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지맞은 장사

  • 입력 2009.04.06 08:39
  • 기자명 한국농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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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잔치는 끝났다... 아니다 내 인생의 잔치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나이 서른에 나름의 당찬 포부를 안고 결혼이라는 것을 통해 농촌으로 회귀-고향이 농촌-한 내 삶을 돌아봐야 할 시기가 된 것 같다. 사실 거창하게 이야기해서 지난 시간을 돌아보는 것이지 작년 내 자신의 모습도 평가하지 못하고 그대로 반복되는 하루 하루로 몇 개월을 지내온 게 사실이다.

왜 이렇게 내 자신을 되돌아보고, 새로운 희망을 갖는 것이 쉬이 내키지 않는지 또 어디서부터 곪아있고, 칼을 대야하는지 두렵기만 하다. 어디서 희망을 찾아야 하는지 답답하게만 느껴지는게 진짜 이유일 것이다.

▲ 김점석 씨

하루 24시간 종종걸음 하루 일과를 체크해가며 일하면서도 즐거웠는데, 요즘은 도통 신나는 일이 없다. 신랑과 나 우리 둘 다 남들 보기에 뜨내기 같지만 몇 년 고생하면 나름대로 농촌에 정착된 삶을 살겠지 하고, 젊다는 것 하나 믿고 빚으로 시작한 축산, 그리고 계속되는 어려움… 그것으로 신랑과 나는 여전히 뜨내기다. 신랑은 농업노동자-타인의 농장에서 월급을 받고 일하고 있어 우리끼리 부르는 말-로 나 또한 월급쟁이생활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하루하루 무척이나 무미건조하다. 목표라고는 이자 밀리지 않고 내는 것, 밀리면 부도니까, 또 더 이상 빚내지 않고 사는 것 밖에 없다. 그러니 하루 일과가 얼마나 낙이 있고, 한달인들 일년인들 재미가 있을까…. 모두들 어렵다고만 하는데… 우리능력으로 얼마나 버틸까 ‘곧 회복되겠지’ 하고 믿고 싶을 뿐이다.

그런데 요즘은 정신없이 바쁘다. 아직 농번기도 아닌데 무슨 바쁜 일이 있는지 궁금해 할 텐데, 요즘은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고 살면 안 된다는 생각을 시시각각 하게 된다.

그동안의 이기적-나 사는 것만, 나 살 궁리만 했던 삶-인 고민을 다른 곳으로 돌려 모두가 행복한 인생을 살도록 작은 일이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급반전한 이유다.

‘빚 상환이 좀 늦어지면 어때 부도내고 갈 것도 아닌데 우리처럼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이 부도나면 나라인들 멀쩡하겠어…무슨 난리가 나도 나겠지…’ 이렇게 맘먹으니 세상이 달라 보인다. 여태 왜 그렇게 숨 막히게 살았는지 안타깝기까지 하다.

남들이 들으면 비웃을지 몰라도 그렇게 내 자신을 어여삐 여기기로 했다. 또 이기적인 생각에서 과감하게 벗어나기로 했다. 지난 5년 동안 내게는 무거운 빚 말고도 귀한 인연이 많으니까…. 이 모든 생각이 피와 땀으로 일궈진 시 여성농민회 조직의 사무국장을 맡고나서부터 얻게 된 행복이다.

시청으로 기술센터로 각 종 회의들… 쏟아지는 일정 속에서 정신을 차리지 못할 정도로 바빠졌다. 그러면서 동시에 고민도 조금은 이타적인 고민으로 바뀌었다. 평생을 ‘여성농민이어서 정말 정말 행복하다’라고 말하며 살아가는 분들이 하나둘씩 늘어나는 것이 내 목표다. 그 원대한 꿈을 꾸자니 쏟아지는 일정도 일정이거니와 고민이 이것저것 정신 없이 뒤죽박죽이다. 아직은 말이다.

07년에 만들 때 기자회견까지 성대히 했던 ‘여성농업인 육성 지원조례’를 바탕으로 여성농민들의 행복한 삶을 책임지는 사업도 하고, 미조직된 면단위 여성농민회도 만들고, 여성농민회 언니들 경제적 어려움으로 흩어지지 않고 한곳에 모여 같이 즐겁게 사업하고 싶고, 지역 먹을거리 운동도, 토종종자를 지켜온 여성농민들과 행복하게 농사짓고… 이렇게 되려면 더 행복하게 바빠야 할 것 같다.

‘농사만 지으면서도 행복하고 싶다.’ 몇 년 전 경제적 어려움으로 식당일을 나선 여성농민 언니의 말이 새삼 떠오른다. 나는 여성농민회 만나서 인생이 즐겁게 바빠졌으니 수지맞은 장사하고 있는데, 나의 이런 고민과 활동은 우리 옆집 오이농사 짓는 언니의 행복에 얼마만큼 플러스가 되었을까?

며칠째 회의 쫓아다니면서 축사에 얼굴한번 비추지 못해 신랑에게 좀 미안한 마음이 드는데 분명 내 행복이 신랑에게도 행복이리라 믿어 의심치 않으며, 오늘 밤에는 그동안 연락 못했던 회원언니들에게 문자메시지라도 한 통 날리려 맘먹는다.

<김점석 전남 순천시 낙안면 검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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