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정을 하던 날

  • 입력 2009.03.07 11:32
  • 기자명 한국농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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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임마, 건방지게 벌써부터 나무 위에 올라갈 수가 있어?”

호준이 형 복숭아나무 전정을 하던 이틀째에 종국이가 ‘수습’ 딱지를 붙여 영수를 불러내었고, 그 영수가 어느 순간 나무 위로 올라가자 병국이 형이 엄숙하게 뱉은 말이다. 영수는 농사경력이 한 해 뿐인 초보자인데 종국이와 내가 몇 번 불러서 전정을 배우게 하고 있다.

우리가 영수에게 전정을 배우게 하는 것은 무엇보다 ‘팀’을 꾸리기 위해서이다. 90년대에만 해도 농민회 전정팀이 있어서 해마다 품앗이를 했었고, 또 곳곳에서 일을 좀 해달라는 부탁이 있어서 더러 푼돈을 버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던 것이 인철이가 농사를 접고 창원으로 떠나면서 팀은 흩어지고 말았다.

옛날 전정팀의 규율(?)로 본다면 영수는 그야말로 건방진 행동을 했다고 할 수 있다. 지금 보면 참 우스운 짓이지만, 89년 내가 전정을 배울 때만 해도 규율은 엄격했다. 다들 일당을 받는 데도 수습 딱지를 붙인 나는 무보수였고 잔심부름만 도맡아야 했다.

아침마다 일을 시작하기 전에 모닥불을 피워 몸을 녹이게 하는 일부터 술심부름, 물심부름을 도맡으면서 전정 방법을 하나씩 체득해 나갔다. 고참들은 전정 방법을 그러나 쉽게 가르쳐 주지도 않았다. 현장에서 오랜 체험으로 익힌 그들에게 이론은 전무했으므로 나는 어깨 너머로 배울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현장 용어로 ‘오야’가 나무 위에 올라가 굵은 가지를 잘라내면 나는 삼 미터도 넘는 길고 무거운 철사다리를 놓고 곁가지를 정리하다가 행여 잘못하여 엉뚱한 가지를 자르기라도 하면 큰소리로 욕을 얻어먹는 일이 다반사였다. 톱과 가위를 내던지고 가버리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내 농사를 위해서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야말로 서러운 시절을 겪으면서 배운 기술이었다.

“영수야, 내가 사다리부터 대라 안 카더나!”

한 나무를 끝내고 다른 나무로 이동하면 먼저 높은 가지부터 사다리를 놓고 가지를 자르는 게 일의 순서이다. 그런데 영수는 자주 이 원칙을 까먹고 낮은 가지에 먼저 매달리곤 한다. 나도 영수와 같은 시절에는 자주 그렇게 하다가 욕을 얻어먹곤 했다. 그때에 비해서 종국이 잔소리는 훈풍처럼 따스하다.

나는 묘하게 입술을 비틀며 종국이를 바라본다. 엄한 선생 밑에서 배워야 빨리 익힐 텐데 저렇게 자상한 선생이 염려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영수는 이미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다. 눈썰미가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속도’에 있다. 가위질이 물 찬 제비처럼 재빨라야 하는데 영수 가위질 솜씨는 마냥 굼뜨기만 하다. 하기야 반복과 숙달로 단련되는 솜씨를 며칠 사이에 바라는 것이 무리이기도 하다.

전정에는 원칙이 있다. 반드시 잘라야 할 가지가 있고, 어떠한 경우에도 잘라내면 안될 가지가 있다. 높은 나무는 키를 낮추고 낮은 나무는 키를 세운다. 신초보다는 묵은 가지를 선택하고 공간이 넓은 곳에서는 도장지를 유인하도록 하면 좋다. 이 원칙을 몸에 익혔을 때, 전정에는 원칙이 없다. 그래야 한다. 반드시 잘라야 할 가지를 때로는 남기기도 한다. 잘라서는 안 될 가지가 잘라내어야 할 경우도 있다. 품종에 따라, 위치에 따라, 밭주인에 따라 원칙은 변한다.

전정이 일 년 농사의 절반이라는 말이 있다. 나는 사다리에 걸터앉아 담배를 꺼내 물고 돌아보니 곁가지를 너무 많이 남겼다는 느낌이 든다. 그러나 결실이 잘 안 되는 품종이라 더 잘라낼 수도 없는 입장이다. 이런 경우에는 호준이 형이 적과를 할 때 알아서 가지를 잘라주면 될 일이지만 전정을 전혀 모르는 밭주인을 보면 그만 아득해진다.

소만 키우던 이 양반이 느닷없이 육천 평도 넘는 땅에다 복숭아를 심어 놓고는 나뭇가지 하나 제 손으로 자를 줄도 모른다는 생각에 나는 또 흰소리를 꺼내든다.

예고된 대로 오후 참 때쯤, 경산까지 와서 전정을 해준다고, 그게 반갑다고 58년 개띠 백철재가 소주 여섯 병에 회를 사들고 왔다. 찬바람이 마구 몰아치는 날씨 탓에 소주는 달다.

그만 일어서려는데 또 한 사람이 돼지고기 볶은 것과 술을 한 바구니 들고 왔고, 동네 사람 여럿이 몰려와 거나한 술판이 되고 말았다. 찬바람 속의 술잔치는 오래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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