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도전 MB농정 제동 걸어야

  • 입력 2009.05.04 17:21
  • 기자명 장경호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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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농정이 폭주하고 있다. 연초에는 소위 농업의 경쟁력 강화 방안을 내놓은데 이어 뉴질랜드 방문 중에는 고강도 농업구조조정을 주문하더니 드디어 최근에는 MB농정의 완결판이라 할 수 있는 소위 농어업선진화방안이란 것을 내놓기에 이르렀다.

밀어붙이는 농어업선진화방안

지난 3월23일에 구성되어 활동 중인 농어업선진화위원회는 MB정권이 농어업선진화방안을 밀어붙이는데 필요한 절차와 명분을 획득하는데 이용될 것이라는 당초의 우려가 점차 현실로 드러나고 있다. 게다가 속도전 정부의 명성에 걸맞게 절차와 명분을 획득하는 것도 졸속으로 불과 두세달 동안 분야별로 서너번의 회의를 거쳐 6월말까지 일사천리로 끝내겠다고 한다.

농어업선진화방안의 목표와 방향 그리고 기본 골격과 핵심 내용이 주어진 상태에서 농어업선진화위원회를 통한 의견수렴은 절차에 불과할 뿐이며, 수용가능한 의견수렴은 지엽말단적인 사안들에 국한된다. 집을 다 지어놓고 벽지를 무슨 색으로 할 것인지, 문을 미닫이로 할 것인지 아니면 여닫이로 할 것인지를 논의하는 것과 같다.

농정의 직접 이해당사자인 농민들은 집을 짓기 전에 용적률이나 건폐율을 얼마로 할 것인지, 구조물을 벽돌이나 나무 혹은 황토 가운데 무엇으로 할 것인지, 집에 필요한 전기시설이나 상하수도시설 그리고 방수설비 등과 같은 것을 먼저 이야기해야 한다고 하지만 MB정권은 그런 것들은 자기가 이미 다 결정했으니 벽지색깔이나 문짝형태 같은 것만 의견을 달라는 것이다.

그런데 선진화라고 이름 붙인 화려한 치장에도 불구하고 그 내용을 찬찬히 뜯어보면 후진화 방안으로 착각할 정도로 흘러간 옛 노래를 반복하고 있다. YS정권때 화려하게 등장했다가 오래되지 않아 실패한 농업정책의 대명사로 낙인찍힌 농업경쟁력 강화라는 지겨운 레퍼토리가 선진화라는 이름으로 화려하게 부활했다.

농산물수출국에 비해 턱없이 좁은 경지면적과 폭등하는 땅값 때문에 농업경쟁력 위주의 정책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교훈을 망각한 것일까?

YS정권때 가족단위 전업농을 경쟁력의 주체로 정하고 온갖 정책적 지원과 혜택을 몰아주었지만 농업경쟁력 확보와는 정반대로 농업해체, 농촌붕괴, 농민분해라는 작금의 결과를 낳았다. 식량자급률은 25∼27% 수준으로 OECD 국가 가운데 최하위권에 속하고, 부족한 먹거리를 수입하기 위해 연간 100억불 이상의 농산물 무역적자만 쌓이게 되었다.

MB농정이 기업농을 경쟁력의 주체로 정하고 정책금융 및 제도지원을 집중한다고 해서 이러한 문제들이 해결되기는커녕 오히려 더욱 심각해 질 것이다. 이윤을 목적으로 해서 돈벌이 농업에만 관심이 있는 기업농은 실현 불가능한 국제경쟁력에 매달리기보다는 국내에 쏟아지는 수입농산물의 틈새시장을 노리고 덤벼들 것이다.

틈새시장에서 돈벌이가 되는 몇몇 특수품목이나 기능성 작물 및 부유층을 타깃으로 하는 유기농업 등에서 극소수의 기업농이 성공사례로 화려한 조명을 받을지 모르겠지만 현재 중소규모의 가족농이 담당하고 있는 대부분의 농업분야는 살아남기 어려울 것이다.

그 결과로 농업과 농촌 그리고 농민은 더 이상 회생이 불가능한 식물인간 상태로 방치된 채 죽을 날만 기다리게 될 것이다. 식량자급률은 홍콩, 싱가포르 등 일부 도시국가를 제외하고는 세계 최하위권으로 전락할 것이다. 만성적이고 구조적인 세계식량위기와 국제곡물가격 폭등의 직격탄을 맞아 엥겔계수가 후진국형으로 퇴보할 수도 있다.

절대 다수 서민과 빈곤층은 비싼 먹거리에 한숨을 쉬게 될 것이며, 대다수 국민들은 먹거리 안전에 있어서 항상적이고 심각한 위협 속에 살아가야 할지도 모른다. 먹거리를 전적으로 수입농산물에 의존하다 보면 농산물 무역적자는 연간 200억불 이상이 될 수도 있고, 수출해서 벌어들인 외화의 대부분을 식량수입에 써야 할 수도 있다.

만약 브레이크 없는 기관차처럼 폭주하는 MB농정에 제동을 걸지 않는다면 위와 같은 비관적 예상은 현실로 나타날 것이다. 농어업선진화위원회는 물론 MB정권 내부에서 누군가 제동을 걸어줄 것으로 기대하기는 어렵다. 농정의 직접적인 이해당사자로서 농민들은 시민사회 나아가 국민들과 연대함으로써 MB정권 외부에서 브레이크를 걸 수밖에 없다.

국민농업 태동시키는 것이 정답

만약 국민들이 식량주권이나 다원적 기능을 포기해야 한다고 결정하면 MB농정을 그대로 밀고 나가라. 그러나 안전한 먹거리의 생산, 국민식량의 안정적인 공급, 농업·농촌의 다원적 기능 등을 유지해야 한다고 결정한다면 MB농정과 농어업선진화방안은 그 즉시 버려져야 할 것이다.

국민들이 직접 농업과 농촌의 운명을 결정하는 농정을 제대로 세우기 위해서는 속도전을 위한 명분축적용의 농어업선진화위원회 대신에 진정한 의미에서의 사회적 합의기구를 구성하여 비록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충분한 공론과정을 거쳐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농업’, 즉 국민농업을 태동시키는 것이 정답이다.

장경호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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