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지금이 쌀 관세화 개방 논의할 때인가

  • 입력 2009.05.24 17:45
  • 기자명 한국농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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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8일 서울 양재동 aT센터에서 열릴 예정이던, 쌀에 대한 조기 관세화 검토를 위해 마련된 토론회가 농민단체의 반발로 무산됐다. 이날 농어업선진화위원회 주관으로 ‘쌀 조기 관세화 실익 검토 토론회’ 개최 도중 전국농민회총연맹 소속 회원농민 30여명이 단상을 점거, 토론회를 더 이상 진행할 수 없게 되면서 무산됐다.

농민들은 이번 쌀 조기관세화 개방 공청회는 농민요구 수렴을 위한 것이 아닌 쌀 시장의 전면개방을 추진하려는 이명박 정부의 의도를 노골화하는 것이라며, 이날 공청회 무산 배경을 주장했다.

쌀 조기 관세화는 2004년 DDA(도하개발아젠다) 쌀 협상 특별조치를 통해 2014년까지 유예돼 있는 관세화 시기를 앞당겨 쌀 시장을 빨리 열자는 것이다.

농민들의 주장이 아니더라도, 지금이 쌀 조기 관세화 개방을 논의할 때인가. 국제적 식량전쟁시대, 27%에도 못미치는 식량자급률을 어떻게 끌어올릴 것인가를 먼저 고민하고, 실행에 옮기는 것이 우선돼야 하는 것이 아닌가.

물론 쌀 조기 관세화를 찬성하는 측의 주장대로 DDA협상 타결 전망이 어두워졌고, 의무수입물량인 최소시장접근(MMA)물량을 계속 늘려가야 하는 상황에서 국제 쌀값 및 환율 등을 고려할 때 쌀시장을 관세로 조기에 개방하는 것이 쌀 수입비용을 절감할 수 있어 유리할 수도 있다.

그러나 농민단체들의 지적대로 이같은 찬성측의 주장은 DDA 농업협상 추이와 급락하고 있는 원·달러 환율, 경기 침체로 인한 국제 곡물시장의 수급·가격 여건 변화 등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다.

더욱이 조기관세화를 단행할 경우 현 정부가 농민 등의 강력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동시다발적으로 진행 중인 각국과의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에서 쌀에 대한 특별대우를 요구하기 힘들 것이며, 그 결과는 농산물 시장 전면개방으로 나타날 것이다.

거듭 강조하거니와 지금은 쌀 시장 조기 개방을 논의할 때가 아니다. 쌀을 제외하면 5%에 불과한 식량자급률을 가진 우리나라가 그나마 마지막 남은 쌀 마저 개방해 버린다면, 이 나라 농업·농촌·농민은 붕괴될 것이며, 그것은 국민의 식량·기아문제로 귀결될 수도 있다.

미국과 유럽연합 등의 바이오에너지 생산 증가와 이상기후로 인한 세계적인 식량위기로 식량폭동이 일어난 나라가 있으며, 이에 따라 세계 각국은 자국의 식량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사실을 정녕 모르고 있는가.

전세계적인 식량위기 시대, 지금은 민관 합동기구라는 이름을 내세워 쌀 시장 개방을 공론화 할 것이 아니라 국가적 차원의 식량자급대책이 마련되고 실행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 당연히 안전한 식량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위한 기본적 준비태세를 갖출 때까지 쌀 완전개방 논의는 전면 유보되어야 하는 것이다.

절대적 이윤추구 논리가 지배하는 국제식량 환경에서 살아남고 식량주권을 지키는 유일한 길은 국가적 차원에서 식량자급의 토대를 구축하는 것이며, 그것은 곧 안정된 식량자급률 목표치를 법으로 정하는 것이다. 지난 정부는 2007년 농업·농촌기본법에 따른 ‘농업·농촌발전 기본계획’에 2015년도 식량자급률 목표치를 설정했다. 그러나 그 목표치가 지나치게 낮아 현실성이 없고, 그나마 강제력이 없는 데다, 예산 등을 이유로 지금까지도 실행되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지금이라도 국민적 토론과 합의를 통해 식량자급률 목표치를 높여 이를 법제화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 정부와 농민, 사회 각계각층이 함께 힘을 모아야 한다.

식량자급의 토대를 구축하는 궁극적 목표는 온 국민이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안전한 식량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며, 안전한 식량을 확보하는 것은 개인이나 특정사회집단이 해결할 수 없는 사회적 공동과제이기 때문이다. 우리 민족의 생명줄이 달린 쌀 시장 개방 공론화는 그 다음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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