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소유에 관대한 삶

  • 입력 2009.05.24 17:35
  • 기자명 한국농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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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복숭아 적과를 할 때였다. 그 날 우리 과수원에는 열 여섯명의 일꾼이 있었다. 우리는-두 가구가 과수원을 합쳐서 같이 운영하고 있다.- 일꾼을 두 팀으로 나누었다. 열명과 여섯명으로. 그 중 나는 열명을 이끌고 적과를 하였다.

그렇게 일을 하고 점심을 먹던 중, 하늘이 시커멓게 변하면서 비가 곧 올 듯 하였다. 그날 일기예보에 비가 예보되긴 했지만, 저녁 늦게부터 온다고 했기에 안심을 했건만, 오전 10시경부터 불안하더니 급기야 식사가 끝날 무렵부터 결국 부실 부실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일을 해야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을 하고 있던 중 다른 팀은 철수를 한다고 전화가 왔다. 일이 늦어질 것도 걱정이 되었지만 한편으로는 다행이란 생각을 했다. 일당 계산이 점심을 기준으로 되기 때문에 반품만 계산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점심을 먹고 나자 비가 그치고 말았다. 하늘을 보니 불안하기는 했지만 아주머니들이 일을 계속하자고 했다. 나로선 딱히 거부할 이유가 없었다. 그렇게 두시간 정도 일을 했을까 결국 비가 세차게 내리고 말았다.

아주머니들을 집에 모셔다 드리고 들어오는 길에 이장을 보는 형님댁에 들렸다. 그날 하루 우리 집일을 지켜보고 있던 형님은 “2시간이면 일인당 만원인데 열명이면 십만원 손해본거다. 그러게 내가 점심 먹고 철수하라고 했지, 그럼 반품 아냐.” “뭐! 오야지가 내일 한시간 더 해준다고 그러던데.

그럼 뭐 오만원 손해 보는 거니까 뭐 그 정도야” 그렇게 대꾸는 했지만, 내심 좀 언짢은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에라 내친김에 저녁까지 얻어먹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이런 생각이 났다.

초등학교 다닐 때 담임선생님이 “한국 사람들이 시간약속을 하도 안지켜서 코리안 타임이라는 말이 다 생겼다.”란 비아냥, 중학교땐 “시간은 금이다. 놀지말고 공부해라”, 고등학교때쯤“시간을 쪼개서 써야 한다. 한시를 그냥 보내선 안된다. 그래야 성공한다.” 란 말들이다.

70년대 아직 한국에 농경사회의 흔적이 남아있을 때 시간개념이 그렇게 정확했을까. 과연 시간은 돈으로 환산이 가능 한 것인가. 그리고 다른 사람의 시간을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인가.

그렇게 쓸 때 없는 생각이 꼬리를 무는데, 때마침 라디오에서 북미 인디언의 무소유에 대한 이야기가 흘러나온다. “인디언 추장의 말이 우리는 필요할 때만 소유합니다. 필요하지 않을 때는 그대로 두지요. 그럼 다른 이가 필요할 때가 생길 것입니다. 그럼 그이가 그 물건을 소유하겠지요.”

우리나라도 산업화가 되기 전에는 여유롭게 살지 않았던가. 일제시대때 영국기자가 한성을 거닐면서 누가 지배민족이고 누가 피지배민족인지 모르겠다는 글을 쓴 적이 있다고 한다. 일본인은 종종 걸음으로 바쁘게 움직이고 조선인은 여유롭게 거닐고 있는데 기인했다. 그만큼 우리민족은 시간과 소유 문제에 관대했던 것 같다.

특히 농사일에는 공동체로 움직이는 일이 많아서 도구도 공동의 소유가 많았었고, 네것 내것을 따지기보다는 우리 것이라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었던 것이다.  

물건을 빌리고 쓰는 것에 대해서 서로 관대했던 시절 시간도 여유롭던 시절, 그러던 것이 내 소유가 늘어나고 내 시간까지 돈으로 환산되면서 사람이 스스로 얽매이게 된 듯 하다.

조금은 여유 있게 살려고 조금은 욕심을 버리고 살려고 몸은 힘들어도 조금은 마음이 편하게 살려고 시골에 내려와 살면서 나 또한 어느새 욕심을 너무 챙기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손해보고 허허거릴 필요는 없지만 어쩔 수 없는 일에는 농사꾼 답게 여유롭게 살아야겠다.

박훈식 충북 괴산군 불정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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