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도숙 칼럼]설렁탕

  • 입력 2009.03.16 08:20
  • 기자명 한도숙 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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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렁탕은 쇠고기국물에 밥을 말아 먹도록 한 국밥의 일종이다. 예부터 선농제를 올리고 나서 국왕을 비롯해 조정 중신은 물론 서민에 이르기까지 임금이 밭을 간 뒤 백성을 위로하여 소를 잡고, 국말이 밥과 술을 내렸다고 한다. “국밥을 선농단에서 내렸다” 하여 선농탕이 선렁탕으로 변천해 지금의 설렁탕이란 이름이 유래했다고 한다.

지금 서울 제기동에는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15호로 지정된 선농단이 남아 있는데 1910년 5월까지 선농제향을 올린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지금은 주민들의 노력으로 선농제향이 복구되고 서울시와 농림수산식품부 등이 제향을 주최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권농(勸農) 행사는 기원전 41년(신라 박혁거세 17) 왕과 왕비가 육부를 순행하면서 농사와 잠사를 권장하고 감독한 것이 시초이다.

그 뒤 매년 경칩이 지난 뒤 첫 해날‘亥日’을 택해 왕이 친히 제향(祭享)을 하고 임금이 직접 농사를 짓는 시범을 보였다고 한다. 이것을 선농단 친경이라고 한다. 왕이 이곳에서 친경을 하는 것은 농사의 중요함을 만백성에게 알리는 것이며 백성들이 이를 본받아 부지런히 농사를 지으라는 독려이기도 하다.

요즈음 각 시군에서는 영농발대식을 여느라고 한창 바쁘게 보내고 있다. 들판에 보리싹이 새파래지고 산수유꽃망울이 터져 오르는 봄날 희망을 안고 올해 농사를 풍년농사로 만들자는 다짐이다. 80노구를 이끌고 할머니는 할아버지 손을 잡고 아주머니 아저씨들은 경운기를 타고 장터나 천변으로 모여든다.

옛날엔 권력이 백성들을 움직이게 하고 위로했다고 한다면 지금 영농발대식은 농민스스로가 주체가 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재정적 어려움이나 물리적 사정으로 소를 잡아서 뜨끈한 설렁탕을 만들어 내지는 못하지만 간소한 제사를 드리고 돼지를 잡고 닭을 삶아서 막걸리 한잔으로 서로를 위로한다.

더욱이 농업이 제나라 백성을 식량위기로부터 안전하게 보호하지 못하고 식품의 안전성에 위태로움을 제거하지 못하는 상황 속에서 우리농민들이 농업정책의 잘못된 부분을 지적하고 올바로 가도록 억제해야만 하는 어려움들을 서로 이야기하며 의지를 굳히는 계기를 만드는 결사의 장소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이렇듯 농민들이 스스로 농업의 주인임을 내세우며 민족농업과 통일농업의 미래를 만들어가는 민주적 잔치마당이 영농발대식인 것이다. 선농제향을 권력이 만드는 허위의식이라 한다면 영농발대식은 민주적이며 농사주체로서의 의지를 만천하에 알리는 일이라 할 것이다.  〈전국농민회총연맹 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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