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주의 감이야기

  • 입력 2009.04.20 08:38
  • 기자명 한국농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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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는 새 잎이 날 것 같지 않던 고목 감나무에 연둣빛 물감으로 점찍어 놓은 듯 아기손톱만한 새 순이 볼록볼록 올라옵니다. 어디서 그런 힘이 나오는 걸까요? 새삼 신기하고 놀랍기만 합니다.

이 곳 상주에는 감나무가 참 많습니다. 전국 곶감 생산량의 60%이상을 차지하고 있고, 생산면적으로는 전국 1위인 고장이니 들판 여기저기에 감나무들이 많이 서 있습니다.

감나무는 수형이 참 멋집니다. 반들반들 윤기 나는 나뭇잎도 그림에 나오는 그대로지요. 지금처럼 새 순이 막 돋는 봄에는 고목 그 시커먼 가지에서 돋는 새잎이 너무 예쁘고, 여름날의 감나무는 땡볕에서 일하는 농부들의 휴식처입니다.

▲ 김정열 경북 상주시 외서면

가을에 달린 붉은 감은 행복입니다. 파아랗고 깊은 가을 하늘 속에 당당히 달려있는 붉은 감은 자식과 같은 기쁨입니다. 그 감을 깎아서 제사상에도 올리고, 나누어 먹기도 하고, 장에 내다 팔기도 하니까요. 겨울의 감나무는 한 장의 예술사진이라고 하면 될까요? 앙상한 가지 꼭대기에 남겨둔 홍시는 날아다니는 까치들의 밥입니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는 고개만 돌리면 있는 감나무가 신기하기만 했습니다. 초 여름날 뚝뚝 떨어지는 하얀 감꽃을 주워 먹기도 하고 아이들 목에 걸어 주기도 했습니다. 꽃자리에 열매가 맺혀 감이 동글동글해지면 다 붉어지지 못하고 떨어지는 감들이 많습니다.

여름에 새파란 감은 아까워서 주워다가 감물을 들여 보기도 합니다. 추석이 다가오면 떨어지는 감도 겉에는 아직 푸르지만 속에는 노랗게 익기 시작합니다. 감 깎는 철에는 이 집 저 집 기웃거리면 물러서 깎지 못하는 감들을 내어줍니다. 그 때 먹었던 홍시는 참 맛있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그런 것이 별로 귀하지가 않으니 아까운 것도 없습니다.

오뉴월 감잎이 보드랍게 햇볕에 찰랑이면 ‘누가 감잎차라도 만들면 좋을텐데’ 라는 생각만 안타까이 하고 가을에 터질 것처럼 잘 익은 홍시도 이리저리 굴러다니는걸 보면 ‘감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참 귀한건데’ 라는 생각만 합니다.

상주의 가을은 곶감 만들기와 함께 찾아옵니다. 24절기 중 한로가 지나면 보통 감 깎는 작업을 시작하는데 이때가 되면 농사짓는 사람들이 아니더라도 감 한 개 들 만한 힘이 있는   사람들은 모두 동원되기 때문에 시내가 텅 빌 정도입니다.

동네 어른들한테 들어보면 예전에는 감 깎는 품값은 따로 돈으로 주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손으로 감을 깎아 곶감을 만들던 시절이라 감을  깎고 난 다음에 남은 감 껍데기를 가져가는 것으로 대신했다고 합니다. 먹을거리가 귀했던 시절이라 겨우내 단지 속에 꼭꼭 눌러놓았던 감껍데기는 참 맛있었다고 합니다.

감 중에서도 둥시감을 최고로 쳐 주는데 둥시감 깎을 때는 아무나 부르지 않고 감 잘 깎는 사람만 골라서 불렀다고 합니다. 워낙 귀한 감이라 껍데기로 많이 나갈까봐 껍질만 얇게 깎는 사람만 필요했던 것이지요. 그러나 지금은 모든 것이 흔해서 감껍질은 밭에 갔다 버리고 둥시감은 지천에 널렸습니다.

저희 집은 곶감을 집에서 먹을려고 조금 깎는데 아이들하고 같이 할 수 있는 일이라서 참 재미있습니다. 중학교에 다니는 제 딸은 저보다도 감을 더 잘 깎을 정도입니다. 보통 요즘은 기계로 다 하지만 저희 집처럼 조금 하는 집은 칼로 깎습니다.

아이들하고 옹기종기 앉아 감을 깎다보면 새파란 밤이 깊어갑니다. 곶감은 조금 덜 마른상태에서 상품으로 파는 반건시, 완전히 마른상태에서 나가는 건시가  있습니다. 곶감이 제일 맛있을 때는 줄에 주렁주렁 매달려 햇볕에 꾸덕꾸덕 말라갈 때 나가면서 하나, 들어오면서 하나, 다 말랐나 맛 보면서 하나씩 빼 먹을 때가 제일 맛있습니다. 

크리스마스 무렵 부터는 곶감을 사려는 사람, 팔려는 사람으로 또 한 번 북적거립니다. 곶감값이 좋아서 돈이 되면 좋고 안 되어도 이 북적거림이 또 다시 내년에도 감을 깎게 하는 힘이 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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