률을 약속받고 은연중에 전통적 농업 방식과 종자를 버리는 상황이 벌어지게 됐다.
이러한 모습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여성농민이 앞장서야 하는데, 그들은 예전부터 고유 종자를 지키기 위해 종자를 수집, 선택, 관리하는 것을 포함해 모든 관리의 책임을 맡아왔다.
이러한 역할은 오직 여성농민의 것이었기 때문에 종자를 지키는 사업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이러한 역할의 분배는 누가 강요해서 생겨난 것이 아니고 농경지를 일구는 일이 남성농민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발생된 것이다.
결론적으로 종자 지키기는 ‘최상품’으로 선전되고 있는 기업 교배종에 대한 농민의 의존도를 끊어내고 여성농민의 생산적 역할을 지켜내기 위해 반드시 수행되어야 할 의무와도 같은 사업이다.
식량주권 각종 교육 프로그램 실시
▶티모스 레스테(마리아 요아나 도 레고, HASTIL 대표)=티모르의 비옥한 토양을 탐낸 포르투갈 제국주의자들은 450년 동안 티모르를 식민지배하면서 기존의 농업구조를 파괴했다.
포르투갈 사람들은 거대 농장을 지어 커피, 고무, 바닐라와 같은 수출작물을 재배했고 티모르인들의 노동력을 착취했으며 그들은 단일작물 재배 구조를 정착시켜 티모르 민중의 빈곤화를 촉진시키고 기존의 지속가능한 농업체계를 무너뜨렸다.
농업은 민중의 생계이며, 복지와 발전, 진정한 독립의 초석이라는 개념이 티모르 레스테 국가발전계획의 바탕이 되어야 만이 국가 발전의 원동력이 마련되는 것이다.
이를 위해 티모르 레스테는 ‘HASATIL’이란 조직이 종자를 지키기 위해 농민들과 함께 지역 식량 보호와 식량주권에 대한 각종 교육 프로그램을 실시하고 있으며, 지역 농산물을 소비함으로써 지역농민 생계에 보탬이 되도록 노력하고 있다.
이 조직이 종자 지키기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 이유는 이 지역 농민들 다수가 아직 기업들로부터 종자를 사들일 자본금이 부족해 지역 고유 씨앗을 사용하고 있으며, 종자를 지키고 보관하는 데 지식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고유의 종자를 사용해서 생산한 농산물이 여전히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고, 국민들의 인식이 가족들을 위한 음식에 지역 농산물을 쓰는 것이 좋다고 믿고 있다.
하지만 문제점으로는 고유종자들이 많이 소실됐으며 정부의 현대화 정책이 농업 자체는 물론 고유종자를 파괴하고 있어 지역 농산물의 시장 진출이 매우 희박한 것이 문제이다.
토산물 이용 장려캠페인 적극 동참
▶캄보디아(오움 사란, FNN 대표)=아시아인의 주식인 쌀은 캄보디아인의 주식이기도 하지만 그와 함께 중요한 작물은 채소이다. 그러나 과도한 살충제와 비료 사용은 경제적, 환경적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실제로 프레이 벵 주에서 SRI(쌀의 집약화 시스템)를 사용하던 농민들은 지나친 화학 비료와 살충제의 구입으로 인해 빚더미에 올라앉았을 뿐 아니라 이들 화학제품의 과도한 사용이 야기한 환경적, 건강상의 문제까지 짊어져야 했다.
현대 과학이 만들어낸 새로운 종자는 전통적으로 지역종자에 의존해 왔던 농민들의 삶을 크게 변화시키고 있으며 개량종자들은 각종 해충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는 성질을 발현하는 동시에 인간이 원하는 영양소를 선택적으로 제공하고 있다.
이는 환영할 만한 일이지만 종자의 품종 개량과 공급 문제가 기업에 좌지 우지 되는 현재의 모습은 지역 종자의 종말을 가져올 것이기 때문에 바람직하지 않을 것이다.
캄보디안 농민들은 지속가능한 농업을 만들기 위해서 친환경 네트워크들과 연대하고 있으며 지역농산물의 가치를 대중에게 전파하고 지속 가능한 농업과 지역 발전을 추진, 확대하기 위해 토산물 이용을 장려하는 캠페인에도 동참하고 있다.
‘종자가 없는 것은 (국가의)정체성을 잃는 것과 같을 정도’로 지역의 종자는 농민들에게 매우 중요하지만 대부분의 농민들은 멀리 내다보는 시각이 부족해 농민그룹은 이를 보완하기 위한 중요한 역할을 하며, 특히 여성은 지역 종자를 보호하는데 핵심역할을 해야 할 것이다.
남성 중심적 사고 현재도 진행형
▶태국(피니 무케어, AOP 회장)=태국빈민연합은 성 평등의 원칙 아래서 모든 조직 활동에 있어 남녀간 역할 구분을 두지 않지만 종자보호 산업이 가족과 공동체의 식량 안보 문제와 직결되어 있고, 종자선택 등의 섬세한 작업을 수반함에 따라 그간 여성의 역할이 매우 컸다.
하지만 농업의 기계화, 산업화가 이루어짐에 따라 여성이 배제된 남성 중심적 사고는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다.
태국 정부의 시장주의 정책으로 인해 많은 종자가 소실됐고 소비자들의 입맛도 시장의 영향으로 변화함에 따라 결과적으로 농민들이 경작하는 품목이나 형태도 바뀌었다.
태국에서 고유의 쌀 종자를 보호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농민들은 종자가 조상으로부터 전해져 오는 전통유산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에 고유종자 재배를 계속함으로써 이 소중한 유산을 지켜내고 후세에 물려주려고 애쓰고 있다.
시장중심의 종자들은 현재 평야 지역에서 집중적으로 재배되고 있으며 고지대 농민들은 전통 경작 방식을 통해 고유 종자를 보호해 왔지만, 수많은 고지대 농민들은 20년 전부터 수출위주의 환금작물(옥수수, 카사바, 사탕수수, 커피 등) 재배로 농업 패턴을 바꾸고 있는 실정이다.
이렇게 새로운 경작 패턴과 화학 물질 사용으로 인해 수많은 고유 종자를 파괴하고 있으며 이는 식량의 소실을 의미하고 가정과 공동체의 식량 안보를 책임지는 여성농민들에게 있어서 큰 타격이 아닐 수 없다.
또한 이로 인해 충분한 식량을 생산할 수 없고, 자연으로부터 부족한 식량을 채취할 수 없게 됨에 따라 생계는 더욱 어려워 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종자와 자연자원에 대한 권리를 수호하기 위해 세계적 연대를 형성함으로써 영세농민들의 정치적 힘을 키워야 할 것이다.
종자 다양성 보호법 2002년 통과
▶필리핀(엘비라 발라다드, PARAGOS 여성농민조직 대표)=여성농민의 다면적인 삶에 있어 힘든 것 중의 하나는 이듬해에 사용할 종자를 거두고, 골라내고, 번식시키고, 이를 보존·보호해 그 가족의 생존을 보장하는 것이다.
종자의 다양성은 농업 분야를 강화시키며, 이를 가능하게 하는 여성농민의 역할은 결코 좌시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필리핀에서는 필리핀 종자 다양성 보호법(공화법 9168)이 2002년 통과되었으나 종자에 대한 농민 권리에 반하는 그 본질로 인해 많은 농민과 비정부기구, 과학자들과 제 3자들로부터 많은 비판을 받아왔다.
이 법의 악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선전, 종자의 보전과 개발에 있어 농민 입장을 우선시하는 정부 정책 차원에서의 피해 예방책이 절실하다.
특히 해충과 가뭄에 강하고 수확량이 많으며 지역 환경에 알맞은 종자를 교배하고 개발하는 것이 지금 당장 실시 돼야 한다.
성공적인 교배와 토착 종자의 대중 선전이 이루어 졌을 때, 종자의 부족과 적은 수확량에 대한 두려움은 사라질 것이다.
다양한 종자는 종자주권으로 이어지고, 이는 수입, 상업화된 종자에 대한 의존성을 약화시키는 동시에, 지역 환경에 최적인 토착 종자를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보장하며, 자연적으로 교배되어 선발된 종자에 대한 권리를 농민에게 부여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다양한 종자를 얻기 위한 농민들의 이 모든 노력 속에서, 여성의 역할은 반드시 인정되어야 하며 최고의 중요도를 부여받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