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력시장 사람들 (1)

  • 입력 2009.05.18 08:24
  • 기자명 한국농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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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력시장에서 아주머니 네 분을 모시고 왔다. 작년까지 복숭아 적과를 해주던 자천 사람들은 올해부터 우리 밭으로 오지 못하게 되었다. 누구는 병원에 가 있고 누구는 산에 가 누워있다고, 그래서 올 봄부터는 남은 두세 명이 마을 일이나 다닌다며 대동댁은 벌써 한 달 전에 그렇게 말했었다.

그래서 일주일 전쯤에 몇 군데 인력시장에 가서 알아보았더니 복숭아 적과를 제대로 할 줄 아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가 않으니 지금부터라도 데려가서 일을 가르치라고 하는 것이었다. 참으로 난감한 노릇이었다. 올해는 워낙 결실이 많이 되어서 벌써부터 나뭇가지가 수양버들처럼 축축 늘어지고 있다.

혼자서 온종일 매달려도 큰 나무는 세 그루를 다 하지 못할 지경이다. 어머니는 집 뒤 밭 낮은 가지들을 두루 섭렵한 뒤에 어제부터 방안에서 몸져누우셨다. 해마다 이맘때면 혼자서 바빠 마음이 사나워지는 어머니라서 일을 하지 말라는 소리를 했다가는 잔소리만 바가지로 얻어먹곤 한다.

인력시장 품값은 사만 오천 원이라 점심값 오천 원에 참값을 보태면 보통의 문제가 아니다. 거기다가 왕복 택시비까지 있다. 처음 한 시간 쯤은 일 해놓은 것을 자주 들여다보며 입이 아프도록 했던 이야기를 다시 반복하여야만 했다. 그러나 한참이 지나면 다시 일은 엉망이 되고 만다.

오만 오천 원짜리가 일을 해보니 이만 원짜리밖에 되질 않는다.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 내 몸에 채찍을 가하는 것이다. 신명난 내 손은 물 찬 제비처럼 논다. 복숭아는 엄지손가락만큼 굵었고, 이런 일이라면 얼마든지 자신이 있다.

더군다나 비싼 일군들이 있어서 일이 지겨운 줄을 모른다. 등에서는 땀이 줄줄 흘러내리고 샅이 축축해진다. 그런데 일하는 분위기는 냉랭하다. 오십대 후반에서 육십대 중반인 네 명의 여자들은 서로가 초면이라서 그런지 입을 굳게 다물고 있다. 재미있는 얘기를 좀 해보라고 해도 아저씨가 좀 해보라며 도무지 마음의 문을 열지 않는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내가 자리를 피해 주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럭저럭 참 때도 가까워지고 있었다. 아무리 초면이라 해도 여자들이 이렇게까지 입을 다물고 있는 것은 밭주인 남자 탓인 것이다. 우스갯소리 한 마디 할 줄 모르는 주변머리 없는 남자가 자리를 피해 그녀들끼리 수다를 떨 기회를 줄 필요가 있었다.

오전 참으로 빵을 사기 위해 녹전 카페로 가는데 포도밭에서 중국매미가 발견되었다고 마을이 온통 난리법석을 떨고 있었다. 옛 동사무소 공터에 스무 명 가까운 사람들이 모여 걱정을 늘어놓는다. 뉴스를 통해서만 듣던 중국매미가 우리 마을까지 오게 된 여러 가지 경로가 여러 사람의 입을 통해서 흘러나왔다.

그 중에서 중국산 한약재를 통해 흘러왔다는 이야기에 많은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동네 어느 집 아들이 시내에서 중국산 한약 재료를 손질하고 그 찌꺼기를 모아 부모가 사는 집 앞 거름자리에 버려두곤 했는데, 그 근처 가죽나무에서 작년에 더러 중국매미가 보였다는 증언이 나오고 다시는 그것을 못 가져오게 해야 한다는 소리가 단호하고 결연하게 나왔다.

나무진을 빨아먹고 고사시키는 중국매미의 문제점은 살충제 살포로 쉽게 죽일 수는 있어도 이놈들이 날아다니기 때문에 공동방제를 하더라도 박멸이 안 된다고 한다. 그리고 보니 수입상들이 농민들에게 끼치는 폐해는 방법도 다양하다.

“중기야, 니 지금 집에 가서 인터넷에 한번 들어가 봐라.”

너무 바빠 등에서 진땀이 쏟아지는 판에 참 한가한 타령이다. 그러나 여기 모인 동네사람들 중에서 인터넷이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다. 하지만 중국매미 때문에 이 귀중한 시간을 허비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벌써 오전 열 시가 지났다. 나는 애마를 몰아 팽하니 달아난다.

“요새 누가 빵으로 참을 묵는기요. 빵 안 팔린 지가 벌써 몇 해나 되었구마.”

세 마을, 세 군데 가게 어디에도 빵은 팔지 않았다. 그리고 보니 나도 빵과 우유로 참을 댄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오전에는 잔치국수였고 오후에는 수박이나 통닭, 백설기로 대신했던 기억이 난다. 달리 방법이 없는 나는 포도밭에서 바쁜 용석이에게 사정하여 시내로 내보내고 복숭아밭으로 가니 분위기가 냉랭하게 얼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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