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팡질팡 진전없는 축산정책

  • 입력 2009.03.23 08:13
  • 기자명 이승호 축산관련단체협의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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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같으면 축산업계가 한참이나 술렁일 듯한 이슈가 요즘은 다발로 터져 나온다. 새정부 출범 직후부터 책임있는 자들에게서 FTA 통상 협상 자세는 말 할 것도 없고, 정부의 축산국 폐지 움직임, 축발기금의 존폐논란, 농협개혁과 관련하여 축산경제의 기능축소, 의제매앱세액 공제제도 폐지와 같은 축산업을 경시하는 대책들이 줄을 이었다.

진정성 없는 기업논리 안될말

특히 한미 FTA 문제에 있어서는 선대책 후비준 원칙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해서든 비준동의안을 강행하겠다는 방침이다.

최근에는 축산업의 경쟁력제고라는 구실로 대기업의 축산업 진출 허용이나 보조금의 철폐를 강조한 점은 앞으로 정부가 축산업을 어떻게 이끌어나갈 것인지를 시사하고 있어 매우 걱정이 앞선다.

미운아이 떡 하나 더주는 격이라지만 축산업의 경쟁력을 위한답시고 내놓는 대책들도 하나같이 답답하기 그지 없다.

업계의 강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대기업의 축산 진출을 허용한 사실만 봐도 그렇다. 기술 및 경영혁신, 친환경이란 목적에 축산업도 대규모의 자본유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대기업 위주의 규모화 축산은 상대적으로 중소규모의 농가소득 경쟁력 저하로 나타나는데, 오랫동안 농촌을 지켜오며 산업을 이끌어온 가족농들의 설자리 마저 내쫓는다면 이는 더 이상 농업·농촌의 문제만이 아닌 전 사회적 문제로 비화된다. 제2의 소작농이 되는 것이다.

그렇게 몰아낸 중소규모의 축산농가들의 자리를 대기업이 차지해 경쟁력을 갖춘 축산업이 들어서도 값싼 수입산 축산물과의 경쟁력에서 밀리게 된다면?

모든 기업논리가 그렇듯, 비핵심사업 정리 측면에서 매각하며 빠지는 게 보통인데, 그렇다면 그 빈자리는 수입 축산물로 대체하면 된다는 사고방식이라 더욱 걱정이다.

정부는 지난 1월 말 ‘미래형 산업’이란 기치에 시장지향적 농업을 목표로 하는 경쟁력 강화 방안을 발표하면서 네덜란드를 모델로 내세웠고, 3월 초에는 뉴질랜드 순방 중 농업의 개혁을 강조하면서 뉴질랜드와 우리나라의 농업을 비교한 바 있다.

네덜란드나 뉴질랜드는 낙농을 비롯한 축산업 강국이다. 모델로 여긴 국가들의 성공배경과, 그와 반면 점점 악화되어온 우리나라 축산업의 여건은 어떤지, 그래서 정작 무엇을 시급히 도입해야 성공할 수 있는지들에 대해서는 얼마나 고민해봤는지 의문이다.

특히 보조금이 너무 많아 경쟁력을 상실했다는 무심한 대통령의 발언은 다시금 농업인들을 절망으로 내모는 듯 하다.

전진하는 기술 후퇴하는 농정

뉴질랜드와는 비교도 못할 정도로 열악한 우리나라의 생산기반에 보조금을 줄여 경쟁력을 제고시킨 뉴질랜드의 사례를 강조하다니 농축산업에 대한 무관심은 진작부터 알았지만 이쯤 되니 암담할 뿐이다.

정부가 그토록 FTA를 추진하려는 EU의 경우만 해도 산업혁명이 발생하기 훨씬 전부터 농축산업에 대한 사회전반의 분위기뿐 아니라 오랜 투자로 이뤄진 탄탄한 제도와 기술 등이 경쟁력 있는 산업으로 받쳐주고 있다.

매번 본질은 이해 않고 겉으로 보여지는 화려함에만 매료되어 밀어붙인다면, 정권이 바뀔 때마다, 또는 관련 정책입안자가 교체 될 때마다 다양한 실패 사례들만 양산할 뿐이다.

비약적인 기술의 발달로 생산성 향상을 이룩하기도 한 한국의 농축산업 이면은 사실 실패로 얼룩진 농정의 역사 아니던가. 뿌리깊은 농정 불신은 괜히 생긴게 아니다.

시장경제 만능논리가 축산업에도 통할 것으로 여긴다면 크나큰 오산이다. 이제껏 현장을 지켜온 축산농민에게 비전을 제시해 발전으로 이끌어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정부의 관점대로 정책적 지원을 줄여 축산업의 경쟁력이 제고될 수 있다면 왜 미국이나 유럽, 그리고 일본은 그렇게 하지 않는가.

이들 국가의 산업화 과정에서 보듯, 근대에 육성되던 어떠한 제조산업도 여전히 국가적 지원으로 유지되는 사례는 없다. 오직 농축산업만이 국가정책적으로 존속되고 있는 것이 오늘날 선진국의 모습이다.

지속가능 축산 위한 정책 펴야

우리 축산업이 지속가능한 산업으로 가기 위해서는 범국가적 관심과 정책적 지원이 계속 이뤄져야 한다. 그것은 우리사회에 소수를 위한 제반시혜(諸般施惠)로서만이 아니다. 우리의 경제성장 과정 중 부득이 감수할 수밖에 없었던 희생과 더불어, 식량산업으로서 공익에 기여하고 다원적 가치를 발휘한 데 대한 정정당당한 보상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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