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콩이 개미 공부방 친구들에게

  • 입력 2009.03.02 08:38
  • 기자명 이해자 충북 진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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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까지 참 추웠는데 날이 많이 풀려 참 좋다. 친구들과 내가 만나 중요한 일을 하기에 참 좋은 날이야. 친구들 안녕! 만나서 반가워.

내가 누구냐고? 으응, 나는 ‘노란콩’. 나의 또다른 친구들 팥, 녹두, 강낭콩, 쥐눈이 콩, 서리태 들도 있는데 나와 다 같은 콩들이지만 내 몸은 이 친구들과 많이 달라.

내 몸은 단백질 40%, 지방 20%, 전분 25%로 되어 있어. 쌀을 주식으로 하는 공부방 친구들에게 다소 부족할 수 있는 단백질을 많이 줄 수 있어서 사람들은 나를 보고 ‘밭의 고기’라고도 해. 나! 노란 콩의 조상은 남만주로부터 왔다고 해. 친구들의 조상님들이 긴긴 유목생활을 접고 농사를 지을 때부터 나 ‘노란 콩의 조상’을 거두었다고 해. 그리고 나 노란 콩을 이용해 된장류를 만든 것은 먼 옛날 삼국시대로 추론하고 있대.

조선시대에 이르면 나 노란콩과 더불어 보리쌀, 쌀도 활용해 맛있는 막장류를 너희들의 조상님들이 만들어 먹었다고 해. 그 종류가 무려 20가지를 헤아린 다지. 그런데 친구들아! 오늘 내가 친구들에게 편지를 쓰는 중요한 이유가 있어.

그 이유는 내가 긴 편지로 친구들과 미리 이야기하지 않으면 개미 공부방 친구들이 매일 공부방에 나올 때 참 싫을 때도 좋을 때도 있기 때문이야. 무슨 말이냐구? 응, 그러니까 앞으로 날 좀 잘 봐달라는 거야. 그리고 때론 참아도 주고 애정도 주고 말이야. 부탁하는 거지 뭐.(잉잉 부탁이야) 내 소개를 했으니까 그러면 왜 친구들이 날 싫어할 수도 좋아할 수도 있는지 말할게. 잘 들어줘.

난 오늘부터 덕산면 합목리의 이월면 사당리로부터 이사와 신척리 해방촌 진천 개미공부방에서 살 거야. 죽정이와 흙으로 범벅된 나를 농부님들이 노란 나만 골라 이곳에 보내주셨어. 유샘, 전샘, 이샘, 박샘이 날 깨끗이 목욕시켜 주셨어. 정말 유쾌! 상쾌!

그래 친구들아, 깨끗한 물 잔뜩 머금은 나에게 뜨거운 열기를 주련. 너희들이 지펴준 불기운에 내 몸은 구수한 향을 내며 말랑말랑하게 될 꺼야. 그리고 나를 너희들의 발끝으로 밟아봐. 정말 뭉클한 느낌이 재미있을걸!

곱게 으깨진 내 몸, 성글게 쪼개진 내 몸을 친구들의 작은 손으로 토닥거려 준다면 나는 좋아라 좋아라 ‘멋진 메주’가 되는 거야. 나 노란콩의 ‘또 다른 나’라 할 수 있을 것 같아. ‘또다른 나’가 이루어진 순간 개미 공부방 친구들과 본격적 동거가 시작된다고 봐야겠지.

친구들의 따뜻한 방 아랫목에 대롱대롱 매달려 난 아마 ‘광란의 침묵’ 30일을 보낼 거야. 이를테면 많이 크기 위한 ‘사춘기’로 비길 수 있을까? 그래 사춘기. 그래서 정말 부탁하는 건데 나 좀 많이 이해해 주길 바래.

친구들의 조잘거림. 웃음소리가 너무너무 좋은데 난 아주 많이 예민해져서 짜증도 낼 거구 마구 내식대로 예의 없이 굴 수도 있어. 그래도 한 닷새는 킁킁한 냄새로 친구들의 콧구멍을 몹시 공격할지도 모르겠어. 그럴 때 마다 욕은 해도 날 내치지는 마. 밖은 너무 추워. 숨을 쉴 수 없거든.

친구들아! 이렇게 겨울 끝자락을 포기하지 않고 ‘길들이기’를 잘 한다면 난 아마 더∼욱 성숙할 수 있을 거야. 땅 밑으로 들썩들썩 봄이 올 때 쯤 한껏 성숙해진 나 메주를 깨끗이 씻고 잘 말려줘.

친구들을 괴롭혔던 냄새도 덜 할 거야. 이별의 시간이 다가온 거지. 난 활짝 웃으며 새로운 세상으로 뚜벅 걸어 갈 거야. 볕이 잘 드는 나의 집 장독대, 멋진 서방님 소금물. 친구들이 꾸며준 신혼 집, 정말 고마워.

공부방을 나서는 날부터 꿈같은 30일을 보내겠지. 지나온 30일을 추억하며 짭조름한 소금물과 원없는 사랑을 나누며, 우리의 기적을 친구들은 보며 놀라워 할 거야.

그래 뜨거운 불에 삶아져 메주로 매달려 조용한 숨을 쉬듯 지나온 60일의 창조물 ‘된장과 간장’으로 다시 나뉘어 빛과 어둠, 바람과 햇볕과 속삭이며 또 그렇게 100일을 보낼 거야. 그러면 정말 그간 나에게 쏟아준 많은 시간, 많은 사랑, 친구들에게 남김없이 보내 줄 거야.

푹푹 찌는 무더운 여름 맛있는 쌈장으로, 찬바람 도는 늦가을 보글보글 된장찌개가 되어 검박한 생일상 뜨끈한 미역국이 되어……너에게 모두 줄게, 이만 안녕 친구들. 정말 잘 지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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