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 문제입니다

  • 입력 2009.03.23 08:15
  • 기자명 한국농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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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야구 월드컵에서 일본을 보기 좋게 두 번이나 이겼습니다.(콜드게임으로 질 때는 거의 세상이 끝나는 줄 알았습니다만.) 지난 대회 때 일본 간판타자 이치로는 “한국은 앞으로 30년 동안은 일본을 이길 수 없다”는 말로 온 국민을 분노에 떨게 하다가(분노까지야 뭐) 결국은 웃음거리가 되었습니다. 네티즌들은 이치로를 ‘입치료’라고 불렀지요.  한 번 붙어보고 나서나 말을 하든지, 참 그 놈의 입이 불쌍합니다.

말 실수야 정치인들 단골이지만, 우리의 대통령께서는 뉴질랜드에서 ‘속까지 빨간 사과’를 보고 너무나 깊은 감명을 받으셨습니다. 그런 관계로 대뜸 “대한민국의 농업은 너무 보조에만 의존해 있어서 경쟁력이 늘지 않는다.”는 ‘속까지 빨간 사과’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말씀을 하셨고 농민들은 분노했습니다.(이건 진짜 분노였습니다.)

▲ 최용혁 충남 서천군

차라리 “한국의 농민들도 ‘속까지 빨간 사과’를 하루 빨리 만들도록 하라”고 지시하셨다면 우리는 고급 코미디에 대한 예우로 “역시 대통령의 유머 감각은 세계화가 벌써 다 되었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만약 아무 말도 하지 않았더라면 국제 순방 중 ‘아주 많은 일을 하고 오셨구나’ 하고 말았을 것입니다.(우리에겐 어려운 ‘국제 순방’같은 일에 대해서는 대우를 해 줘야 합니다.) 그 놈의 말이 문제입니다.

며칠 전 동네 형님과 술 한 잔 하다가 고등학교 입학하는 아이 컴퓨터를 사 준다는 말을 듣고는 “제가 잘 아는 친구 중에 컴퓨터를 주문해서 조립하는 친구가 있어요. 그 친구 통하면 싸게 살 수 있을 꺼에요. 제가 알아볼게요” 했습니다.

술 먹고 한 결의였지요. 다음 날 보니 형님은 ‘좀 못 미더운데… 그래도 말한 놈 생각해서’ 하는 눈칩니다. 말했던 친구는 가만 둬도 바쁜 친구였는데 과외일 까지 부탁하게 생겼습니다. 누가 시키지도 않은 일인데 말한 책임지랴, 바쁜 친구한테 부탁하랴, 여러 사람 귀찮게 하고 눈치 보이는 일을 억지로 하고야 말았습니다. 역시 그 놈의 말이 문제입니다.(특히 술 먹고 사기충천해서 한 말!)

“땅을 사랑한다.”는 민망한 표현을 하지 않더라도 땅에서 생활과 경제와 철학을 얻는 농민이야말로 천하지대본입니다. 땅에서 구하기 때문에 천하지대본입니다. 갑자기 웬 주장이냐구요?

대통령도, 정부도, 정치도, 농민 운동도 입 딱 닫고 땅에서 구하는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만날 똥값이고 앞으로도 똥값일 예정인 농산물 가격도 말 많고 탈 많은 시장에서 정할 것이 아니라 땅에서 정했으면 좋겠다는 상상도 해 봅니다.(상상이니까 뭐)

(말로는)땅은 말없이 정직하다고들 하지 않습니까! 막힌 용·배수로를 파고 논둑을 손보느라 혼자 삽질하다보면 입에서 나오는 소리라고는 ‘에휴∼’하는 한숨 소리와 ‘끙∼’하는 똥누는 소리뿐입니다.

말이 미치도록 그리울 때입니다. 굳이 무슨 말을 하고 싶다기 보다는 그냥 개소리, 잡 소리할 친구들이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알고 보면 개소리인데 개소리가 아닌 척 하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이지, 개소리인 줄 알고 하는 개소리는 괜찮겠지요. 잡소리인지, 잡소리가 아닌지 눈빛만 봐도 알 수 있는 농사 친구 하나가 그립습니다.

최용혁 충남 서천군 삼성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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