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억원대 부채 굴레 벗고 이제 ‘사과 전도사’로

농업회생지원제도로 새 삶 사는 전남 장성군 북이면 서 복 현 씨

  • 입력 2009.04.13 11:45
  • 기자명 연승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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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농가부채로 인해 농지를 경매로 넘기고 도시로 야반도주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 농민의 유일한 생산수단인 농지를 팔아 빚잔치를 하면 농민은 농사지을 땅이 없어 도시로 떠나야 했다.

2007년말 현재 농가부채 가구당 평균 2천9백만원대. 30∼40대의 젊은 농민일수록 빚의 규모는 커져 1억원을 훌쩍 넘는다. 대통령선거 때마다 농가부채해결이 주요한 공약으로 나오지만 한 번도 제대로 해결된 적이 없다.

2005년 도입된 경영회생지원제도는 그나마 농가부채에서 숨통을 돌릴 수 있는 제도다. 이는 농지를 농지은행이 매입해 농가부채를 해결하고 농지은행에서 다시 매입된 농지를 임대해 농사를 지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농어촌공사의 경영회생지원제도를 통해 경영회생에 성공한 전남 장성군 북이면 사과 전도사 서복현 씨. 한 때 10억원 상당의 부채로 인해 농사를 포기할 지경이었으나, 지금은 경영회생을 통해 2억원대 이상의 매출을 올리고 있는 서 씨의 성공사례를 취재했다.

▲ 경영회생지원제도로 다시 새 삶을 다시 시작한 서복현 씨.

 

올해로 25년째 사과농사를 짓고 있는 서 씨는 사과에 울고 사과에 웃어 왔다. 서 씨의 부채는 무리한 규모 확대에서 온 부채보다는 자연재해로 인해 발생한 소득감소가 원인이었다.

서 씨가 처음 사과농사를 시작한 것은 1983년이다. 당시 자영업을 하고 있던 그가 우연한 기회에 과수원을 인수하게 된 것이 계기였다. 당시 같은 교회에 다니던 신도 중 사과농사와 한우를 키우다 한우가격의 폭락으로 부채를 감당하지 못하고 과수원을 팔게 되자 이를 인수하게 된 것이다.

첫해 사과농사는 풍작이었다고 회고 한다. 그러나 그 이듬해 응애가 돌자 주위 사람들에게 자문을 얻어 농약을 쳤지만 농약 정량을 초과 살포해 사과 나뭇잎이 말라 버리게 돼 수확량이 급감했다. 이로 인해 3년간 제대로 농사를 짓지 못했다.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서 씨는 책을 읽고 교육을 받으러 다녔다.

잇따른 자연 재해로 빚 눈덩이

서 씨는 “한번 실패하고 나서, 영농 교육에도 참석하고, 여기저기 다니면서 많이 배웠다”며 이렇게 배운 지식을 살려 다시 사과농사에 도전해 재기에 성공했다. 사과농사가 잘 되자 규모도 6천평으로 늘렸고 사과수확도 늘었다.

그런 그를 덮친 건 우박이었다. 수확을 며칠 앞두고 엄지손가락만한 우박이 과수원을 휩쓸고 지나갔다. 사과에 생긴 상처와 낙과로 인해 60%이상의 수확량이 감소했다. 이때까지는 버틸만했다. 우박 피해를 딛고 나니 3년 정도 농사를 잘 지어 전남 광주시에 집까지 살 여유가 생겼다. 이런 기쁨도 잠시 1990년 그는 태풍으로 인해 서 씨는 또다시 좌절을 겪어야 했다.

서 씨는 “태풍이 불어 홍로 접목한 가지가 다 떨어져 나가고, 나무가 뿌리째 뽑혀 나갔어요”라며 당시를 회상한다. 그는 “태풍 피해로 인해 수입은 적었지만 빚은 없었다”고 말했다.

서 씨는 뽑힌 나무와 부러진 가지 등을 정리하고 기존 사과나무 사이에 다시 묘목을 심었다. 그러나 뿌리가 한 번 흔들린 사과나무는 열매가 제대로 열리지 않았고, 묘목도 그늘에 가려 성장이 더디어 수지타산이 맞지 않았다.

서 씨는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과수원을 흙으로 2m 정도 평탄작업을 한 뒤 녹차와 복숭아를 심었다. 그러나 뜻대로 되지 않아 녹차와 복숭아를 다 베어버리고 다시 사과나무를 심었다. 부채는 이때부터 생기기 시작했다. 농협에서 대출을 받고 급한 데로 사채를 쓰기 시작한 것이다.

나무를 새로 심고 자라는 기간까지 공백기가 생기자 서 씨는 돈을 벌기 위해 산지유통업에 뛰어 들었다. 처음에는 현상유지를 하던 서씨가 2000년 대형할인마트에 납품을 하기 위해 대량으로 포도, 배, 사과 등을 사들인 것이 화근이 됐다.

서 씨는 “당시 비가 40일 정도 내리는 바람에 과일가격이 급락하고, 보관하던 과일도 문제가 생겨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고 말했다.

금융기관 대출금 이제 거의 상환

서 씨는 당시 10억원에 가까운 빚을 지게 됐다. 부채를 안고 농사를 지어도 연평균 6천만원에 가까운 이자 내기도 버거웠다. 좌절과 절망을 거듭하던 서 씨에게 숨통을 터준 것은 바로 한국농어촌공사에서 시행하고 있는 경영회생지원제도였다.

농업전문지에서 우연히 알게 돼 경영회생지원제도에 신청을 한 그는 농어촌공사 담당직원과 면담을 통해 부채를 해결할 방법을 찾았다. 서 씨가 가지고 있던 과수원 6천평을 감정한 결과 농지와 과수를 합쳐 6억원이 넘었다. 농어촌공사가 매입한 서 씨의 과수원은 다시 임대해 농사를 지을 수 있었다. 농협과 신협 등 금융기관에서 대출받은 금액은 거의 상환해 수천만원의 이자와 부채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이 제도가 아니었으면, 과수원이 경매에 넘어가 처분되면 다시 농사지을 생각은 하지도 못했을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또한 “농어촌공사로 인해 부채를 해결하고 다시 농사를 지을 수 있어 경영회생이 가능했다”고 평가했다.

이런 과정 속에서 서 씨는 사과 전문가가 됐다. 실패와 시행착오를 겪으며 20년이 넘게 꾸준히 사과농사를 지은 결과 그는 명품사과를 생산하는 전문 사과농사꾼이 된 것이다.

그는 우선 친환경농업으로 전환했다. 농약과 화학비료를 주는 대신 농약을 적게 사용하고 퇴비를 직접 만들어 시비했다. 2005년 그는 친환경 저농약 사과로 인증을 받았고 2007년에는 GAP(안전농산물) 인증도 받았다. 그는 자신만의 노하우로 퇴비를 만들고 있지만 그 비법을 전할 수는 없다고 했다. 인근 축사에서 쇠똥을 가져다 쌀겨와 함께 퇴비를 만드는 아주 평범하지만 이 속에 몇가지 첨가되는 것이 있다고 했다. 그의 퇴비에는 게르마늄 등의 성분이 많아 화학비료보다 월등히 좋다고 말했다.

이런 과정을 거쳐 그는 빚의 굴레에서 벗어났다. 농사규모도 경영회생지원을 받은 후 1만6천평으로 늘어났다. 서울에 취직한 둘째 아들도 불러 농업후계자로 지정받아 같이 농사를 짓고 있다.

농어촌공사 경영컨설팅도 지원 받아

서 씨는 경영회생지원 후 사과농사를 짓기 위한 공부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각종 관련 서적과 연구소를 찾아다니며 공부를 했다. 또한 전남대학교 최고경영자 과정을 이수해 경영자로의 자질도 갖추었다. 전남대에서 과수를 연구하고 있는 김월수 교수는 그의 사과를 최고로 인정했다고 한다. 또한 농어촌공사를 통해 경영컨설팅도 지원받았다.

서 씨는 “사과농사로 승부를 걸었다”며 “2년전부터는 명품을 만들기 위해 기능성사과를 재배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공판장 등 일반 판매보다 소비자와 직거래로 판매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과 맛이 좋아 소비자들에게 입소문이 나 직거래로 많이 팔리고 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실제 취재 중에도 사과를 주문하는 전화를 받았으며, 직접 사과 당도를 측정한 결과 16브릭스가 나왔으며, 서 씨는 신선도를 유지하기 위해 ‘스마트 프레쉬’를 사용하고 있다. 또한 저온창고도 2동을 세워 0도를 유지해 저장을 하고 있다.

그는 현재의 농사규모에서 4천평 정도 확대해 2만평의 과수원을 운영하고 또 가공산업에도 진출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서 씨가 과수원 주변에 감나무를 심어 감식초와 사과식초를 만들어 판매를 시작했으며,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최근에는 사과와인을 연구하고 있다.

서 씨는 경영회생지원제도에 대해 “부채에 시달리는 농민에게는 숨통을 터주지만, 임대기간이 5년, 최대 연장해서 3년까지 할 수 있어 이를 늘릴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임대기간이 길어야 안정적으로 경영을 유지할 수 있고 농지도 환매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농지를 환매하는 시점에서 다시 감정평가를 통해 농지가격이 상승하게 되면 농지환매가 어려울 수도 있다는 우려도 했다.

최고 사과 생산 연매출 2억원 달성

서 씨는 경영회생지원제도로 인해 숨통이 텄다고 말할 정도로 절망의 삶에서 벗어났다. 자신이 성공하자 인근 동네 사람에게도 소개해 경영회생을 받게 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자신감 속에서 장성군에서 사과전도사 역할을 하고 있다. 그의 권유로 장성군에서 사과를 새로 재배하기 시작한 사람들이 생겨났다. 서 씨는 자신이 지금까지 수많은 실패와 시행착오로 만들어온 기술이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전수해 더 맛있는 사과를 생산하게 하고 있다.

서 씨는 경영회생지원을 통해 금융기관에서 대출받은 부채는 전액 상환했다. 6천만원 씩 내던 이자는 연간 5백만원으로 줄었다. 현재 그는 1만6천평의 과수원에서 약 5천주의 사과나무를 재배하고 있다. 2007년에 1억8천만원의 매출을 올렸으며 지난해에는 2억원정도의 매출을 예상하고 있다. 서 씨가 원하는 대로 2만평 규모로 늘리면 앞으로 4∼5년 뒤에는 순소득이 4억원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서 씨는 크게 자랑거리도 아니어서 취재에 응하지 않을 생각이었다고 기자에게 솔직히 털어놓았다. 그러나 서 씨는 자신의 사례를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 농가부채에 힘들어하는 농민들에게 하나의 길을 보여 주워야겠다는 생가에 취재에 응했다고 말했다.

수많은 시행착오와 실패, 그리고 좌절을 딛고 당당히 최고의 사과농사꾼이 되어가고 있는 서 씨의 모습에서 한국농업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엿볼 수 있었다.

■ 경영회생지원제도란

경영위기 농가 농지 매입후 재임대계속 농사 가능… 경영안정 큰 도움관련예산 확대 등 해결 과제도 많아경영회생지원제도는 부채 증가 등으로 경영 위기에 몰린 농가의 농지를 농지은행이 매입해 농지매각 대금으로 부채상환 후 농가의 경영을 정상화하는 제도이다.

농지은행이 매입한 농지를 매각한 농가가 5년간 임대(연장 3년)하고 임대 기간 중 다시 농지를 매입할 수 있도록 보장하고 있다.

경영회생지원제도는 현행 원리금 상환유예 및 금리 인하 등의 금융위주의 지원방식은 기존채무를 저리로 대환하는 데에 중점을 두고 있고, 회생이 가능하더라도 채무가 연체 중인 경우는 자금지원이 불가하기 때문에 부채농가의 실질적인 회생에 한계가 있어 왔다.

특히 농지가 담보로 설정된 경우 경매 등을 통하지 않는 한 매도에 어려움이 있고 경매시 유찰 되거나 저가에 낙찰돼 재산상의 손실이 많았다.

농지은행의 경영회생지원제도는 이런 단점을 보완해 농가의 농지를 감정평가해 매입해 다시 농민들이 농사를 지을 수 있고 부채 이자의 부담을 적게 해 경영을 정상화하고 있어 부채농가들에게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지원대상자는 농업재해로 최근 3년 중 1년 이상 피해율이 50% 이상인 농업인, 금융기관 또는 공공기관에 대한 채무액이 3천만원 이상인 농업인이다.

농지임대는 5년이며 경영실태평가 후 3년이내에 연장이 가능하다. 임대료는 매입가격의 1% 환매시에는 감정평가 금액으로 환매가격을 책정한다.

한국농어촌공사에 따르면 부채나 재해 등으로 경영회생지원사업을 신청한 농업인은 2006년 378명, 2007년 671명, 2008년 842명 등 3년간 1,891명이며 매도 신청한 농지는 2,735ha, 5,005억원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실제로 지원받은 농업인은 신청자의 59%인 1,117명, 매입한 농지는 1,636ha, 2,570억원에 불과해 예산확대가 시급한 것으로 나타났다.

경영위기 사유는 부채가 92%, 재해는 8%였으며 이들이 안고 있는 부채는 평균 2억3천만원이었다. 특히 신청자의 40%가 50세 미만이라는 점에서 경영회생지원 사업 확대를 통해 젊은 농업인들이 농업활동을 계속 할 수 있는 재정적 뒷받침이 절실한 것으로 보인다.

한편 사업지원을 받은 187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85.6%의 농업인이 만족한다고 응답했으며 97.9%는 지속적 사업추진과 확대를 원한다고 답했다.

그러나 환매시 농지가격이 상승한 경우 그 부담을 전적으로 농업인이 부담해야 하는 점, 임차 및 환매기간이 5년으로 짧은 점 등이 보완해야 될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이와 관련 농어촌공사는 임대기간 연장과 환매시 농지가격에 대한 이자율만 부담하는 방안을 마련해 올해 안에 법개정을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김준채 농지관리팀장은 “임대기간을 10년으로 연장하고 환매시 인상된 농지가격에 대한 농업인의 부담을 줄이는 내용을 골자로 오는 6월에 법개정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연승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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