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자본과 함께하는 로컬푸드운동?

  • 입력 2009.03.07 11:27
  • 기자명 윤병선 건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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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국사회에서 로컬푸드(이하 지역먹을거리)운동이 사회적 관심사중의 하나로 떠오르고 있다. 그동안 추진해 온 지역단위의 운동과는 별개로 중앙정부나 지방정부 차원에서도 지역먹을거리운동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다.

이는 대통령이 작년 광복절 경축사에서 ‘새로운 60년’의 비전으로 이른바 “저탄소 녹색성장”을 내 놓은 것과 무관하지 않다. 즉, 지역먹을거리는 먹을거리의 이동거리를 축소시켜 이산화탄소를 방출하는 석유에너지의 소비를 줄임으로써 지구 온난화의 예방에 기여한다는 측면과 연관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윤추구 대상으로 전락 안될 말

지방자치단체들도 이에 호응하여 다양한 정책을 펼치고 있는데, 광주광역시는 ‘저탄소 시범도시 추진기획단’을 꾸리면서 로컬푸드운동도 적극적으로 검토하기로 했고, 원주시의 지속가능발전협의회는 ‘그린스타트 네트워크’의 추진을 통해 로컬푸드운동을 전개해 가기로 결정했다.

▲ 윤병선 건국대 교수

그런데, 지난 1월19일자 연합뉴스의 보도자료에 의하면 경남도가 CJ푸레시웨이와 함께 지역먹을거리운동에 본격적으로 나서기로 했다고 한다. 그 내용에 따르면 “경남도는 CJ푸레시웨이가 가지고 있는 식품유통 전문기업의 강점을 활용한 전략적 제휴를 통하여 경남지역에서 생산되는 농수산·가공상품을 경남지역에 우선 공급하는 ‘지역먹을거리’운동을 전개할 계획”이라고 한다.

대기업과 함께 지역먹을거리운동을 전개한다? 그것도 2006년 학교급식 집단식중독 사건의 중심에 있었던 CJ푸드시스템이 지난해 3월 사명을 변경한 업체와 지역먹을거리운동을 전개한다고 하니 당혹스럽지 않을 수 없다. 경남도가 적어도 세계 각지에서 지역먹을거리운동이 들불처럼 일어나고 있는 이유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진지하게 고민했다면 대기업과 함께 지역먹을거리운동을 하겠다는 발상은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단순히 지역에서 생산된 농산물을 지역에서 소비한다고 지역먹을거리운동이 되는 것은 아니다.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의 간극을 넓히면서, 그리고 괴리된 관계를 이용하여 농업과 먹을거리를 이윤추구의 대상으로 전락시킨 자본들의 영향력을 축소시킴으로써 자본들의 지배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것이 지역먹을거리운동의 기본적인 취지다.

그런 지역먹을거리운동을 대자본에 의탁하여 추진하겠다는 것은 카길과 같은 초국적 농식품복합체를 만들어서 한국농업의 경쟁력을 높이겠다고 언성을 높였던 전임 농림수산식품부장관의 이야기와 다를 게 하나도 없다. 오히려 지역먹을거리운동을 어떻게 지역에서 풀어나갈 것인가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실소를, 그리고 지역먹을거리운동에 대해서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 사람들에게는 혼란만을 자초하고 있는 것이다.

지역먹을거리운동을 단순히 지역의 농산물을 지역에서 소비하는 운동으로 파악하게 되면 과거에도 자주 거론되었던 직거래운동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다. 이명박 정부 이전에도 직거래정책이 지엽적으로 추진된 적이 있다.

즉, 김대중 정부 때에는 농민장터에 대한 검토도 이루어졌고, 지역농협 주도의 파머스마켓도 추진되었다. 주로 직거래장터나 자매결연직거래, 농협 금융점포내 신토불이창구 등을 통해서 직거래를 추진했다. 그러나 주체가 제한적이었을 뿐만 아니라, 지역먹을거리운동에 대한 개념 자체가 부족했기 때문에 사회적 파급력은 미미했다.

이런 상황에서 직거래운동조차 경남도의 경우와 같이 거대자본의 개입을 통하여 이루어진다면 지역의 시장마저 거대자본의 지배를 강화시키는 결과를 낳게 될 수 있다. 지역의 재래시장을 초토화시킨 대형마트들이 지금은 슈퍼슈퍼마켓(SSM)을 앞세워서 ‘골목상권’으로까지 영역을 넓히면서 영세 자영업자들을 벼랑 끝으로 몰고 있는 상황을 보더라도 대자본과 함께 지역먹을거리운동을 전개한다는 것은 세상의 물정을 모르기에 가능한 발상이다.

세계농식품체계보다 훨씬 ‘해악’

지방자치단체들이 진정으로 고민해야 할 부분은 지역내 생산자와 소비자를 묶어내고, 지역내 단체급식소나 공공급식과 같은 대량소비처에서 지역의 농산물이 더 많이 소비될 수 있는 방안을 지역내 먹을거리 생산농민이나 소비자들과 함께 고민해 내는 작업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이와 함께 지역자급률이 낮은 품목 가운데 지역생산이 가능한 품목들을 찾아내야 한다. 이런 작업은 먹을거리의 안전을 훼손하고, 농업생산의 안정을 붕괴시킨 거대자본과 함께 할 성질의 것이 전혀 아니다.

지역먹을거리운동은 자본에 의해서 단절된 농(農)과 식(食)의 관계를 복원함으로써 활력이 넘치는 지역사회의 구축에 목적이 있다. 이런 운동을 자본의 논리에 의해, 자본의 개입을 통해서 전개한다면 이는 자본의 활동영역 확대에 불과하고, 그 결과는 지금의 세계농식품체계가 가져온 해악보다도 훨씬 심각할 수밖에 없다. SSM이 ‘골목상권’까지 넘보고 있는 상황이 이를 경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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